우주로 향하는 리듬
장석남 시인
언젠가 백담사 만해 마을에 묵을 때였다. 오현 스님이 부른다는 전 갈이 있어 건너갔더니 이런저런 말씀을 주신 끝에 시조를 써보라는 권유를 하셨다. 당대 시대를 노래하는 형식이니 쓸 줄은 알아야 한 다는 것이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창밖에 큰 소나무가 서너 주 쭉쭉 뻗어 서서 탐스러운 눈을 맞으며 들여다보던 방이었다. 나는 고 개를 끄덕이면서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직 그 대화를 기 억만 할 뿐 달려들어 공부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 그윽하던 방안의 풍경과 창문 바깥의 하늘의 표정만이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펄펄 쏟아지던 눈발 사이로 이방원의 그것, 황진이의 그것, 가 람 이병기의 그것 들이 순간 줄지어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똘똘하 게는 아니어도 어렴풋이 알고 있던 시조의 구절들이었다. 더불어 들 썩들썩 그 리듬들이 저절로 내 발장단의 근육들도 움직였을 것이다.
종이냄새 그윽한 옛 페이지를 열어서 확인해 보니 다음과 같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 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 이방원이라는 인 물과 그가 마주한 당대의 개성 거리가 궁금하다. 이방원이라는 비극 적 종합인, 무엇보다도 새 기운을 맞아 펼치려는 새 시대에의 포부 에 대하여 맞서려는 고려의 충절에게 보낸 메시지다. 저 얽혀진 ‘만 수산 드렁칡’의 이미지는 실로 다층적이다. ‘얽히고 설켜’ ‘백 년’을 누리자는 ‘조화’의 이미지와 꼼짝없이 얽어 매였다는 ‘억압’의 이미 지가 이면에는 숨어 있다. 이방원은 이 둘을 동시에 함축시켜 저 시 조를 지어 건넸을 것이다. 집 주변 산야의 골칫거리인, 우렁찬 나뭇 가지마저 어느새 타고 올라가 옭아매고 있는 칡넝쿨을 보면 ‘만수산 드렁칡’이 저절로 떠오른다. 말하자면 이방원의 저 시조 한 편은 600여 년이 지난 이후에까지도, 심지어는 역사에 별무, 무관심자에 게까지도 당신의 복잡한 마음 상태를 전달해주고 있는 셈이다.
수 세월이 흘러 그 개성에 황진이라는 빼어난 예술가가 등장했다. 이 황진이의 개성은 앞서 이방원이 언급한 ‘만수산’의 개성은 아니다. 황진이는 거문고와 시와 창으로, 그림으로 ‘옛 도읍’ 개성의 잔상을, 한을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기록으로는 몇 편 남지 않은 그이 시들 을 본다. 소실되었을 그의 시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쉽기만 하다.
그의 시는 사랑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벼혀내어 /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저 ‘동지冬至’의 칠흑 밤, 긴긴 밤이 꼭 사랑하는 이의 암흑 기다림만을 얘기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이 시는 그 확대 해 석을 절제하고 그저 사랑 노래에만 매어두고 싶다. 그리하여 ‘님 오 신 날 밤’의 ‘없는 어둠’에 주목하고 싶다.
시원하고 맑은 가을밤을 맞아 홀로 서성이게 되노라면 내 목구멍 026 과 입술은 가람 이병기의 ‘별’, 작곡가 이수인의 멜로디로 떨린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 함께 나아오더라 // 달은 넘어 가 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 잠 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러한 독백과 리듬을 외우노라 면 세속사의 얼룩들은 어느덧 흙바닥으로 떨어지고 깨끗한 몸뚱이 가 된 듯하다.
가람이 이 시조를 지은 날이 궁금하다. 그가 마땅히 찾아볼 데가 저 우주 끄트머리의 아득한 빛 구멍, ‘별’이었다는 사실은 새삼 그의 생애사에 덧붙여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온다. 그는 해방 후 조선문 학가동맹에 자의든 타의든 가입되어 시조 분과 위원장 자리에 공식 이름이 올라 있다. 좌우합작격인 이 단체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 은 이후의 현실 정치의 전개과정에서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 이다. 이 단체의 주요 활동 작가들이 견디지 못하고 북을 선택하여 월북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당시 노장격인 가람은 결국 침잠했을 것이고 그 침잠은 저 우주를,우주의 별을 영롱하게 비추고 있다.
나는 시조에 대하여 깊이 공부하지 못했다. 시조의 한자가 왜 시 간을 나타내는 시時자를 쓰는지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다만 오현 스 님의 한마디로 짐작을 할 뿐이다. ‘당대’를 노래하는 형식이니…….
마침 가을 청명한 날이 왔다. 그러나 침잠이 필요한 시대를 만났 으니 그 침잠 속에 시퍼런 칼을 두고 저 가람 선생의 별을 빌어 비추 어보자. 영원을 비추어 보자!
장석남 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한양여자대학 문창과 에 재직.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