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가는 시간
알록달록한 풍경
코스모스가 아기의 미소처럼 싱그럽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엔 그리 풍요롭지 못했다.
농지정리가 안된 논이 많았고, 그나마 내가 사는 곳에는 논이 많지 않아
산 계곡에 조그만 귀퉁이도 경작을 하곤했다.
대부분 밭작물이 많아서 쌀이 무척 귀한 시절이었다.
식사시간에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버지 밥만 쌀이 섞인 밥이고 우린
주로 꽁보리밥이었다.
보리를 도구통(절구통)에 뜩뜩 문질러 씻은 다음
삶아서 바구리에 담아두던 그림이 그려진다.
어른들이나 손님이 오시면 드시던 밥이 남겨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결혼식이나 제사 같은 행사가 있는 날엔 유일하게 쌀밥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이었다.
사실 그땐 기계로 된 농기계도 없어 소가 대신했고 쌀수확양도 많지 않았던 때이다.
그래서 초등학교때는 도시락을 서랍에 넣어두고 한 숟갈씩 떠먹고
얼른 닫아버리던 여자아이도 있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우리는 종종 서숙(조)밥을 먹기도 했다.
조금 질게 해서 일반게로 담은 게장으로 비벼 먹기도 했다.
서숙밥, 그 이전엔 사실 그것도 없어 못먹었다고 한다.
메조는 꺼끌꺼끌해서 목에 걸려 먹기가 쉽지 않아 다른 것과 섞어서 먹기도 했다.
허기진 속을 달래주던 밥한끼는 고구마와 콩을 넣고 미끄덩허니 미역국에 훌훌 말아
먹기도 했다.
애기 낳고도 쌀밥은 먹기 힘든 때였다.
차조는 떡이나 술을 빚어 먹기도 하고, 보리밥은 단술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맘때면 고구마를 수확해서 생으로 깍아 먹기도 하고 구워 먹기도 했는데
한끼 식사 대용으로 많이 먹었다.
늙은 호박을 삶아 먹기도 했던 시절, 눈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밥이었다.
요즘은 별미로 먹지만 그땐 귀한 음식이었다.
그시절 정부의 혼식 장려와 납작보리 정부미가 나오기도 했었다.
어려운 시절 속에서도 어머니의 눈물과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요즘 가을엔 갓나온 쪽파와 녹두를 갈아서 만든 부침개와 도토리를 주워
만든 묵이 가을 밥상에 오르기도 한다.
상추와 버무린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사발이 제격이다.
가을이 익어가는 시간
세월의 흔적을 곱게 간직한 빨간 나뭇잎들이 자지러지며 켜켜이 쌓여 간다.
지난 시절 추억의 책장처럼 넘겨지며 가을은 익어간다.
옷깃을 여미고 가을의 숨결을 느끼며 풍요로운 가을을 꿈꿔 본다.
가을!
들국화 한송이를 꺾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을을 전해주고 싶다.
첫댓글 하하님들 안녕하시지요?
가을이 달려가고 있어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향기나는
가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도구통 바구리 서숙밥...
정겨운 단어들네요~^^
지금은 풍요로움만 느껴지는 가을이 되었구요.
또르르 날아든 단풍잎처럼
마음 따뜻한 아기편지 감사합니다.
따스한 가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옛시절을 그리워하는 건준님.
잘 지내시지요.
새 일터는 정해지셨는지요.
매월 거르지않고 보내주신 편지는 잘 읽고있답니다.
어린시절 무안의 들녘은 풍성했겠으나 논보다는 밭 일색이라 쌀이 귀했겠지요.
그래도 회무침이 일색인 바다의 운저리가 있지않았을까요?
낙지계의 넘버원인 뻘낙지는 또 어떻구요.
건준님 글을 읽을때마다 다시는 돌아갈수없는 어린시절로 잠시 돌아간답니다.
추억이 많지않은 저로서는 추억많은 건준님이 부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