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기/ 고미선
우연히 도서관 인문학 과정 중에 해녀들이 입던 옷을 재단해 볼 기회가 생겼다. 옛날 해녀들은 재단본을 큰 달력 뒤쪽이나 마분지 종이를 사용했다. 소중기는 매듭만 풀어내면 금방 벗어지니 옷을 입고 벗기 편하다. 어린 아기 젖 먹일 때는 윗 매듭 하나만 풀고 먹였다. 소중기 위에 갈중이를 입고 밭일하다 물때가 되면 바당으로 뛰어갔다. 여성 최초의 지혜로운 작업복이자 직업복인 셈이다. 해녀들은 궂은날이면 소중기를 재단하고 여벌옷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씨 면화를 밭에 심어 물레를 돌리면 무명이 된다. 두꺼운 무명인 직광목에 새까만 물을 들여 바느질할 때는 호롱불이나 각지불 아래에서 졸음과 싸웠다. 직광목은 180cm 정도 길이로 가위질해야 한다. 옷감이 귀하던 시절, 해녀복은 버려지는 자투리 천이 하나도 없다. 앞으로 뒤로 바느질했다. 얇은 여자 속옷과는 다르게 도톰하고 튼튼하게 만든다. 용변과 관계된 아랫부분은 두 겹으로 덧대어져 찢기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삼단 줄고리도 어찌 보면 장식 같으나 지혜의 산실이다. 임신하여 배가 불러오면 바깥 구멍에 매듭을 끼우고 모든 일을 쉽게 하면서 다녔다. 외할머니께서 여든여덟 살에 이어도에 묻히더니 친정어머니도 그 나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라도는 제주도에 속한 최남단 섬이다. 고단한 물질을 했던 두 분을 부처님께 회향해드리고 싶어 기원정사로 향했다. 외할머니와 나는 정이 깊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심부름으로 양식을 얻으러 찾아가면 물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외 할머니는 증손자 애기 구덕이라도 흔들어준다며 우리 집에 한 달 정도 기거했다. 파고(波高)에 따라 절벽을 낀 살래덕 선착장과 완만한 자리덕 선착장은 외할머니 고단함을 회상하니 가슴을 때렸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두어 해 전이었다.
“이게 무싱건지 알아지크냐?(무엇인지 알겠니?)”
“속옷도 아닌데 수를 놓아서 예쁘네요.”
어머니는 검정 내의 비슷한 물건을 펼치며 물었다. 무심히 대답하다 눈여겨보았다. 위에는 한쪽 어깨끈이 달리고 옆구리는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세 매듭의 줄 고리가 연결되어 있다. 허리 아래쪽에는 하얀색 바느질 실 두 줄로 수를 놓 았다. 어머니께서 물질할 때 입었던 소중기다. 여성 전용 옷이어서인지 정성스레 모양을 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라며 장롱을 열 때마다 들춰냈다. 해녀박물관에 가져가면 돈도 준다는데 태왁은 이미 삭아 없어졌고 수경도 오래되어 찾지 못한다고 하였다. 요즘은 고무옷을 입고 물질하니 소중기를 보관하고 있는 사람도 몇 명 없을 터이다. 버리지 못했던 소중기는 어머니의 분신과 같았으리라.
젊은 시절 어머니는 가파도와 마라도에서 소중기를 입고 외할머니와 해녀 일을 했다. 하얀 저고리 입고 그 위에 검은 소중기를 입은 채 무명 수건을 쓰면 작업복으로 변했다. 하얀 무명수건 위에 큰 물안경도 썼다. 쑥 한 줌을 뜯어 비벼 물안경에 바르면 오래도록 물질하여도 뿌옇게 보이지 않았다. 마법처럼 바닷속 깊이 내려가 전복과 소라를 잡았다.
뽕돌 허리띠를 잘 묶는 건 무게감으로 물속으로 내려가고 비창이 빠지지 않게 꽂기 위해서다. 돌 사이를 기어 다니는 전복을 떼어낼 때는 단숨에 비창을 꽉 집어넣고 위로 치켜올려야 떼어진다고 했다. 소살은 또 어떤가. 대나무에 쇠붙이 끝을 날카롭게 하여 끼우고 생고무 줄을 묶어 허리 뒤에 찼다. 물고기가 보이는 순간, 소살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한 번에 못 잡으면 힘센 물고기는 소살 마저 꽂은 채 도망가다 몸만 빠져나가 버린다. 물고기는 제사 명절 때에 구워 올리기도 하고 탕국을 만들기도 하였다.
