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돌아보고 스치듯 지나치는 것을 관광이라고 표현한다면, 답사는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사전 일정을 수립함과 동시에 가는 곳마다의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지극한 관심으로 ‘일상이 고고학’임을 내세우고 있는 저자는 여행 역시 자신의 고고학적 지식을 풀어내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로부터 시작된 저자의 여정은 당시 ‘명주군왕’이라 칭했던 김주원의 흔적으로 좇아, 울진과 삼척 그리고 동해를 거쳐 강릉에 이르는 <나 혼자 강원도 여행>을 떠나기에 이른다. 강릉에서 북쪽으로 양양과 속초까지 이어지지만, 분단된 현실에서 자신의 발길이 금강산에 이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내용을 서술하면서, 자신이 들렀던 장소에 특별한 유적과 설화가 있다면 시대를 넘나들면서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강원도 관찰사를 제수받고 임지로 출발하는 정철의 <관동별곡>을 소개하면서, 강원도 여행이 지닌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정철은 관찰사를 제수받고 서울을 떠나 여주와 원주, 그리고 철원을 거쳐 춘천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을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회양을 거쳐 금강산으로 향하여 천하의 절경을 돌아보고 그 기행을 장편의 가사로 남겼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을 마친 정철은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고성에서 울진까지 이른바 ‘관동팔경’을 두루 돌아보고, 마침내 평해에 이르러 관찰사로서의 포부를 드러내며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서울에서 금강산을 거쳐 남쪽으로 향했던 정철의 여정과는 정반대로, 저자의 발길은 경주에서 북쪽으로 향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한 여정을 택한 이유는 바로 신라의 역사를 위주로 살피고 있는 저자의 행적이, 바로 당시 사람들의 강원도로 향하는 과정을 고려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저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신라 진흥왕 시대의 영토 확장 과정이었고, 지금 저자의 여정에 따라 당시의 사람들이 이동했기에 그 길을 따라 답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당시 진흥왕이 ‘이동했던 강원도 동해안 루트는 통일신라 내내 신라인들에게 의미 있는 길’이었고, 당시 ‘신라가 구축한 문화를 기반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동해안 여행이 큰 인기를 누렸’을 것이라고 논한다.
경주에서 여정을 시작한 저자는 일단 원성왕릉을 돌아보면서, 당시 왕위 경쟁자였던 김주원과의 라이벌 관계를 주목한다. 왕조시대의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에게 라이벌이란 왕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존재로 여겨졌기에, 결국 김주원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경주를 떠나 강릉의 당시 명친인 명주로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추론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의 여정은 포항을 거쳐 삼척의 죽서루를 비롯한 곳곳의 유적들을 답사하면서 그와 관련된 역사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관심이 신라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예컨대 버스를 타고 경주 남산을 지나치면서 그곳에서 <금오신화>라는 소설을 남겼던 조선시대의 김시습에 관한 사실과 거기에 수록된 소설의 개요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의 관심은 김주원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자신이 마주친 다양한 유적들에 얽힌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이동 중에 버스에서의 시간을 활용하여, 답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예컨대 성골과 진골이라는 왕족의 구별은 물론, 신라의 성장에 따라 정립된 골품제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부모의 출신이 모두 왕족이었던 성골의 시대가 끝나고, 부모들 가운데 한 사람만 왕족이어도 왕으로 등극할 수 있는 진골 시대가 되면서 왕위 계승은 그만큼 더욱 치열해졌던 당시의 역사적 사정을 소개하고 있다. 삼척에서는 맨 먼저 죽서루에 들러 당시 이곳을 여행했던 사선(四仙)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경내에 있는 정철의 <관동별곡> 시비에 대해서 다시금 음미해보기도 한다. 저자의 일정은 당시 그곳을 다스렸다고 추정되는 실직국왕릉과 동해의 추암에 자리를 잡은 해암정 등으로 답사가 이어진다. 추암해변을 떠난 저자의 발걸음은 다시 무릉계곡의 삼화사를 답사하고, 그에 관한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동해역에서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향한다.
주로 명주군왕이었던 김주원의 행적을 더듬어보면서도, 이처럼 저자가 마주한 유적들과 관련된 내용들을 빠짐없이 소개하는 등 답사가로서의 꼼꼼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강릉에서의 일정은 선교장과 경포대 신라토성 전시관을 거쳐, <명주가>의 배경으로 재탄생한 월화정과 월화거리 등으로 이어진다. 간혹 족보가 언제 생겼는지, 대관령의 국사성황당에 왜 김유신이 산신으로 모셔졌는지 등에 관해 설명을 덧붙인다. 아울러 강릉 출신의 고승이었던 범일국사와 관련된 사실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을 하자 베옷을 걸치고 금강산으로 유랑을 떠났던 마의태자의 여생을 더듬어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 혼자 강원도 여행>을 택해서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답사를 하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질 듯하며, 덕분에 과거 8년 정도 강원도 동해에 살면서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던 시절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