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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법학자이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홍규와 대담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그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글이나 몇몇 저서들을 통하여, 인터뷰 대상자인 박홍규 교수를 접해왔었다. 지금도 한겨레 주말판에 연재하고 있는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동안의 활동의 면면으로 보건대 그는 사회의 현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으며, 왕성한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40여년 동안 약 150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출간했다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된 사실이었다. 이러한 그의 면모를 가리켜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라는 제목을 붙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동창회’나 각종 친목 모임 등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그는 연구실과 집을 오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담자는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부제를 통해 박홍규 교수의 특징을 포착하여 표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지금도 운전을 직접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면모는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간혹 그는 신문에 기고하는 칼럼이나 에세이 등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이나 생각들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대담집의 형식을 취하니까. 인터뷰 대상자인 박홍규 교수의 인생과 철학 등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구절에서 박홍규 교수를 가리켜 ‘영원한 이단자’ 혹은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매우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드러내고, 각종 번역서와 저술들을 통해 보여지는 면모는 분명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과연 ‘이단아’라고 표현해야 옳을까? 예로부터 지식인이라면 불의한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릇된 것을 바꾸려고 실천하는 것이 바른 자세라고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권력과 금권에 아부하지 않고, 올곧은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의 태도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평가해야 옳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언필칭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이단아’라고 지칭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실상 누군가를 상대로 하는 대담집이 재미있고 충실한 내용을 채워지기가 쉽지 않다. 채 준비되지 않은 대담자와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바쁜 인터뷰 대상자의 실속없는 대화로 채워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보자면, 이 대담집은 제대로 준비된 대담자와 인터뷰 상대자가 진솔하게 삶과 철학을 이야기한 내용으로 채워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대학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이후에도 대학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저술에 몰두하는가 하면,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시내의 서점과 영화관을 순례하고 있다는 그의 생활이 무척이나 부럽게 다가왔다. 그의 이러한 생활은 미래의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대담자인 박지원은 박홍규 교수와의 만남을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 모두 10차례에 걸쳐 대구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나 대화를 나눈 결과를 46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엮어냈던 것이다. 모두 6개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는, 먼저 박홍규의 일상과 그의 아내와의 인터뷰를 다룬 ‘들어가며’와 ‘나오며’를 제외하고 4개의 주제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각각의 주제를 들면 ‘독서에 대하여’, ‘고독에 관하여’, ‘사회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박홍규의 학문과 삶의 역정은 물론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까지 아울러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인 박홍규 교수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함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만 발달한 경어 체계를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계급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관점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별로 없지만 책에 대한 물욕만큼은 버리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내용에서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대담에서 아내인 서현숙 여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결국 부부는 살아가면서 닮는다는 것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홍규 교수의 성과물들을 앞으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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