마라도 앞바다는 수심이 깊어 굵은 해산물도 많았다. 해녀들은 물에 들 때마다 필요한 양만 잡아 올렸다. 그것도 물숨을 아끼면서 올라와야 내 물건이 된다. 테왁과 망사리에 가득 채워진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한순간 욕심내어 물숨을 돌리 지 못하면 헛일이다. 고단한 물질은 헛물질도 많았다. 하늘 위로 궁둥이 올리며 들어가서 숨을 참지 못하고 물 위로 머리만 먼저 나온 일은 어디 한두 번인가. 날숨에는 전복 잡고 들숨에 목숨을 걸었다. 빈손으로 올라오는 헛물질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독한 물살에 헤매기도 여러 번이었으리라. 해류로 너울대는 해초 속에서 자기만의 머정(물건 많은 곳)을 찾아 수압도 견뎌야 했다. 해녀는 숨비소리를 내 며 바다가 내려준 훈장인 주름살을 얼굴에 품고 살았다.
마라도 선착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해녀길 입구와 애기업게 할망당이 나타난 다. 해녀들은 바다에 들고 날 때마다 애기업개 할망당을 더 신격화했다. 바다에 들기 전에 목숨을 지켜줄 유일한 신으로 믿고 간절히 기도하며 다녔다. 애기업개 할망당은 해녀가 이어도에 묻히면 울음 범벅이던 곳이다. 누군가 주변 청소를 깔끔히 한 후 촛불을 켜놓았다. 새것으로 보이는 목조 얼레빗과 참빗이 눈길을 끈다. 업개는 아기 업고 눈 빠지게 어멍을 기다리다 혼이 되었다. 물살이 깊어 잦은 사고 이후에 머리빗을 올려두니 덜했다는 후담 탓이리라. 이곳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머리빗을 올려두는 신당이다.
할망당은 제주 돌담으로 에둘러 있어서 불턱 같다. 서당을 운영하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물질을 나섰다. 가파도가 고향인 외할머니는 일년 중 삼 분의 일은 마라도에 살았다. 외동딸이었던 어머니는 외삼촌을 업어 키웠다. 할머니의 서너 시간 조업시간만큼 어머니는 두린(어린) 남동생을 업어주고 마라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오갔다. 여섯 학급이었던 학교도 이젠 학생이 없다. 장사하는 주민만 마지막 배로 모슬포로 나간다. 섬에 거주민이 없으니 당연히 학생도 사라졌다.
일렁이는 파도 거품은 물마중 길을 넘나든다. 넓은 바위에 거북 등처럼 검게 갈라져 생긴 이 길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물마중 가던 길이다. 물마중 장소는 바닷물 온도와 바람의 영향에 따라 바뀐다. 구름과 안개가 많은 날에는 바로 앞의 가파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조물주는 용암이 흐르다 굳어진 검은 바위를 연화대처럼 만들어 놓았다. 연화대는 숨쉬기도 힘든 거친 바람에 맞서며 해녀들의 무탈을 빌기 위해서였을까. 날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듯싶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 일보다 위험한 경우가 물마중이라 했다. 심장마비는 자기 몸보다 더 무거운 짐을 등에 메고 나올 때 잘 일으킨다. 소라와 전복을 담은 망사리와 테왁은 생명줄이었다. 어머니는 깊은 바다에서 수압을 이겨내려고 두통약 ‘뇌선’을 달고 살았다. 만성 중이염으로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할머니가 힘들까 봐 물질과 물 마중을 해주며 집을 빌려 여럿이 살았다. 물질로 외삼촌을 고등 학교까지 공부시켰다니 요즘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던가. 어머니는 어떤 심정으로 이 길을 오갔을까.
기원정사로 가는 길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은빛 물결로 반사되는 석양의 긴 바다는 다음날 해맞이를 꿈꾸게 하였다. 마지막 뱃길이 끊기자 섬 전체가 고요 속에 파묻혔다. 갯바위를 때리는 하얀 포말은 바람 소리에 해조음이 되어 교향악으로 번진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한밤중에 관음전 마당으로 나왔다. 반짝이는 별만이 총총히 낮게 떠 있다. 저 별도 언젠가는 사그라들겠지. 죽음은 삶의 모든 일상을 허망하게 무너뜨린다. 어두운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없다면 암흑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어둠의 연속은 죽음이다. 땅속에서 헤쳐 나올 수 없음은 생명이 다함이다. 분명한 일은 밝아올 아침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세상을 밝히는 여명은 빛으로 다가온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왔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언덕에 올랐다. 햇귀가 발그레하다. 아침 바다의 윤슬은 길게 이어져 붉은 고기 한 마리를 닮았다. 금빛의 반짝거림은 살래덕 절벽 밑까지 몰려왔다. 수평선 가까이 떠 있는 몇 점의 구름은 형제섬처럼 보인다. 구름 섬 사이에서 떠오른 해가 진주처럼 이글거린다. 보배로운 빛줄기가 하늘에 가득 찼다. 붉은빛에 온몸이 후끈해진다. 저 끝에서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는 소중기를 입고 이 순간에도 머정(해산물 많은 곳)을 찾아 물질하고 있을까.
숨비소리가 환청인 듯 크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