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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여하튼 노랗게 웃는다.
- 중략 -
인도블록과 블록 사이, 인도블록과 담장 사이,
담장 금 간 데거나 길바닥 파진 데,
민들레는 여하튼 틈만 있으면 웃는다. 낡은 주택가,
너덜거리는 이 시꺼먼 표지의 국어대사전 속에
어두운 의미의 그 숱한 말들 속에
구석자리에, 끝끝내 붙박인 ‘기쁘다’는 말,
민들레는 여하튼 불멸인 듯 웃는다.
- 문인수 詩 <밝은 구석> 일부
찡그린 꽃을 본 적 있는가? 민들레는 웃는다. 들판의 둑길가이건, 도시의 시궁창 옆이건, 보도블록 갈라진 틈새건 가리지 않고 피어서 가리지 않고 웃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놀라운 경지가 어디 있는가? 민들레가 웃는 건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대낮에도 꺼지지 않는 샛노란 별빛이 되어 세상을 밝힌다. 어느 경전에 이보다 더 확실하고 감동적인 긍정의 말씀이 있는가, 높은 키에 커다란 얼굴을 한 해바라기도 해를 향해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하는데, 가장 낮은 땅바닥의 민들레는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다. 태양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얼굴이다.
4월은 온통 ‘꽃대궐’이고 꽃잔치다. 나무에는 매화, 산수유, 목련에 이어 진달래, 개나리, 벚꽃, 복사꽃, 살구꽃, 자두꽃 등이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땅바닥엔 봄까지꽃, 냉이꽃, 민들레, 제비꽃, 유채꽃, 광대나물 같은 월동을 한 풀들이 꽃을 피운다. 일찍이 이해인 수녀는 <민들레의 영토>란 시를 썼지만, 이 땅은 어디나 모든 꽃들의 영토이고 그들의 세상이다. 자리다툼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같이 망하자는 경쟁은 아니어서 결국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룬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을 싫어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도 없거니와, 꽃은 꽃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뭐라고 제멋대로 다른 종과 비교하여 우열을 말하는가. 더구나 선거철이 되고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인간들의 면면은 결코 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러나는 마당에, 눈송이처럼 날리는 벚꽃의 낙화 같은 아름다운 뒷모습은커녕, 마지막까지 온갖 추태와 몽니를 부리는 행태에 과반수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냉이꽃 봄까치꽃에 이어 제비꽃과 민들레가 한철이다. 특히나 민들레는 번식력이 강해서 세상이 온통 민들레의 영토인 듯하다. 바람에 씨앗을 날려 보내서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고, 흙이 있고 햇볕이 드는 곳이면 아무데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토종도 있고 외래종도 있지만 우리 땅에 잘 맞는 종이고 우리 국민성과도 어울리는 꽃이다. 봄의 풀꽃 중에서 민들레처럼 밝고 당당한 꽃이 또 있을까. 제법 크고 탐스러운 화관에다 눈이 부시게 샛노란 빛깔은 일체의 망념을 사를 만하다. 애상이나 좌절, 회한 따위가 없이 오직 눈부신 웃음일 뿐이다.
민들레 꽃씨의 비상(飛上)도 참으로 홀가분하다. 사람도 때가 되면 그렇게 떠날 일이다. 어떤 삶이 우리 영혼의 관모(冠毛)가 되어 죽음의 바람을 타고 두둥실 떠오를 수 있는가를, 여하튼 웃고 있는 민들레가 보여준다. 참고로, 민들레는 홀씨(포자)식물이 아니다.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첫댓글 민들레만큼 생존의지가 강한 식물은 더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디든 틈서리만 있다면 죽을 각오로 살아내어 끝내 꽃을 피우고 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