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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물병 좀 들어주세요" - 푸른꿈아리들과 무돌길을 걸으며
새벽부터 조금씩 비가 내린다. 걱정이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오전 10시부터는 비가 그친다고 하여 일정을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오늘은 광주푸른꿈창작학교의 도보와 자전거를 이용한 이동수업이 진행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출발하는 9시가 되자 비가 멎고 구름이 끼어 이동수업 진행에 좋은 날이 될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무등산 무돌길은 총 15길, 51.8㎞다. 무등산의 고개들을 넘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로 무등산의 옛 이름인 ‘무돌뫼’로부터 무등산을 한바퀴 돌아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오늘 나는 학생들과 함께 무돌길 이동수업 B팀에 속하여 금곡마을에서 출발하여 시화마을까지 걷게 되었다. B팀은 무돌길 3길에서 1길 쪽으로, A팀은 1길에서 3길 쪽으로 이동하여 중간에서 교차하도록 하였다.
10시가 되어 금곡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학교에서 준비한 물병을 나눠주었다. 한 학생이 화장실 앞에서 나를 빤히 보더니 대뜸 말한다.
“제 물병 좀 들어주세요” 하면서 내 가방 옆 주머니에 물병을 집어넣는 것이다.
너무 당연히 넣어주어야 할 것 같이 말한다. 엉겁결에 “그래, 넣어라. 내가 지고 갈게” 했더니 또 “제 곁에 있어야 해요. 멀리 가시면 물 먹을 수 없으니“하는 것이다. ‘아니 내가 니 종이냐?’는 생각보다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를 ‘물병 들어 줄 사람’으로 믿어준 것이 감사하다.
지도하는 선생님과 함께 준비 체조를 마친 후 금곡마을에서 출발하여 배재마을로 향하였다.
주변에 김덕령 장군과 관련된 유적과 전설들이 서린 곳이어서 덕령길이라 이름하고 그 골짜기를 충장골이라 부른다. 금정마을을 거쳐 배재마을까지 이어지게 된다.
감사하게도 어머니들도 세 분이 참여하셨다. 아이들과 걷는 것이 서먹할까 봐 말벗이라도 될 마음 준비를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들과 잘 어울려서 동행하고 있었다.
아직 옛길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울퉁불퉁한 고르지 못한 길은 잘 닦인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에 익숙한 학생들에겐 쉽지 않은 듯 걸음걸이가 힘들어 보이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학생들의 맨 뒤쪽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두 명의 힘들어 보이는 학생들과 나란히 걷게 되었다.
”힘들어 죽겠어요!“ 투정하듯 말한다.
”힘들다고! 어떻게 하면 우리 공주님들이 힘이 날 수 있을까?“
”하하 쌤이 야~호 해 주세요.“
”야, 산에서 사람들이 큰소리로 야~호 하면 산짐승들이 깜짝 놀라 도망가게 되어 짐승들에게도 안 좋고 또 도망가다가 오히려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어 지금은 산에서 야~호 소리치는 것을 자제하고 있는데.“
”그래도요, 야호! 해 주세요. 그러면 힘이 날 것 같아요.“
곤란했다. 우선 산에서 큰소리로 ‘야호’하고 소리치는 것이 익숙치 않아 자신이 없었고, 자제해야 한다고 말해놓고 소리치면 앞뒤가 안 맞게 되어 어려웠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힘이 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아이들은 다시 보챈다.
”힘 나게 해 주세요.“
그때 마침 구세주가 나타났다. 낙오 학생이나 몸이 불편한 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학생들의 맨 뒤에서 따라오던 생활안전부장인 정ㅇㅇ 선생님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때다 싶었다.
”정ㅇㅇ 선생님, 우리 공주님들이 야~호! 해 주면 힘이 날 것 같답니다. 아이들이 힘이 좀 나게 해 주시죠“ 했더니 영문을 모르는 맘씨 좋은 정ㅇㅇ 선생님은 학생들을 돌아보더니 곧장 소리친다.
”야~ 호~“
”야, 이제 힘이 좀 나니?“
”녜“
그러는 사이 3길이 끝나고 2길로 접어든다. 이 구간은 배재마을에서 등촌마을까지다.
배재마을은 백자도요지로서 고령토 재가 달빛에 배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희다고 하여 백토재 또는 이치(梨峙)라고 불렀다. 지금은 이치마을을 순우리말로 배재마을이라 부른다. 또 등촌마을 사람들이 조릿대를 원효계곡쪽에서 채취하여 재를 넘어 다니던 길로 조릿대재라고도 한다. 여기서 채취한 조릿대로 복조리, 빗자루, 삼태기, 바구니를 만들어 광주의 서방, 계림, 양동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유지의 수단을 삼았다. 특히 등촌마을은 정겨움이 느껴지는 돌담길이 있고 숲이 우거져 공기가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 길손들에게 쉼을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는 길에 계단 오르막이 있었다. 힘들어서 망설이는 학생들에게 시범이라도 보이듯 내가 성큼성큼 오른 후 계단 위에서 기다렸다. 힘들게 어렵게 계단을 다 오른 한 명이 대뜸 말했다.
