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상생(金火相生)
겨울은 쉼표다. 갖가지 색과 형상으로 인간을 위로하던 꽃들도, 독이 잔뜩 오른 동물들도, 서리가 내리면 모두 제 자리를 찾아 겨울준비에 분주하다. 세상은 무채색의 이불을 덮고 긴 겨울잠에 든다. 부활을 꿈꾸는 동안거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숨소리만 들릴 뿐, 먹이사슬도 없고 상생도 상극도 없다. 오직 하늘이 열어주실 봄의 재림만 기다린다. 싸우고 헐뜯고 증오했던 지난날에 대한 뉘우침의 시간이다.
사람에겐 겨울잠이 없다. 편히 쉴 줄도 모르는 인간은 춥고 삭막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불을 피운다. 굴뚝마다 연기는 예나 지금이나 평화로운 시골 저녁의 상징이 아니던가! 요즘은 벽난로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제법 운치있게 겨울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어영부영 나의 1막이 끝났다. 도시에서의 1막은 큰 성과도 없이 그저 치열하기만 했다. 간간이 친구도 생겼지만, 서로 생채기를 내며 미워한 사람도 많았다. 유독 나에게만 나쁘게 작용하던 상극인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나를 그리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화해나 사과 그리고 변변한 작별인사도 없이 모두 그렇게 제 갈 길을 갔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역주행을 했다. 고향 근처 텃밭이 딸린 조그만 시골집에서 나의 2막을 열었다. 행여 마음 쓸 일이 적을까 봐 대상을 사람에게서 자연으로 돌려보았다. 큰 벼슬을 한 바도 없지만, 귀거래사를 노래한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가마솥도 걸고, 창이 큰 벽난로도 들였다. 마음은 분주하고 몸은 힘들어도 소소한 즐거움으로 새 장을 열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참나무가 탄다. 불쏘시개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장작에 불이 붙으면 겨울을 나는 외로운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예쁜 불꽃이 피어난다. 난로에서 피는 그 꽃은 귀한 겨울꽃이다. 스페인 무희의 훌라맹고처럼 정열적이고 원색적인 불꽃의 춤사위와 온기에 이끌려, 사람들은 난로 앞으로 몰려든다. 몸은 한 곳에 있어도 머리는 제각각 지난날을 더듬으며 추억속으로 빠진다. 아무런 표정 없이 멍해져서 이를 “불멍”이라 하나 보다. 1막에서 잘못되었던 인연과 매끄럽지 못했던 결과들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며 나를 아프게도 한다.
뜨거운 불은 쇠를 녹인다. 그래서 원래 불과 쇠는 상극이다. 쇠로 나무를 베니 금목도 상극이고, 물이 불을 꺼버리니 수화 또한 그러하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이 시작되니 생사도 상극이겠고, 부부도 전생에 원수가 만난 사이라 하니 일견 그럴듯하다.
세상일이 그렇듯 인연도 무상하다. 언제까지나 상극이고 상생인 관계는 없다. 하늘이 관계를 설정할 때 그것을 뛰어넘을 반전의 실마리도 함께 주셨음이다. 해서, 볼품없는 저 벽난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전의 역사를 썼다. 도끼에 찍힌 나무가 다시 쇠 안으로 들어가 이들의 반전을 부추겼다. 평소 질시하던 마음을 내리고 은밀한 사랑의 대화를 통해 극적인 타협을 이루었다. 서로를 해치는 대신 다독거리고 도우며, 이들의 관계를 예상밖의 뜨거운 상생으로 바꾸어 냈다.
차가운 쇠붙이와 뜨거운 불이 만든 위대한 성취이다. 불이 아버지라면 쇠붙이 난로는 어머니이고, 자식인 불꽃을 피워내는 연소실은 분명 어머니의 자궁일 것이다. 전생의 원수라던 부부가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어, 서로 참고 도닥거리며 자식을 낳고 키워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세상에 이보다 더 포근한 상생의 역사가 있었던가? 이들의 사랑으로, 차갑기만 하던 쇠붙이가 변했고 세상은 따뜻해졌다.
대지에 푸른빛이 돌면 사람들은 불꽃을 버린다. 봄꽃에 밀려 배신의 쓰라림을 맛본 난로는 인간이 다시 찾을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철 지난 겨울잠이다. 땅에 떨어진 꽃씨는 이듬해 봄에 스스로 부활을 시도하지만, 불꽃은 저를 버린 인간에게 굳이 생명을 구걸하지 않는다.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인간은 뻔뻔하게도 제 발로 찾아와 난로의 자궁문을 연다. 수태의 시간이었을까? 다시 불꽃이 피어난다. 그렇게 어미 난로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불꽃의 화려한 부활은 되풀이된다.
난로의 화양연화는 추억 속에 남는다. 튼튼한 난로의 쇳덩이가 녹슬어 부서지고, 얼굴에 하나, 둘 저승 반점이 생겨나면, 연로하신 어머니처럼 더는 불꽃을 잉태하지 못한다. 그렇게 소임을 다한 난로는 고물상 뒷마당에 쪼그려 앉아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으며 젊은 날 세 식구가 이루었던 꿈같은 시간을 되새긴다. 그 뜨겁고 벅찬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정해진 길은 없다. 처음부터 원수도 친구도 아니었다.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면 얼마든지 적을 동지로 바꿀 수도 있음을, 저 쇠붙이 난로가 몸소 보여주지 않던가! 버젓이 두 눈 갖고, 굳이 한 쪽만 바라보며, 끝끝내 자기만이 옳다고 우겨대는 외골수의 인간들! 남의 생각을 인정할 줄도, 대화할 줄도 모르는 편협한 인간들을 저 고물상의 퇴역한 난로가 꾸짖고 있다.
나의 2막은 어떻게 살 것인가? 원하든 원치 않든 또다시 많은 인연과 사건들이 오고 가겠지. 언젠가 나도 저 난로처럼, 녹슬고 등이 휘어 고물상 마당에 덩그러니 남겨지더라도, 나는 저 쇠붙이와 불의 반전을 잊지 않을 것이다. 1막에서 못다 푼 앙금들을 말끔히 씻어내리고, 도 다른 상생을 도모해야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초로의 아내가 난로에 불을 피운다.
첫댓글
좋은 수필 감상 잘하고 갑니다.
모두 상극이라고 생각하는 금화를 상생의 역발상으로 바꾼 형상화가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찌 그리 매끄러운 글을 쓰셨는지요.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