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솔의 공양간 주간일지 (11/24~29)
11/24(달) 폭탄 맞은 듯한 공양간
공양간 가는 날은 현보를 마륜정 앞에 8시 35분께 데려다주고 나는 운전해서 배움터로 직진한다. 공양간에 들어가는 시간은 대략 9시 5분전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1년만에 딸 사는 곳에 오신 엄마를 집에 두고 공양간으로 들어서니…. 폭발사고가 났나 할 만큼 온통 먼지투성이에 발 디딜 자리, 물건 놓을 자리 하나 없는 아수라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헉. 내가 아무리 털털하다지만 그릇들이 모두 먼지투성이라 이런 상태로는 그냥 먹게 할 수가 없었다. 대략 접시와 대접을 서른 개씩 짝을 맞추고, 수저는 보이는 대로 모아 물을 끓여 소독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공양간을 2미터 정도 안쪽으로 밀면서 공양간 안에는 물이 안나오고, 예전에 학생들이 먹은 그릇을 씻었던 개수대에 수도꼭지 하나에만 물이 나왔다. 물건 더미들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물을 길러서 물을 썼다. 아이들이 아침에 바빴는지 쌀도 씻어놓지 않았다. 쌀까지 씻고 조리대 위에 잔뜩 쌓여 있는 것들을 대충 치우니 11시가 다되어갔다. 그때부터 점심 공양할 조리를 시작했다. 손이 가는 조리를 할 경황은 없고 김칫국과 배추나물로 준비했다. 전날 먹었다는 닭죽이 바닥이 탄 큰 솥에 담겨있었다. 그 상태로는 먹기 어려울 것 같아, 닭뼈와 국물을 내는 데 쓴 것 같은 껍질 안깐 통마늘, 통양파등을 걸러내고 작은 그릇으로 옮겨담았다.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학생들은 맛나게 잘 먹는다. 고맙다.
물을 길러서 설거지 하고 조리하니, 시간이 꽤 걸린다. 한편으로는 야영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재미있기도 하다. 저녁반찬 하고 일이 끝나가나 싶었는데, 몽피가 냉장고를 옮겨야 하니 내용물을 다 빼놓으라고 하신다. 냉장고 안의 것들을 모두 빼 놓은 후, 냉장고가 옮겨지고 다시 채우며 자연스럽게 냉장고 청소와 정리를 하였다. 함박꽃이 와서 마무리를 도와주었다. 마치니 5시였다.
함께 한 분들 : 은하수, 고슴도치, 함박꽃
11/25(불) 공양간에 물이 안나오다.
달날 배움터 식구들과 일하는 분들이 먼지를 많이 먹은 것 같아 제육볶음을 할 요량으로 돼지고기를 넉넉히 사왔다. 그 날이 현보 반찬하는 날이기도 해서 청국장에 넣을 돼지고기 갈은 것도 좀 같이 사왔다.
공양간에 들어오니 어제와 별 다를 바 없이 아수라장이다. 어쨌든 일을 시작해보려 하는데, 몽피께서 한 말씀 하셨다. 오늘은 공양간 내에는 물이 안나오니 아이들이 밖에서 먹게 해야할 것 같다고 하신다. 헉…. 잠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을까 생각했다. 금방 도리도리했다. 그 이십 여명을 중국집까지 모두 데리고 가는 것도 그렇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학생들은 본관 교실이나 살림방에서 밥모심을 하고, 나는 조리를 어떻게든 하기로 했다. 다행히 공양간 바깥에 있는 수도에서 물이 나왔다. 물을 받아 길러와서 제육볶음을 했다. 맛도 괜찮다. 동치미가 있어서, 그것과 함께 먹기로 하였다.
한편으로는 현보반이 먹을 청국장을 끓였다. 김치를 다져서 넣었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내 입맛에 좀 짰다. 나중에 밥을 얻으러 교실로 갔는데 아이들이 맛있다며 좋아한다. 나도 덩달아 좋다. 점심 공양 후에 7,8,9가 저녁에 먹을 청국장을 새로 끓였다. 이번에는 김치 대신 배추를 썰어서 넣었더니 간이 맞았다.
중간에 차량관계로 이곳 저곳을 다니며 모임을 하니 한 거 없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공양간에 돌아와보니 조리대 위가 깨끗해져 있었다. 소리샘이 치워주었다고 은하수가 전했다. 하루 마무리를 하니, 이 날도 5시 20분에 공양간을 나섰다.
함께 한 분들 : 은하수, 소리샘, 바람빛
11/26 (물날) 은하수가 다하다.
