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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문학과 예술은 인간 활동의 가장 고도한 산물로서, 대체로 향유될 당시의 ‘현재 상황’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창작되고 향유되던 당시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적확한 해석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게 드러나지 않기에, 때로는 그와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토대로 작품 속의 상황을 재구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러한 논리가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데 있어 ‘작품 자체(text)’가 아닌, 적품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요소 곧 ‘컨텍스트(context)’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하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문학과 예술의 ‘생성 공간’을 밝히고자 한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데, ‘생성 공간’이라는 표현은 ‘콘텍스트’를 달리 표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가 조선시대의 문학뿐만이 아니라 음악과 회화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작품 생성의 컨텍스트로 삼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다만 ‘역사와 사회 전체를 문제삼는 거시적 컨텍스트가 아닌, 작품과 보다 근접하게 조우하는 미시적 컨텍스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이 책을 읽다 보면, 문학사를 접하면서 간과했던 '미시적' 기록들에 대해 그 내용과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조선전기의 문학과 음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잇는 1부의 논문 2편은, 이전에 어느 지면에도 발표하지 않았던 ‘미발표 논문’들이다. 2편의 논문 모두 방대한 분량과 아울러, 조선 전기 예술사를 해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전승이 끊겼을 것처럼 인식되는 고려가요가 조선시대 내내 향유되었으며, 비록 20여 편에 불과하지만 그 작품들이 조선 전기 지배 권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거론되었음이 확인된다. 아울러 조선 전기 유학자들의 음악향유의 양상 역시 지인들의 자족적인 모임 외에 전문적인 예능인들이 참여함으로써 가능했다는 다양한 기록들을 제시하면서 실증하고 있다.
2부에 수록된 2편의 논문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천착했던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사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양반과 상민이라는 계급구조를 중시했던 기존의 관점과 달리, 중인과 하급 관리를 비롯한 ‘중간 계층’이 유흥을 비롯한 당시의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다양한 방면에서 실증하고 있다. 나아가 조선 후기 문학사에 새롭게 등장한 사설시조의 창작과 향유에도 이들 중간계층의 역할이 적지 않았음을 피력하고 있다.
이와 달리 3부에서는 조선 후기 명문가로 행세하던 ‘경화세족’들의 서적과 예술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소개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책이나 예술품을 수집하는 일이 상당한 경제적 능력이 확보되어야만 하지만, 조선 후기에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출판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던 조선 후기 책에 대한 지식인들의 관심과 수집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고, 상당한 분량의 책들을 소유한 장서가들도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관심이 예술품을 향유하고 수집하는 데까지 연결되며, 이는 당시의 문화생활을 보다 풍부하게 해주는 요인이라는 점이 적시되고 잇다. 마지막 4부에서는 조선 후기의 가사 <우부가>와 당시 서울의 분위기를 반영한 한시를 소개하면서, 당시 서울 지역의 서민들의 일상과 시정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책의 제목에 걸맞은 <조선시대 문학 예술의 생성 공간>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다양한 기록들을 단순하게 간과하지 않고 치밀하게 논거를 통해 설명하는 저자의 안목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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