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반갑기 까지한 소낙비가 내린다. 점심은 어젯밤에 미리 먹기로 한 냉면집 갔다가 병원에 들르기로 집을 나섰다. 비가 오니 마음 속으로 '이런 날은 오랜만에 생김치 곁들인 팥칼국수도 좋은데ᆢ' 다시 차 창 전방을 응시한다. "팥죽 먹으러 갈까?" 남펀이 말한다. 통했다는 어리둥절 한 감탄의 몽롱한 표정으로 멈추었다. 히죽히죽 알수없는 웃음에 "왜에~ 당신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가? 맞는게 많아 ᆢ" 농담 처럼 진담을 툭 던져준다. 추운 날에 만 잘 될거란 예상은 깨졌다. 물밀듯이 순식간에 자리가 채워졌고 긴 줄에 번호표가 뽑혀지고 있다. 오랜만에 먹어선지 줄서서 먹을 만 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여전히 변함없는 맛에 행복하다.
진료실 앞으로 대기하던 중 세월의 흔적 만큼이나 굽은 등을 의자에 걸터 앉아 지팡이로 지탱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온다. 병원에는 주기적으로 약 타가시는게 큰 외출이기도 하는 어르신 모습을 쉽게 볼수있다. 분명 이 할아버지도 그래보였다. 사람이 그리우신지 오고 가는 사람마다 쳐다보고 계신다. 어디가 아프시냐ᆢ무엇을 타고 오셨냐ᆢ식사는 하셨냐ᆢ음료 한잔 드려볼까요? 옆에 앉자 말동무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을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어 보였다. 할머니들은 덜 짠한데 늘 할아버지들이 혼자 다니시면 쓸쓸한 여운이 남는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바로 맞은편 약국에서 먼저 도착해 있는 그 할아버지를 또 본다. 곧이어 약이 나왔는지 무거운 걸음을 어렵사리 떼어 삐뚤삐뚤 약을 가지러 나가신다. 역시나 한보따리 약이 나오는게 내 생각이 맞았다. 많이 공부한 사람을 떠받드는 옛날 어르신들 처럼 약국에서 조차 걸음 마저 조심조심 눈치를 본다. 접수대에 뽀짝 몸을 맞대고 기대어 있지만 거대한 거인앞에 난쟁이 처럼 작아져 보인다.
어서 빨리 약을 담아 거추장스런 몸뚱이를 비켜주고 싶은 마음이셨던지 서툰 손동작이 헤매고 있다.
단단히 봉투안에 약을 넣어 드릴것이지 ᆢ삐죽 내밀어 덜 들어간 약들을 넣고 있는 중이다. 친절한 응대가 없다. 뒤돌아 서는 약사와 직원이 로버트 같다. 가만보니 웃음 띤 얼굴은 본적이 없다. 주인따라 간다고 직원도 똑같다. 말은 없지만 직원도 봉투안으로 다 넣기엔 봉투가 작다는 걸 알고 있다. 덩그러니 검정 비닐 봉투 한장을 휙 놓고 돌아 선다. 검정 비닐봉투가 손에 닿자 약사에게 "두꺼운 비닐로 좀 주시요." 할아버지가 혼잣말 처럼 끝을 흐리면서 말했다. 듣긴 분명 들었나 보다.
"이거밖에 없네요." 이 약사 앵무새 처럼 딱 거기까지 말한다. 처음 부터 약국의 태도가 거슬렸다. '뭐야~ 공짜로 약주나.' 뒤에서 보고 있자니 앉아 있기가 블편하다. 마음 같아선 '왜 이렇게 퉁명스럽고 성의 없이 말하세요? 어르신이 무언가 호소하면 들어 보는게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 그리고 들고 가기 좋은 봉투를 준비 해 놓으셔야죠? 비닐봉투도 너무 얇잖아요. 안그런가요?' 크게 따지며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 착한 작은 목소리로 "비닐 봉지가 얇아서 찧기면 금새 찢어져 불지요? 다짜고짜 할아버지 옆에 붙어 아는체를 하며 조제실을 향하여 "여기요? 비닐 봉투 한장 더 주세요." 밝고 낭낭하게 말했다. 더위를 먹었나? 일하기가 지겨운가? 벙어리? 아니지 ᆢ누구님 이름은 부르던데ᆢ 아무 댓구없이 비닐봉투 한장을 놓고 또 뒤돌아 선다.