매 주 물날은 은하수가 공양간지기를 한다. 그렇지만 이 주는 워낙 경황이 없고, 은하수가 지난 주부터 매일 나와서 몽피 심부름을 하고 있었기에 나도 같이 공양간에 있으려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지난 밤부터 몸살 기운과 체기가 같이 와서 밤을 새다시피 한 터라 몸이 말이 아니었다. 고맙게도 은하수가 집에 가서 쉬라고 해줘서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점심 공양만 하고 일찍 공양간을 나섰다.
11/27 (나무날) 댕댕이가 돌아오다.
집 냉동고에 있는 고등어 5마리를 찌개에 쓰려고 가져왔다. 양이 부족한 듯 하지만, 공양간 냉장고에 있는 돼지고기와 합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좀 있으니 댕댕이가 왔다. 댕댕이가 그것은 좀 이상하다며, 집에 고등어 두 마리가 있으니 그걸 가져와서 쓰면 양이 될 것 같다고 하여 그렇게 했다. 덕분에 부족하지 않게 딱 맞게 했다. 확실히 댕댕이는 빠르다. 내가 한 시간에 할 것을 그 삼분의 일에 하는 것 같다. 보면서 감탄이 나온다. 후딱 후딱 잘도 치운다.
점심 공양을 하고 치우고, 저녁 반찬 준비를 한 후 드디어 한 주 식단표를 짰다. 헐!~. 나무날이 되어서야. 그 동안은 그 날 그날 했다. 미리 식단표를 짜기는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계속 변동이 생겼다. 이 날도 5시 넘어서 공양간을 나섰다. 거북이 푸른솔 파이팅!
11/28 (쇠날) 7*8*9 어머니밥상
공양간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인데, 왠지 마음이 쓰였다. 시커멓게 타서 당장 쓸 수 없는 스텐냄비도 씻어야겠고, 가스렌지와 그 주변도 닦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공양간으로 향했다. 와! 공양간에 789부모님이 여럿 있었다. 망태, 영광아빠, 소성아빠, 영광엄마, 소리샘, 무지개, 담금이까지 7명이다. 스텐냄비를 닦다가 힘이 부쳐서 소성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꼼꼼하게 잘 닦아주셨다. 엄마들이 수도꼭지가 불편하다고 많이 말했다. 나도 허리가 아팠다. 조리대에 개수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부분을 나와 댕댕이도 생각해서 몽피에게 물었더니 공사가 어렵다고 했다고 대신 답했다. 좀 있으니 댕댕이도 오고 은하수도 왔다.
댕댕이와는 김장준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밥상잔액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 하며, 준비할 김장재료들을 의논하고 주문할 것은 주문했다. 지난해에는 작은별네가 다 대주어서 고춧가루를 사지 않아도 되었는데, 올해는 사야 할 형편이다. 막상 사려니 가격이 후덜덜하다. 손 떨린다. 삼년 전까지 고춧가루를 대주셨던 벌교의 장현승 목사님께도 연락을 드렸었다. 전화가 안되어서 메시지를 보냈는데 조금 있다 답이 왔다. 당신이 올해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현재 회복중이라고 하셨다. 저희집도 작년에 그랬어요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보냈다.
11/29 (흙날) 갑자기 식재료가 사라졌다면?
풍경소리 발송작업이 있어, 도서관으로 갈 일이 있었다. 가는 길에 공양간에 들러서 냉장고에 총각김치를 넣었다. 그런데 두부 4모가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식단 재료인데, 어떻게 된거야? 요즘 여러 사람들이 공양간에 자주 왔다 갔다 하다보니 식재료가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라면도 한 박스 사놓고, 주말에 학생들보고 출출할 때 먹으라고 하려 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그랬는지 알아보고 주의를 줄까 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하였다. 해날 들어올 일이 있으니, 두부를 다시 사기로 하였다.
점심 후 공양간을 다시 갔다. 은하수와 양추가 마늘을 까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깠다. 공양간 지기를 한 첫 주에는 마늘을 아끼지 않고 듬뿍 썼는데, 요즘은 아껴서 쓰고 있다. 그렇게 해보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이 주에 쓴 마늘량은 전보다 절반도 되지 않았다.
첫댓글 애 많이 쓰셨어요. 두부 4모의 행방을 알듯하나 쉿! 고맙습니다 ^*^
라면 한 상자는 수욜밤에 79아이들이 수업끝나고 먹었구요;; 두부 4모는 금욜날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났다면서 망태께서 김칫국, 계란국에 넣어주셨어요;; 두번 다 제가 현장에 있었네요;;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정말이지 함바집 같은 공양간! 애 많이 쓰셨어요. 당신이 계셔 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