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1(자유)
산 마루가 섬이된 사연을
아이는 알지 못한다
산마루는 어느때 바다물에 잠기고 깊은 뻘속에서
발을 빼 낼수 없었다
허리춤에 물이 차 오르고
게들이 젖가슴까지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산마루는 섬이 되기로한다
뭍으로부터의 자유다
섬은
허리춤에 집터를 내주고 텃밭을 일구고
바다를 건너온 이들에게는 도피성이다
빗쟁이도 나으리도 찾지 않았다
갯벌에는 농게 망둥어 숭어가 지천이다
돌살(석전 石箭)을 치고 고기를 잡으며
아버지들은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고
통일쌀을 먹으며 보리고개를 넘는다
하늘의 손길처럼
바닷가에는
다음 끼니의 먹거리가 있다
끼니 걱정이 없는 것은
원초적 자유를 얻는것이다
배부르지 않는 행복은 없는 것
어머니의 아이들은
배부른 만족에 기대어 산다
굴을 따고 낙지를 잡고
삐틀이 고동의 속살을 파 먹으며
아이들은 청명에도 한식에도 허기를 면하며 산다
섬 2(아이)
아이는 포구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린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달리고 싶다
같이 밥을 먹고
한지붕아래 잠을 자는 꿈을 꾼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 초 사흘 기일이면
작은집 단발머리 여동생의 손을 잡고
아버지는 機船기선을 타고 섬으로 오신다
아이는
아버지를 발견하면 달리기를 한다
숨이차고 달리기를 멈추면
돌담뒤에서 가픈 숨을 몰아쉬며
아버지와 여동생을 훔쳐본다
아버지의 손은 늘 단발머리의 차지 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
그리움이 목 마르면 아이는 달리기를 한다
섬 3(어머니)
갯벌은 생명이 시작된 곳이다
옛적에 농게가 빨간 엄지를 치켜들고
출발선에서
생명의 시작을 알린 곳이다
그곳에는 생명의 호흡이 있었다
파도는 지문처럼 갯벌위에 흔적을 남기고
썰물이 밀려난 갯벌은
어머니가 농게와 낙지를 잡으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순명처럼 기다림이 일상이던 어머니
어머니가 갯벌에 다녀와서
널어놓은 삼베 적삼이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날마다 슬픈 이유를 알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기다림의 끝은 없었다
아이는 엄마곁에서 단잠에 들고
꿈속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금빛파도위를 달린다
섬4(아버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하얀제복의 사진
징용에서 돌아온 175의 젊은이
시대의 아품처럼
덴노헤이까(천황폐하)를 목이터져라 불렀을 제국의 수병이
태평양전쟁에서 생환하고 섬으로 돌아온다
사진속의 낯선눈빛
시공을 건너뛴 타인과의 조우처럼
훗날 나의 아버지를 사진으로 만난다
아버지는 어느 책갈피 사이에 늘 있었지만
어머니가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본 일은 없다
남몰래 바라보는 것은 아품 뿐이었다
한국전쟁의 6월
영광 불갑산의 전투에서
적의 총알은 경찰관의 발목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아버지는 국가 유공자가 되지만
대성동에서 또 다른 이들과의 삶을 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아버지
이별처럼
아버지의 배반의 날이 이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손을꼽아 헤아릴수 없는 무한의 날
어머니의 기다림과 침묵의 55년은 음지의 날이다
아버지를 용서하세요
라는 아들의 부탁을들으시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한 날
목포의료원을 찾아가지만
병실문을 차마 열수 없었다면서
임종을 앞둔 님의 창문아래서
자신을 붙들고 있는 迷妄미망을 놓아 보냈다
아들은 어머니의 침묵의 언어를 알고 있다
믿음을 알지못하는 인연을 안타가워하며
어머니에게는
사랑의 다른 모습인 용서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리고”나는 너의 아버지를 용서하였네”라 하셨다
섬5(종아돈)
한지를 오리고 잘라서 한묶음씩 길게 묶어
꽃상여의 네 귀에 메달면 종이돈이 되었다
산자들이 홧토불에 둘러앉아
망자와의 인연을 말하면
노자가 부족하면 안된다고 가위질에 힘을 준다
---상여 떴는가 !
꽃상여가 뜨는날은
진눈깨비가 날리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소나무 숲길을 지날때는
소나무 가지 끝에 종이돈이 걸리고 찢겨지고
솔밭에도 갯벌에도 어지럽께 뿌려진다
아직도 메달려있는 종이 돈은 불태워지고
재는 회리바람을 타고
혼불처럼 허공으로 사라진다
부음이 알려지고도
섬으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는
끝내 꽃상여를 타지 않앗다 종이돈도 만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