”하하 쌤은 등산 모임 대표시죠?“
”아니, 난 등산 모임 회원도 아닌데.“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올라가세요?“
”내 몸을 내가 쉽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평소에 하루 10000보 이상씩을 걸으려고 일부력 노력한 때문일 거야. 너희 매일 노력하면 잘 걸을 수 있어. 그래서 이런 이동수업도 하는 거구.“
”그래도 너무 힘들어요“
‘그래, 학교가 힘들여서(?) 너희들을 힘들게 하는구나. 그래도 이렇게 우리가 우리 땅을 밟고 걷는 일을 통해 광주와 자연을 알고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것이란다.‘는 말을 애써 삼킨다. 꼰대로 나서기보다는 기다리면서 아이들이 서서히 깨닫게 되기를 바라면서.
길을 가노라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앞서가던 선생님이 소리친다.
”얘들아, 조심해. 내리막길이야.“
”미끄러지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조심“
몸뚱이로 보면 오히려 선생님을 돌봐얄 듯 싶은데, 선생님들의 안내와 지도에 따라 학생들의 순순히 따르는 모습이 흐뭇하기만 하다.
이제 마지막 1구간이다. 등촌마을에서 신촌마을을 거쳐 들산재를 지나 각화저수지, 각화시화마을에 도착하는 경로이다. 들산재는 각화마을 사람들이 싸리를 채취하러 주로 넘나들던 고개길이어서 싸리재라고도 부른다. 이 싸리를 이용하여 빗자루, 삼태기, 바구니, 병아리둥지 등을 만들어 서방, 계림, 양동시장에 내다 팔아서 가정경제의 토대를 삼았다. 이는 각화마을의 특산물처럼 이름이 나서 싸리길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또 신촌마을 지나는 길엔 가야금병창 문명자 선생의 성전국악전수관을 지나게 되어 예스러운 가락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황ㅇㅇ 선생님은 등 뒤와 앞에 가방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니, 뭔 가방이 그리 많아요?“
”아. 얘들이 힘들다고 해서 제가 대신 들어주는 거예요.“
”그런다고 가방을 그렇게 많이 메고 가요. 제가 좀 나눠서 들어드릴게요.“
”아뇨, 담임인 제가 들어다 준다고 했으니 끝까지 들어다 줄 거예요. 얘들과 약속을 지켜야 해요.“ 하면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애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메고 힘차게 걸어가는 황ㅇㅇ 선생님이 고맙고 든든하다.
그러는 사이 도착지인 각화저수지가 보인다. 각화저수지는 일제 강점기에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무돌길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운치가 있고, 곳곳에 코스모스까지 피어서 눈길을 끈다.
각화저수지에 이르자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배고프다며 어서 ’밥 먹자‘고 아우성이다.
’그래, 나도 배고프다. 어서 가서 밥 먹자‘
약 3시간 동안 광주와 무등산의 속살을 살피며 푸른꿈아리들의 말과 행동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투정도 있었지만 힘든 가운데 서로 돕고, 학교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 학교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가운데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경험을 하도록 해 주고 싶지만 워낙 다양한 학생들의 개인차를 고려하여 그칠 수밖에 없어 아쉽기는 하다.
”제 물병 좀 들어주세요“에서 느끼는 푸른꿈 아이들의 무한 신뢰의 마음
”야호! 해 주세요. 그러면 힘이 날 것 같아요.“에서 힘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
그리고 아이들을 곁에서 말로 몸으로 지원, 응원하는 선생님들의 애정어린 마음
”힘들어요“하면서도 끝까지 함께 걸으며 견딘 푸른꿈 아이들의 도전하는 마음
이 마음 마음들이 하나같이 귀하고 소중하다.
이 귀하고 소중한 마음들을 한데 모아 푸른꿈아리들이 무등산을 넘고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 전역에서 나름의 꿈을 펼치게 하고 싶다. 유라시아 대륙까지 쭈욱 나아가는 푸른꿈을 꾸고 키우고 이루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전율이 된다. 푸른꿈아리들의 충천한 마음을 온몸에 새기며 무돌길 걷기를 마친다.(2023.9.27.)
첫댓글 교장선생님, 선생님들께서 평소 학생들과 친숙하신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보기좋습니다. 학생들이 당돌하게도 여겨지지만
선생님들을 편히 믿고 따르는 순수함으로 생각됩니다.
아이들과 무돌길을 걸으며 철없는 투정도 받아주고 함께이고자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교육은 참 어렵다고합니다.
교화(?)가 쉽진않으나 더,더 애쓰다보면 바람직한 사람으로 성장하겠지요.
하하교장쌤~
친근한 아버지같습니다.
아이들 사이로 스며드는 따스한 하하쌤~
참 좋은 선생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