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벌써 4개월째 들어섰네요. 통증이 평생 갈 수도 있겠어요.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라고 진단을 내린 의사의 표정에 안타까움과 걱정이 가득하다. 진단명도 ‘대상포진’에서 ‘신경통’으로 바뀐단다.
내 자신 이미 예상한 바가 있어 별 요동 없이 받아들인다.
다른 때보다 더 신중하게 등, 옆구리에 신경주사를 꽂으며 “잘 참으시네요.” 한다.
주사액이 신경 곳곳에 주입이 되며 일으키는 만만찮은 통증.
어디 그 무시무시한 대상포진의 통증에 비할까.
한 달 분의 약을 뭉텅이로 받으며 돌아서 약국을 나오는데 갑자기 목이 콱 메이며 눈물이 쏟아졌다. 신경주사로 생긴 어지럼과 매스꺼움이 눈물을 더 부추겼다. 인적없는 모퉁이를 찾아 흐르는 눈물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꼭 택시 타고 집에 가세요.” 남편의 염려를 뒤로하고 낙엽 뒹구는 가을 길을 걸었다.
‘장기 환자, 장기간 고강도의 약 복용, 장기 약 복용으로 인한 정기적인 간 검사, 재발가능성 높은 대상포진에 대한 염려...’ 갖가지로 조마조마하며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확인됐을 때의 심정. 세상에서 나만 버려진 듯, 외톨이가 된 듯 경계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었다.
그렁그렁 울먹이며 걷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진료 때마다 항상 동행했던 남편인지라 걱정이 무척 컸으리라. 대상포진 발발 후부터 지금까지 내 곁을 지키며 온 힘을 다해 헌신해 준, 하나님 다음으로 나의 유일한 보호자인 남편. 통증에 시달리는 아내의 아픔을 나눌 수 없는 무력함에 가슴 아파했던 남편. 감사로 눈물이 핑 돌았다.
대상포진!
지난 7월 23일. 폭염이 한창 진행되던 휴가철이었다.
휴가 중인 아들을 만나러 통영을 가는데 갑자기 오른쪽 가슴을 콕콕 찌르는 통증이 왔다. 외관상 아무런 이상 없는 통증이기에 이튿날 밤 광주에 도착하여 그 다음날 내과를 찾았다. 검사 결과 숙변이 통증의 원인이란 진단을 받았다. 항상 장운동이 활발한지라 수긍이 가지 않았지만 여러 검사를 통해 내린 결과이기에 믿었다. 이 진단은 3일 밤낮의 극심한 통증을 견뎌내게(?) 한 무능한 의사의 오진이었다.
4일째 아침에 발견된 발진.
오른쪽 배, 옆구리, 등에 퍼져있는 수포는 영락없는 대상포진이었다.
평소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내과 질환 없이 건강한 나. 건강을 자신하였기에 이제껏 집에서나 집 밖에서나 활동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을 만큼 건강에 대하여 자신만만하였다. 따라서 모든 예방접종을 무시하였다. 대상포진 예방접종도 물론이었다.
대상포진에 대한 무서움을 얼핏 듣기는 했지만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나와 관련 없는 것이라고. 이렇듯 건강에 대한 자만은 차고 넘쳤다.
그러는 중에 난 벼락 맞듯 대상포진을 맞았다. 아무 준비도 지식도 대책도 없이. 문득!
외래치료로는 언감생심, 입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7일간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도 대상포진에 대해 난 너무 안이했다. 발진이 아물도록만 치료하면 예전처럼 회복되리라 당연하듯 생각했다. 이때에도 대상포진 후의 신경통에 대해 언급했던 의사의 말도 남의 일처럼 흘려보냈다.
퇴원 후 2일째가 되면서부터 날 송두리째 점령한 대상포진 신경통!
시도 때도 없이 날 칼로 바늘로 송곳으로 찔러대는 듯 견딜 수 없는 통증.
때론 번개 치듯 찌르르 연타로 후벼 치고 찌를 땐 기절할 만큼 아팠다.
