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고종 31) 동학(現 천도교의 전신) 세력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민란. '동학 농민 운동', '동학 농민 전쟁', '갑오 농민 전쟁', '동학란(東學亂)', '동학 민란'으로도 불린다.
조선의 양반이자 사상가인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의 개념은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데 당시 대부분의 농민들은 조선 말기 순조 시대부터 시작된 세도정치와 탐관오리들의 수탈에 크게 시달리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듯 자연스럽게 동학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국가와 관리들에 대한 대중적인 불신, 농민들의 분노로 인해 발생한 혁명이다.
혁명이 전라도 전체로 번지자 조선 조정은 상국인 청나라에 진압을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톈진 조약을 근거로 일본 제국까지 개입하여 혁명을 진압했다. 혁명 진압 전후로 청일 전쟁의 발발, 청나라의 완전한 몰락과 동양의 전통적인 중화 질서 붕괴, 대한 제국 수립과 한국의 친러화[2], 일본의 아시아 패권 장악과 제국주의 본격화로 이어져 한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의 흐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사건이다.[3]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높게 평가되는 역사적인 사건이며, 그 역사적 중요성을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2023년 5월 18일, 동학 농민 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4]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완주 지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고 알려진 구전민요이다.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을 기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BS 사극 드라마 녹두꽃의 Ost로도 사용되었다.
가사 전문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아랫녘 새는 아래로 가고 윗녘 새는 위로 가고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