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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한 '악의 역사' 시리즈 4권 중 가장 첫 번째 책이다. ‘악의 역사’를 탐구하는 첫 번째 성과로서 서양문화사에서 '악'의 등장과 의미,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천착이 돋보이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서양사 특히 종교에서 '악'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설명하고, 때로는 그것이 권력자들의 의도에 따라 어떻게 악용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4권의 책들은 서양사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고 있는데, 그 중 1권인 <데블>은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기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종교적으로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되지만, 왜 선과 함께 악을 창조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다양한 신화들과 단편적인 기록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면서, 명백히 존재하는 ‘악’의 기원과 개념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악의 존재'에 대한 납득할 설명을 내려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악은 목적의식적인 힘으로 느껴지고 인격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에, 저자는 그처럼 인격화된 존재를 '악마'라 지칭하면서 '악은 절대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엄연히 실재하는 '악'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설명이 1권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고 할 수 있으며, 자칫 관념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악의 문제'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풀어나가고 있다. 이미 '악마'라는 단어를 흔치 않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개념화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기존의 연구서들을 검토하면서 그에 대한 생각들을 '악마를 찾아서'라는 항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동서양의 악마'와 '고전 세계에서의 악'이란 항목에서는 초기 힌두경전과 고대 원시 문명에서 제시하는 악을 대표하는 존재들,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 '악'의 기운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히브리적인 악의 인격화'라는 항목에서는 비로소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에서 악이란 관념이 인격화된 존재로 등장했고, 이를 이어받은 기독교에서 이에 관한 설명이 더욱 다듬어졌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악마'라는 항목에서 '사탄'이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악의 역사' 시리즈 2권의 제목이기도 한 <사탄>으로 논의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악을 인격화환 전통은 '히브리-기독교적 사유에서 가장 철저하게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밝히고, '그 개념을 관념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마지막 항목인 '악마의 얼굴'에서 정리하고 있다. 어쩌면 초기 기독교에서 자신의 종교를 탄압하는 이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지칭된 '악'이란 관념이 생겨났고, 이후 기독교적 전통을 고수한 서양사에서 그것이 후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지속적으로 문제삼고 있지만, 전능한 신이 왜 악을 창조 혹은 방치했는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칫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선과 악'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고 이해되며, 단지 신학의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철학의 주제로 혹은 서양사의 관점에서도 그 흐름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분명한 것은 인간 사회의 불합리한 면을 규정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악' 혹은 '악마'라 할 수 있으며, 역사를 지나오면서 그것을 나름의 개념으로 정립하기 위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전제해야만 할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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