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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던 만화에 대한 인식이 최근에 들어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만화 본다’라는 표현이 ‘공부하지 않는다’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 ‘학습만화’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판되는 책이 있을 정도이다. 더욱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독자들도 종이책보다는 인터넷으로 만화를 접하는 경우가 보편화되었고, 그로 인해 ‘웹툰’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생길 정도이다. 최근에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속속 제작되어, 이제 만화는 새로운 시대의 문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올랐다고까지 평가되기도 한다.
‘박인하의 만화풍속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만화평론가가 쓰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서문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저자는 ‘만화에는 삶이 있다’고 단언한다. 비록 ‘만화의 재미를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표현하지만, ‘가장 흔하게 발견하는 만화 속에서 흔하지 않는 당대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만화평론가로서 저자가 만화에서 발견해 낸 우리 시대의 ‘풍속사’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경험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여전히 즐기는 만화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들을 가다듬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이제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오른 만화는 더 이상 ‘골방’에서 만나는 존재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당당하게 독자들에게 소비되는 문화 상품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만화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했고, 만화방이라고 불리던 대본소를 찾거나 혹은 어른들 몰래 숨어서 봐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신문에서 시작된 ‘우리 만화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만화, 그 이름으로’라는 제목을 통해 논의를 열어가고 있다. 마치 ‘불량식품’처럼 취급되어 주기적으로 만화를 쌓아놓고 화형식을 하던 옛날 뉴스의 장면을 상기시키면서, 만화에 대한 과거의 사회적 인식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런 시절을 거쳐 만화가 우리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어지는 ‘만화, 기억을 공유하다’라는 항목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만화에 대해 소개하면서, 여러 양식들에서 찾을 수 있는 시대의 문화와 그에 얽힌 독자들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다.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로봇을 등장시켜 상상력을 발휘했는가 하면,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반공’이라는 이념을 만화를 통해 주입시키는 역할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파트가 아닌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의 일상이 과거의 만화에 그려져 있는가 하면, 프로야구의 등장과 함께 1980년대에 풍미했던 스포츠 소재의 만화들에 대한 기억도 떠올리도록 만든다. 이처럼 만화가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 항목의 ‘만화, 시대를 보여 주다’라는 제목을 통해서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웹툰이 대중화되기 이전에 출간되었기에, 웹툰의 유행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의 출현 등의 문화 현상에 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이 책의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이러한 주제들이 전면에 부상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만화에 대한 과거의 인식과 대비시켜 논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제는 웹툰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들이 종이책으로 출간되면서, 만화도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오르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만화 원작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책의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역주행’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문화 현상들이 반갑게 느껴질 분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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