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마하스(Mahas)
지중해의 이웃
푸른 바다가 앞 마당인
하얀 도시 마하스
벽과 지붕이
흰색으로 빛나고
그림 같은 집과 골목들이
일본인들 취향과 통한다는데
정작 그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한국과 중국관광객이
골목을 누비고 있다.
일본인이 거쳐간 자리에
한국인이 찾아오고
중국인이 뒤를 잇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눈맛이 쓰다
그 셈 밝고 눈밝은 일본인들
익숙한 이곳을 두고
이제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공연한 마음들이 오간다.
& 스페인 론다(Ronda)
슬픈 역사가 서린
타호협곡의 누에보다리
기대를 가지고 찾았는데
영화의 배경이 된 영향인지
다리를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이 구경거리
내 눈이 어두운 탓인가
다시 보아도 협곡을 이어온
다리 말고는 다른 게 안 보인다
& 여행가이드
가이드가 만능이 아닌데,
여행객은
눈에 보이는 건 무엇이든 물어 본다고 한다.
들에 핀 꽃이며 하늘을 나는 새의 이름까지
눈에 보이는 대로
묻는 여행객을 만나면
난감해서
꽃은 붉은 색이면 그냥
그 나라말로 붉은꽃이라고 하고,
새 이름은 적당히 아는 새 이름으로
둘러댄다며 웃어보인다.
현지어를 모르는 여행객은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믿을 수밖에.
꼭 필요한 것만 알기에도 숨 가쁜 세상
가이드의 푸념 섞인 자랑을 들으며
잡다한 생각으로 불편한 나를 돌아본다.
& 스페인 세비야 (Sevilla)
스페인 남부
문화 예술의 도시 세비아
닿자마자 눈 앞에 다가서는
고딕 양식의 화려한 대성당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높은 종루에서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예술과 종교의 개념이 혼란스럽다.
고막을 때리는
종소리를 일상으로 듣고 사는
주민들은 그 소리가
하늘에 닿는 聖音으로라도
들리는지
만나는 누구도
불편한 기색 하나 안 보인다.
종교와 문화와 예술의 경지란
소음도 아름답게 들려야
하는 것인가?
세비야를 떠나오는 내내
아득한 물음이 따라오고 있다.
& 포르투칼 파티마(Fatima)
1917년 세 목동이 본
성모의 발현으로 탄생한
신생 성지
聖物을 파는 거리거리
넓은 광장이 세계에서 몰려든
순례자와 관광객들로
계절이 따로 없다
종교와 인종 문제로 세계가 시끄러운 오늘
이곳에선
언어와 종교의 경계가 무색하다.
밤 미사에 참례한 흑, 백, 황색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부르는
장엄한 성가가 천상의 울림 같다.
양들이 풀을 뜯던 한적했던 시골마을이
기적 같은 순결한 성령의 힘으로
새로운 기적을 쓰고 있다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 뮌헨공항(Flughafen Munchen)
독일 제2도시 공항이라는 이름답게
규모는 멋적게 큰데
여유롭기가 시골 버스정류장 같다.
대기실 넓은 공간이
거의 우리 일행 차지다.
그래봐서 그런지 담당직원들도
우리네 시골 할아버지 걸음처럼
바쁜 게 없다.
북적대는 인천공항을 떠나온 내겐
이 하나도 놀라운 관광이다
& 뮌헨行 비행기 안에서
뮌헨가는 비행기 옆 좌석의 외국인 여성
독일항공기에 독일행 비행기라
당연히 우리말을 모르는 독일인 줄 알고,
우리끼리 여러 이야기를 다했는데
한참을 가다가
말 한 마디 없던 노란 눈의 그 여성
화장실에 가겠다며 능숙한 우리말로
"길 좀 비켜 주셔야하겠는데요"
라며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여성
루마니아대학에서 한국어과를 나와
한국에서 한국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여성이었다.
외국인이 거북해할 말을 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고
거북한 말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돌아보니 등에 땀이 난다.
& 남프랑스 니스(NICE)공항
5월의 남프랑스 휴양도시 니스국제공항
넓은 주변이 여유롭고 선선해서
공항 지붕의 간판 ‘NICE’가
프랑스어 ‘니스’보다
'멋지다'는 영어 ‘나이스’로 다가온다.
