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Dream
뉴질랜드 백동흠
전공을 살려
-테디, 자네 얼굴에 활기가 넘치는구먼.
-예, 형님. 제 전공을 찾아서요. 벌써 한 해가 됐네요. 나이 들어 손에 잡은 전공 관련 일이 참 편해요. 나무 정원 관련 일이 제겐 딱 맞거든요.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얘기네. 잘했구먼. 자네 전공이 원예계통이었던가?
-예, 제가 농고에서 임학을 공부했어요. 농대 가서도 원예학을 전공했거든요.
뉴질랜드, 유명 가든 묘목 업체인 kings Plant Barn에서 일하고 있는 테디의 손등 근육이 탄탄해 보였다. 테디가 일하는 작업장 한 쪽에 자리한 가든 카페에 꽤 사람들이 붐볐다. 중장년의 현지인, 키위들이 테이블마다 앉아 담소를 나누며 토요일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정겨웠다. 올해 골드카드를 소지한 앤디나 예순을 갓넘은 테디도 코리안 키위였다. 앤디가 우연히 테디 사는 북쪽 지역, 오레와 실버데일에 들렸다. 테디에게 전화하니 마침 쉬는 날이었다. 자연스레 테디 작업장 가든카페에서 만났다.
-형님, 세상일은 잘 모르겠어요. 대학 졸업하고 산림청이나 수목원 같은 곳에 취직하려 했거든요. 웬걸요. 취직이 안되더라고요. 일반회사 영업직에 들어가 잔뼈가 굵었어요. 스물 일곱에 졸업하고 15년을 다니다 보니 마흔둘. 그때 현실 점검해서 뉴질랜드 이민을 결정한 거거든요.
-그때, 용감하게 결단을 잘 한 셈이지.
-그러게요. 이민 와서도 영주권 받겠다고 바로 장기사업비자 받는 길로 들어섰지요. 5년을 런치바해서 영주권 받고, 13년을 빨래방해서 살다 보니 육십갑자를 맞았지 뭐예요. 애들도 독립했겠다, 허리 좀 펴니 옛날 제 전공이 생각났어요. 폴리텍에서 조경학을 1년 공부하다 현장실습 후, 이 회사에 취업이 된 거지요.
-대단하네. 그 나이에 전공을 살려 일하게 되다니. 행운아일세. 자네의 성실성과 야무진 일솜씨를 회사가 사준 것이지. 수십 년 만에 전공을 살려 은퇴잡으로 삼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과찬의 말씀이고요. 여하튼 일에 재미도 있고 내일 같이 느껴져요. 농고 나오고 농대 나와서 제 화원을 차리고 싶은 작은 꿈이 있었거든요. 이제 제 화원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전 제 일처럼 즐겁게 일하거든요. 딱 제 화원 같아요.
-Little Dream이구먼. 늘그막에 그 꿈이 이루어진 거니 참 부자일세 그려.
-형님, 뭐 좀 더 시키세요. 이곳은 제 홈그라운드니까 다 제가 삽니다.
보너스처럼
조금 전 시켜 먹었던 프렌치 토스트에 와플 베이컨이 추가로 나왔다. 따스한 라떼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마셨다. 음식 맛이 풍요롭고 그윽했다. 담소 나누는 즐거움이 화원 속 물소리를 타고 흘러갔다. 쪽빛 하늘도 따사로이 가든 하늘 유리를 통해 내려왔다.
-형님도 뉴질랜드 와서 작은 꿈을 이뤘다고 언젠가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자네 기억력이 대단하네. 큰 욕심 부리지 않은 소망이 있었는데 그런대로 좋은 경험을 한심이지. 난 초등학교시절, 섬마을 선생님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 한 열 살 때쯤 꿈이었을 거야.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한 후, 마흔다섯에 뉴질랜드에서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했네. 토요일마다 학교를 여는 오클랜드 한국학교에서 4, 5, 6 학년을 3년간 교사로 봉사한 거야.
