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고해소 4
임해원
아침을 데리고 온
꽁지가 붉은 새의 숨을 내 갈피에 넣는다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나를 열댓 바퀴쯤 돌고 간
그 새가 나뭇가지 하나면 잠드는 것이 충분하다고 일러주네
내 피가 순해지고
그의 왼 손을 내 오른 손으로 잡고 걷던 길
누군가 불러준 휘파람이 있고
누군가에게 불러준 휘파람이 있어
그러다, 그러다 아무 마음도 못 만나고 돌아간 마음도 있다
그 나무에 그 새가 앉듯 내 어깨도 너에게 내어주려다
문득, 풍뎅이 여섯 발을 아무 미움 없이 부러뜨린
유년의 기억은 택도 없지, 접는다
가쁜 숨으로 가뿐히 날아가는 새를 보며
울컥, 고개 드는 하늘나리
쌓일 곳을 찾던 혼잣말들이 숨어들고
세상은 멀리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숲, 고해소 5
가을은 산굼부리 갈대숲에 서있었다
바닷바람 앞에서 서두는 그들의 춤은 탈출이었다
기진한 그들이 분화구 언덕을 수의처럼 덮었다
세상 뒤 쪽에서, 더 뒤 쪽으로 숲을 밟고 건너갔다
오래 숨어있어 파래진 얼굴 산도라지도 따라갔다
생각이 많은 것들은 고요가 깊었다
찬바람에도 수천의 얼굴이 함께 누웠고
수천의 얼굴이 함께 어두워졌다
이 언덕이 이렇게 빛나는 한 때를 가졌다는 게
가슴에 더운 피를 돌게 해
구멍 숭숭한 돌들 사이에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좋았다
바람에 맞서는 그들의 춤은
마구, 또 일어나 적막을 덮는다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알아차린 가을
갈대숲 은비늘에 찔린 서녘하늘을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