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추억의 이화장여관 / 김인기
벌써 십 년도 더 지났구나. 내가 혼인할 즈음에 잠시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나는 이화장여관을 만났다. 거기가 충주였을까? 아니, 어쩌면 거긴 단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울한 심정으로 비를 맞으며, 어둑어둑해지는 시각에, 지친 문을 밀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여관 이름으로 이화장(梨花莊)이 잘 어울리는지, 배나무는 한 그루도 가꾸지 않으면서, 가는 곳마다 그와 같은 이름의 여관은 있었다. 하기야 이런 상상 자체가 과분하다. 이화장이라면 오래 전에 죽은 권력자의 처소가 아니었던가? 그 인간이야 싫더라도 그 세도는 좋아서 누가 이름이나마 그렇게 정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비속하다. 언젠가 어느 여관에서 홀로 잠을 자다가 내가 문득 일어났다. ‘분명히 문을 잠그고 잤는데…….’ 잠도 덜 깬 눈으로 보니 내가 간첩인가 하여 누가 경찰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는 제집에 온 손님을 수상한 사람으로 보고 이 기회에 팔자라도 고칠까 한 것이다.
여관에는 여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방이 뜨뜻해도 뭔가 눅눅한 것만 같고, 어딘가 퀴퀴한 냄새가 남은 듯한, 거긴 이상한 공간이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기운이 더하다. 구태여 말하자면 고적함이라고도 하겠는데,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에도 뭔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하여간 나한테는 상당히 비위가 상하는 환경이다.
그렇기로 내가 어쩔 것인가. 여기서 내가 개결함을 찾겠는가. 그나마 집을 나온 지 며칠이나 지난 터에, 객지에서 홀로 떠돌며 질퍽거리는 길을 걷자니, 여간 심사가 울적한 게 아니었다. 이런 터에 내 취향을 따진다는 자체가 이미 적절하지 않다. 나는 체념했다.
역시 여기에도 옷장이 있고, 화장대가 있고, 달력이 있고, 텔레비전이 있다. 수건과 칫솔도 있다. 침대 위에는 베개도 두 개 가지런히 놓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방에 머물렀을까? 그들이 여기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잤을까? 그거야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알 필요조차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누가 감히 인생을 우습다 이를 수 있으랴.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한편으론 그게 가능한 것도 같다. 이게 다 오만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이 싫다. 나는 그렇게도 중얼거렸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니 내 정신마저 해이해지려나.
밖엔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사방은 고요한데, 옆방에서 젊은 남녀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약하게 들린다. 남자는 ‘하자’ 그러고, 여자는 ‘말자’ 그런다. 이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의 높고 낮은 신음이 들리고, 그 여자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남자가 여자를 달래는 소리가 두런두런 이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눅눅한 터에 이러니 잠이 더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텔레비전이나 볼까 하여, 스위치를 넣고, 채널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밤은 깊어 방송도 끝이 났다. 그러자 당시로선 첨단이라 할 비디오가 제 몫을 한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그게 그 이화장여관에서 방영해 준 영화의 제목이었다. 그 얄궂은 이름에 걸맞게 그 영화의 내용도 무척 싱거운 거였는데, 나는 그 영화를 그 자리에서 끝까지 다 봤다. 사는 게 언제나 고상할 수야 없다. 그러니 사실은 그 분위기에 그게 꼭 어울리는 영화이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어디서 그 영화를 봤다니까, 한 사나이가 반색을 했다. 자기는 그 영화를 보고 아주 감동을 했다나. 나는 그 말에 갑자기 까닭 모를 웃음이 터졌다. 내가 왜 그렇게 웃었을까? 나도 몰라. 그 파안대소가 내 물건도 그렇게 멀쩡하다는 잠재의식의 발로였을까? 그렇다면 나도 무척이나 우스꽝스럽고 상스러운 수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