-그래요? 섬마을 선생이 아닌 섬나라 선생이 된 거네요. 정말 신기하네요. 삼십오 년 후 작은 꿈을 이루었군요. 저도 얼추 삼십오 년 뒤 전공을 살린 일을 하게 됐는데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 끼리끼리 만난다고. 우린 같은 과 인생이구먼. 그래서 이렇게 오가며 만나서 잘 통하는가 싶네. 이민 와서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서로 공감하고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면 다지. 그 이상 뭘 더 바라겠어.
-맞아요. 생각나면 언제든지 전화해서 안부도 묻고 불쑥 오늘처럼 번개 만남도 갖는 것이 좋은 몫이지요.
-그래그래. 난 그 3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어. 아이들도 잘 따랐고, 나 역시도 평소에 재미있고 유용한 학습 준비로 수업 시간이 참 알토란 같았어. 학교 신문도 만들고, 학급 문집도 내고, 관리 주임 일을 맡아 학교 시작 전 모든 교실 문 열고 끝나면 문단속 다하고 퇴근했지.
사람들 마음속에 심어둔 작은 꿈은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지몰랐다. 구하려는 마음이 강한 사람에겐 하늘도 언젠가 보너스처럼 작은 꿈의 기회를 선물해주었다.
디지털 노마드
-여하튼, 오늘의 브런치는 아주 맛있고 술술 넘어가네. 늘그막에 부자는 자기 손에 좋아하는 작은 일이라도 가진 자 같아. 즐기는 전공을 살리는 삶, 그 일에 폭 빠지는 기쁨, 나와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일은 오래가는 법이지.
-형님도 즐거운 말과 재미있는 글로 이웃과 나누는 삶이잖아요. 즐거운 생활 모습으로 보여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는 생활은 작은 축복 같아요.
-샌디, 고맙네. 사람을 보려거든 후반생을 보라는 속담이 생각나네. 늘그막에도 좋은 일에 호기심 갖고 배움을 계속한다면 그 낙이 복일 거라는 생각이네. 요즘 세상은 스마트폰에서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배울 수 있어 좋아. 난 요즘 책 만드는 프로그램 epub 배우는데 폭 빠졌지.
-저도 들었어요. 온라인 세상에 일인 지식기반으로 일인 출판사도 유망해 보여요. 디지털 노마드의 직업이 되겠지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디지털 기를 활용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늘그막에 첨상첨화겠지요.
–우리가 사는 뉴질랜드를 기반으로 한 알림과 연결과 통합의 일을 할 수도 있겠지. 요즘, 유튜버와 블로거, 번역가, 편집 디자이너, 작가들이 그 대열에 합류해있더구먼. 최근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 디지털을 활용해 지혜롭게 살아가고들 있더구먼.
늘그막에 인생, 백세시대에는 몸으로만이 아닌 경험치를 살려 지식기반을 토대로 디지털 노마드로 옮겨가는 추세라는 데 앤디와 샌디는 공감했다. Little Dream이 또 하나 심어졌다. 대학 시절 서클 활동 중 해지는 줄 모르고 머리를 맞댔던 미네르바 모임 터가 불현듯 앤디 가슴에 되살아났다.*
출처- 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243회). 뉴질랜드 타임즈. 28/08/2020
첫댓글 작은 꿈을 실현한 분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좋은 글 잘 감사히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뉴질랜드는 지금
8월. 겨울입니다.
비바람이 세군요.
건강하시구요.
이제는 디지털 노마드를 벗어나기 위해 꿈을 계속 펴나가시는
지금까지의 노정들이, 무엇보다도 꿈으로 그치지 않고
결실의 단 맛을 즐기고 계시는 모습들이 부럽고 보기 좋습니다.
안녕하시지요? 뉴질랜드도 변화가 많습니다. 코로나 진정에서 올라갔다 이제 다시 회복국면입니다.
아무쪼록 건강과 평안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