“아퍼! 아퍼! 너무 아퍼!”
엎드려 울부짖었다.
수포 발진으로 한 자세로만 누워 남편의 도움 없인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손끝 하나 움직임도, 옷깃만 스쳐도, 바람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극심한 통증은 내 온몸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날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아무 생각마저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몇 날 몇 밤을 남편은 옷을 걸치며 “어서 병원 갑시다. 이렇게 아파서 어떻게 살겠어요. 다시 입원합시다.” 통증에 휩싸여 허리조차 펴지 못하는 내게 애걸하다시피 사정을 했다.
‘내일이면 더 나으리 내일이면 더 나으리...’
차일피일 확신 없는 내일을 믿으며 난 아무 대항도 못 하고 대책도 없이 인정사정없는 통증에 속절없이 당했다. 인내도 때에 따라 거슬러야 하는 것을. 지혜 없이 견디고 또 견뎠다.
죽을 만큼 아픈 통증을 온몸으로 받아 낸 내 몸에 진심으로 미안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더냐.
폭염의 한여름도 한줄기 가을바람에 스러진다. 내 극한의 통증도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듯 서서히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 손도 대지 못하고, 옷깃 아닌 실오라기 스치는 것까지도 거부했던 발진 부위의 외부 통증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벼워지며 외출을 허락했다. 흉터로 남아 나의 일부분이 된 듯한 발진 부위를 아기 어루만지듯 어루만져 보곤 한다. 아직도 찌릇찌릇 칼로 에이는듯한 통증은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간혹 날 온전히 떠나기가 아쉬운지 내부에서 콕콕 노크하는 통증도 사랑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아픔이 사랑으로 승화된 것일까. 어쩌면 평생을 나와 동행하며 운명을 같이할지도 모를 통증이다.
예기치 않게 날 찾아온 방문객, 대상포진!
어쩌면 지난날의 나를 청소하러 왔는지도 모르겠다.
웃으면서 감사하게 맞지는 못했지만, 보낼 수는 있겠다.
잃음도 있었지만 많은 걸 안겨 준 대상포진!
건강과 세월에 대한 자각을 하게 했다.
또 이후의 삶은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바늘 끝의 떨림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날 숙고하게 하였다. 한편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눈물겹도록 소중한 사랑과 은혜를 참으로 많이 입었다. 몸이나 맘이 아픈 님들에 대한 진정한 측은지심의 길은 어떠해야 할까에 대한 배움의 기회도 되었다.
가을볕으로 베란다가 훈훈하다.
중추의 깊고 푸른 하늘, 각색으로 물들어 예쁜 단풍잎들.
서늘한 바람이 날 가을 속으로 스미게 한다.
오감을 통해 느끼는 감각들이 새롭다.
매일이 감사하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첫댓글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감히 추측만 할 뿐입니다. 조금씩 회복 중이라니 다행이구요. 고생하셨어요❤️
왈칵 눈물이 나려해요.
말로만 듣던 극심한 통증을 어찌 짐작이나 하련지요.
출산보다 더한 고통을 어찌할수없이 감내해야하니 그 몸고생 마음고생이 얼마일지요.
그저 지켜봐야만하는 우리의 마음도 이럴진대 가족의 노심초사는 또 얼마나 클까요.
부디 하루빨리 완치되길 빌어요.
어서 빨리 나아서 우리 무등산도 가고 선암산도 가요.
그런날이 금방 정말 금방 올거예요.
반드시요!
운동 마치고 오는 몹시 기분 좋은 날
갑자기 부래지어속에 벌어 숨어든 듯
벌이 쏩니다.
쳐다보고. 찾아봐도 벌 한마리
없습니다.
그 통증 너무 아파 ㅡ 피부과.
곧 대상포진 의심 ,
한센 병원 피부과 行.
피부과를. 갔고
피검사 대상포진 치료후.
몇달 후
재발 . 면역주사 맞기전
치료후 재발 경험했음.
사모님. 죄송죄송
합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혼자 힘든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