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달린 손은 생각하는 손입니다(신영복)
천 개의 손을 가진 천수보살千手菩薩의 후불탱화後佛幀畵 앞에서 불현듯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천 개의 손'
수많은 짐을 들 수 있는 손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차피 두 개의 손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손을 갖기 위하여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기술을 익히기도 합니다. 많은 손을 구입하기 위하여 돈을 모으기도 하고 많은 손을 부리기 위하여 높은 지위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은 수많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철학을 우리는 이미 완성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천수관음보살의 손을 자세히 쳐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천 개의 손에는 천 개의 눈이 박혀 있었습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었습니다. 그냥 맨손이 아니라 눈이 달린 손이었습니다. 눈이 달린 손은 맹목盲目이 아닙니다. 생각이 있는 손입니다. 마음이 있는 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 수많은 손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있는 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조직이 망라하고 있는 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입된 수많은 손도 역시 신뢰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손은 누군가의 살아있는 손이고 그 손에는 모두 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손의 임자에게도 많은 손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 개의 손마다 각각 천 개의 손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최고의 논리학인 수학은 언제나 등식等式을 기본으로 합니다.
평등의 철학 위에서 문제의 해답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집합과 규율과 연대를 넘어서 천 개의 손이 서로 소통疏通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제로섬zerosum'에서 '비약'으로 가는 길이고 '뺄셈'에서 '곱셈'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