할아버지의 헤매는 손을 제치고 두장의 비닐봉투로 단단히 넣어드리면서 구멍뚫린 손잡이 네개를 한데 모아 손가락에 끼워 드렸다. 해결이 된게 좋으셨던지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나 보다. 그리고는 잘가라는 팔을 휘둘리면서 특유의 노인 냄새를 보낸다.
모른척 지나치기엔 찝찝 했을텐데 ᆢ그럼에도 뱉지 못하고 삭힌 말이 중얼중얼 흘러나온다. "세상에 비닐봉투가 얼마나 된다고 그 비싼 약값을 이쪽저쪽에서 다 받으면서 아휴 진짜ᆢ"
안계시는 아버지 생각에 더 마음이 갔나보다.
언제 쏟아질지 몰라 잠깐 들를 마트길에도 우산을 챙기고 나가는데 비가 막 쏟아진다. 들이치는 비를 피하려 고개까지 움츠리고 잰걸음을 하는데 언제 옆사람이 보였을까? 양손에 책더미를 들고 가면서 거센 빗줄기를 무방비 상태로 맞고 있는 젊은 여성이 있다. 얼른 우산을 머리위로 가져갔다. 진분홍 립스틱을 바르고 구두를 신은 준정장 차림이였다. "어디까지 가세요?" 씌워주며 물어 볼 땐 끝까지 바래다 주고 싶어서다. 다행인지 먼 길은 아니였고 반대방향 옆상가 진입로를 향한다. 내친김에 "책 한꾸러미 들어 줄까요?" 말해보지만 머리를 마구 흔들며 이것도 너무 고맙단 표정을 보는 사이 벌써 다왔다. 상가 차양 안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착한 일을 해선가 순간 알수없는 배부름이 찾아왔다. 세담이 왜 이렇게 착한일을 많이 하지?
별거 아니고 누구라도 흔히들 할 일들이지만 망설임 없이 행하는 몸짓은 하하에서의 나를 낮추고 상대를 귀히 여겨주며 품어 주는 그간의 인문학 공부의 덕분이라 의심치 않는다. 서서히 나를 변화시키는 향내나는 하하를 오늘도 사랑하는 마음 가득 묻혀 아기편지에 띄워본다.
첫댓글읽으며 교수님의 강의를 되새겨봅니다. 인문학을 통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을 늘 배우면서도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야 할 배려에 난 얼마나 손 내밀었던가. 선뜻 실천에 무딘 생활들을 반성하며 현경,세담이 칭찬합니다. 주변 상황을 보며 마음을 움직이고 다가서는 섬세한 표현들에 진실을 배우며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솔직하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예쁜 글에도, 생각한 것을 실제로 행함에도 칭찬을 보냅니다.
첫댓글 읽으며 교수님의 강의를 되새겨봅니다. 인문학을 통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을 늘 배우면서도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야 할 배려에 난 얼마나 손 내밀었던가. 선뜻 실천에 무딘 생활들을 반성하며 현경,세담이 칭찬합니다. 주변 상황을 보며 마음을 움직이고 다가서는 섬세한 표현들에 진실을 배우며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솔직하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예쁜 글에도, 생각한 것을 실제로 행함에도 칭찬을 보냅니다.
날아 언니의 칭찬이 구구절절 다~ 옳으신 말씀. 세담 언니 평소 몸짓, 마음씀씀이 느끼며 갑자기 팥죽 먹고 싶어지네요. ㅋㅋ 😂
참 재미스럽게 대처한
모습 흐뭇하네요 .
전쟁으로 오빠들 잃은
이인복교수는 모든 남자들 등짝은
오빠로 보였다는 글이...
안계시는 아버지 생각에 할아버지마다
연민이 ...
부성의 결핍에 따뜻한 배려를 하시군요.
저도 머리 하얀 할아버지들은 친근감 느끼지요. 아버지같아요. 생전 아버지께서 막내딸을 소중히 여기시어 내 특이사항을 일기에 기록하실만큼 다정하셨지요.일본 유학하셔 베이비시터, 신문배달 등 고생하시며 일구신 업적들은 저도 일기에 적어놨지요. 오빠에게서 들은 거.^^
세담님의 마음씀에
어떤 할아버지도 어떤 여성분도
마음이 따스해지셨겠네요~
훈훈함이 전해오는 글.
셀프칭찬에 덧붙여
진심을 담아 칭찬을 보냅니다❤️
셀프 칭찬 할만하네요.
옆에서 본듯 표정까지도 읽혀집니다.
싹싹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지요.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