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과 윤도현의 노래를 듣게 한 시
이승하 시인
2024. 5. 4. 7:52
여름 저녁
박숙경
마른 화분에 물을 주다가
문득 내다본 바깥이
해거름일 때
엄마 손에 잡혀 들어가는 아이의 눈빛이
그네의 시간을 흔들 때
텅 빈 그네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았을 때
어디든 상관없이 해거름처럼 버는 괭이밥에 괜히 신경이 쓰일 때
태복산 쪽 하늘이 먼저 붉게 글썽인다
텔레비전은 마침맞게 경포대 저녁놀을 배경으로 깔고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김창완을 내놓는다
기타를 치며 부르는 너의 의미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참 대단해 작사 작곡 노래에 기타까지
그러던 참인데 윤도현이
나의 하루를 가만히 닫아주는 너
옷을 여민다
소낙비 같다
ㅡ『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 2024)
낯선 시인의 낯선 시
이번에 세 번째 시집을 냈는데 잘 모르고 있던 시인이다. 편편의 시가 새롭다. 「여름 저녁」 제일 앞 3연이 서정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훈련된 자의 포즈가 아니어서 좋다. 네 번의 ‘때’에 대한 묘사가 아주 싱그럽다. 그런 때, “태복산 쪽 하늘이 먼저 붉게 글썽인다”고 한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황혼의 나이에 이른 김창완이 나와서 <너의 의미>를 부른다. 김창완은 어떻게, 늙지도 않나. 그 생각을 하던 참에 윤도현이 <사랑, two>를 부른다. “나의 하루를 가만히 닫아주는 너”라고. 황혼을 맞이라는 바로 그 시각에 두 사람 노래가 화자의 심장이 쿵 내려앉게 한다. 그리하여 옷을 여민다. 마치 소낙비를 맞은 기분이라고 한다.
이 두 가수는 히트곡도 많지만 꾸준히 노래를 불러온 가수다. 우리 주변에는 소년 급제한 이들도 많지만 이처럼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온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시절의 노래를 들으면 어떨 때는 옛것이 참 새롭다. 오늘은 토요일, 박숙경 시인 덕분에 두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번 시집에 실려 있는 「여름 방학」이라는 시도 기막하게 좋다.
박숙경 시인은 1962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2015년 『동리목월』 여름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날아라 캥거루』, 『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가 있다.
https://youtu.be/YESak3_piU4
https://youtu.be/ptSHJF1Jl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