한낮 소낙비가 지나간 하늘과 바다가
수정처럼 밝고 푸르고
세계적인 휴양지라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눈엔
철이른 계절 탓인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세계적인 휴양지는 이처럼
여유롭고 선선해야 하는 것인가?
& 소국 모나코(Monaco)
말로만 듣던
모나코 왕국
왕궁은 그림자도 못 보고
주변만 돌아 나오다 만난
왕궁보다 귀한 보석들
바다에 접한 비탈에
빽빽이 들어선 건물
비좁은 거리
지상 같은 지하 도로
곳곳에서 빛나는
소국의 지혜.
궁하면 통한다는
삶의 진리를
만 리 길을 넘고 와서
온몸으로
배운다.
& 남프랑스 아를(Arles)
태양이 빛나는 도시 아를
문턱에 들어서니
곳곳이 온통 빈센트 반 고흐다.
15개월간 머물며
280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는 노란 집과
발작을 일으켜 스스로 귀를 자르고 입원했다는
근처의 정신병원까지
고흐의 이름을 덮어쓰고 있다.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이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매혹적인 도시라며
사랑했던 이곳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쫓겨난 고흐
그가 간 지 200년이 지난 오늘
그를 몰아낸 도시가
그 때의 박대는 눈 감은 채
고흐를 부활시켜 고흐를 팔고 있다.
고흐가 다시 살아난다면
세상은 고흐에게
무슨 말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
상식을 넘은 곡선의 미로
새로운 미학을 연 천재 건축가
가우디로 먹고 사는 도시
그의 천재성을 담아 둔
구엘공원과
100년 전 그가 설계하여
건축 중인 성가족성당
그걸 보려고
세계에서 몰려드는 사람 사람들
가우디의 숨결이 닿은
바닥의 돌과 벽이
반질반질 윤이 날 만큼
인산인해인데
말년에 노숙자로 오인되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불세출의 예술혼이
한 도시, 한 나라를
장엄하게 빛내고 있다.
&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Monestir de Montserrat)
멀리서 보던 아득한 바위산이
올라서 보니
거대한 암벽 아래
큰 성당과 상가를 갖춘
도시를 품고 있다.
무거운 바위를 뚫은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로
관광객이 붐비는
광장 앞에서
뜬금없이 빛 뒤에 가려진
검은 피로 물든
노예의 역사가 떠오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어디를 둘러봐도
그들의 이름은
흔적도 없고
윤색된 얼굴만 빛나고 있다.
명색이 어둠을 밝혀 줄 수도원인데
&
가이드가 느닷없이
부모님 모시고
화와이 여행 다녀왔다고 자랑이다.
해외여행까지는 두고
자식 손잡고 국내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왔으면 좋겠다.
아니 아니 내 팔자에
여행은 과분한 소원이지
마음 열어 함께 안고
실컷 한 번 울어 봤으면 좋겠다.
& 스페인 마드리드(Madrid) 한국식당.
마드리드 거리에서 만난
낯익은 한글 간판 <가야금>
고향에 온듯 반갑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현지인 안내자가 우리말로 인사하고
벽마다 한국 서화로 장식된
한국식 식탁에 앉아
닷새만에 먹어 보는
김치와 된장국
'우리 것이 최고야' 라는
20년 전 박동진 국악인이
호탕한 목소리로 하던 TV 광고가
새롭게 다가 온다.
& 쇼핑센터에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여행객들도
가이드의 유혹엔 속수무책이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흔들리지 않겠다고
중심이 굳건한 소신파도
도미노 블록이 무너지듯
다투어 구매를 한다.
뜨거운 이 모습에
표정관리를 하는 가이드
작은 열쇠고리 하나도
사지 않은 나는
그 매의 눈길을 피해
무슨 죄라도 진 것처럼
애많은 화장실을 드나들며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 차창으로 본 들판
몇 시간을 달려도
낮은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 도로를 달리며
고향집 텃밭을 생각한다.
채 20여 미터의 고랑 하나도
곧게 가꾸기가 어려운데
끝이 보이지 않은 고랑에 자로 잰 듯
종횡으로 일정한 거리에
작물을 심어 가꾸는
기하학적 조형미를 이룬 들판
농사도 농사지만
거대한 예술품 같다.
& 스페인 알함브라(Alhambra) 궁전
복잡한 역사적인 종교의 유물
궁전보다
정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문화유산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스페인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