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김후란
밤새 내리던 비 멎고
날 들자 먼 산이 눈앞에 와 있다
가는 세월
떠나는 사람
많은 그리움이 지나갔다
호젓이 좌선하는
저 산을 바라보며
어느새 다가온 새봄에
주춤거리는 내 발걸음
그러나
새 바람은
변화의 언덕을 달려간다
나도 바람의 노래를 부르며
희망을 안고 달려간다
(한국시인, 2024년 상반기호)
*가져온 곳: 홍성란 시조아카데미
고향 / 김후란
내 마음
나직한 언덕에
조그마한 집 한 채
지었어요.
울타리는 않겠어요.
창으로 내다보는
저 세상은
온통 푸르른 나의 뜰
감나무 한 그루
심었어요
어머니 기침 소리가
들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깊어 가는 고향집.
☆
나무 / 김후란
어딘지 모를 그곳에
언젠가 심은 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다
높은 곳을 지향해
두 팔 벌린
아름다운 나무
사랑스런 나무
겸허한 나무
어느 날 저 하늘에
물결치다가
잎잎으로 외치는
가슴으로 서 있다가
때가 되면
다 버리고
나이테를
세월의 언어를
안으로 안으로 새겨 넣는
나무
그렇게 자라 가는 나무이고 싶다
나도 의연한 나무가 되고 싶다
☆
둘이서 하나가 되어 / 김후란
밝은 이 자리에 떨리는 두 가슴
말없이 손잡고 서 있습니다
두 시내 합치어 큰 강물 이루듯
천사가 놓아준 금빛다리를 건너
두 사람 마주 걸어와 한자리에 섰습니다
언젠가는 오늘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듯 소중한 시간이 있어 주리란 것을...
그때 우리는 이슬 젖은 솔숲을 거닐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가 되리라고
푸른 밤 고요한 달빛 아래
손가락 마주 걸고 맹세도 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가 되리라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순수한 것처럼
우리의 앞날을 순수하게 키워가자고
사람들은 누구나 말합니다
사노라면 기쁨과 즐거움 뒤에
어려움과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며
비에 젖어 쓸쓸한 날도 있다는 걸
모래성을 쌓듯 몇 번이고 헛된 꿈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걸
그럴수록 우리는
둘이서 둘이 아닌 하나이 되렵니다
둘이서 하나이 되면
둘이서 하나이 되면
찬바람 목둘레에 감겨든단들
마음이야 언제나 따뜻한 불빛
외로울 때는
심장에서 빼어 준 소망의 언어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밀어
버릴 수 없는 우리만의 꿈
약속의 언어로 쌓아올린 종탑
높은 정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꼭대기에 매어단
사랑과 헌신의 종을 힘껏 치렵니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 아래
이토록 가슴이 빛나는 날에
둘이서 하나가 되면
둘이서 하나가 되면
지상의 온갖 별들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불멸의 힘으로 피어나는 날들이
우리들을 끌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잡고
같은 쪽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렵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가져온 곳: 다음카페 일일문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