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뉴질랜드 백동흠
얼굴이 붉어졌다고?
-뻔쩍~~ 뻔쩍~~!!!
-빵!! 빵!!!
걸프하버쪽에서 스탠모어 베이 로드로 버스를 회전하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경찰차가 따라오며 위급 상황을 알려왔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버스를 도로 한 쪽으로 비켜주며 속도를 줄였다. 웬걸, 경찰차는 버스를 비켜서 추월해 가지 않고 계속 버스를 뒤쫓아왔다. 버스 뒤에 바짝 대며 경적을 울렸다.
‘버스 운전에 잘 못 한 게 없는데 무슨 일이지?’
앞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세웠다. 경찰차도 서더니 젊은 경찰이 버스로 다가왔다. 앞문을 열자, 경찰이 올라타며 승객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이어 운전사를 향해 강한 시선을 쏘았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운전하는데 문제 있습니까? 조금 전, 이 버스에서 내린 여자 승객이 신고해 왔습니다. 버스 운전사가 이상하다고. 운전사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 혹시 안전사고라도 날까 염려해 알려왔습니다.
-아니요. 전혀 문제없는데요. 정상입니다.
-그래요? 그럼 손목 좀 내밀어 보세요.
경찰이 내 손목에 두 손가락을 대며 맥박을 체크했다. 순간, 얼떨떨했다.
-맥박이 좀 빨리 뛰는데, 감정상 뭐 문제 있는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운전하는데 지장 없습니다. 버스가 지연되는데요. 어서 가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진 순간
경찰이 잠깐만 더 기다리라면서, 회사 매니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바로 알려주자 경찰이 즉시 매니저와 통화를 시도했다. 한참을 상황 설명하면서 버스 운전사 메디컬에 문제 있냐고 물었다. 매니저가 노말이라고 대답했다. 경찰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매니저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감을 느꼈지만, 의아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경찰이 내게 조심해서 운전하라며 보내주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여자 승객이 경찰에게 신고를 다 하고. 버스운전 3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잖아?’
생각은 하면서도 가슴에 뜨겁게 차오르는 묵직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참 별일도 다 있네. 내 얼굴이 붉어졌다고?’
마음을 진정해가며 늦은 시간을 보충하려고 애를 썼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마침 윗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살짝 눌러 껐다. 다시 울렸다. 무시하고 그대로 버스를 몰아 종점에 이르렀다. 승객들을 보내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고국에서 온 전화였다. 카톡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오빠! 엄마, 조금 전 돌아가셨어요. 여긴 중환자실인데, 편안히 눈 감으셨어요.
‘아~ !!!’
눈앞이 하얗게 뭔가로 뒤덮여 버렸다.
‘오랜 병고로 고생 많이 하신 어머니! 하늘나라 가시기 전 둘째 아들 못 볼 것같아 뉴질랜드에 다녀가셨나.’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진 순간이 괜한 게 아니었다.
Bereavement Leave
간신히 남은 운전을 마치고 회사 데포로 버스를 몰았다. 매니저를 만나러 룸에 들어섰다. 내 말에 앞서 매니저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숨을 돌리며 상황을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순간, 매니저가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 돌아가신 것에 유감을 표합니다. 부디 천국에 가시길 빕니다.
물병을 따서 주며 마시라고 내게 내밀었다. 이어 휴가 양식을 가져다 뭔가를 써나갔다. 나더러 마지막 부분에 사인하라고 볼펜을 건네주었다.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가 세상을 뜰 경우 주는 장례 참석 휴가, Bereavement Leave였다.
세상에, 회사에서 휴가를 줘도 한국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코로나 정국이 끝나지 않아 뉴질랜드나 한국이 비자를 내야 입국이 가능했다. 2주가 소요되는 비자도 걸림돌이었지만, 양국간의 의무사항인 자가격리 2주가 더 큰 장애물이었다. 양국에 오가는 직항 비행기도 없었다. 전혀 상상도 못 해본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확실히 실감했다. 여긴 한국이 아닌, 남태평양 뉴질랜드 섬나라라고.
‘부모가 돌아가셔도 못 뵙는 신세라니~’
퇴근하며 고국에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이 받으며 오히려 위로를 해줬다.
-오빠, 너무 걱정 마셔. 울 엄마 87세로 잘 사시다 가셨어. 비록 몇 년간 병상에서 고생을 많이 하시긴 했지만. 오빠랑 언니랑 작년, 재작년에 엄마 위급할 때 다녀가셨잖아. 여기 일은 남은 가족들이 잘 할 테니 거기선 언니랑 기도하셔.
주변에서 오래전부터 어머니의 병고를 알고 많은 기도와 정성을 보내주었는데, 그 모든 걸 안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 작년에는 아버지께서 90세로 세상을 뜨셨다. 어머니와 같이 노년에 병고로 참 많은 고생을 하시다 가셨다. 이제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 만나 뵙게 되었다.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자욱한 촛불 향내에 가슴이 움찔했다. 아내가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다. 거실에 만들어 놓은 소박한 제대에 촛불이 타올랐다. 옆 화분에는 하얀색 난 꽃이 핀 상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민 오기 3년 전, 1993년 좋은 때였다. 함께 앉아 연도를 바쳤다. 뉴질랜드에 이민 오고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거치며, 성당에서 뜨겁게 활동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1순위가 부모님 전교라 여겨졌다. 이후, 여러 도움으로 어렵사리 어머니는 정식으로 교리 공부해서 로사로 세레를 받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으로 대세를 받았다. 노후에 병고로 병상 생활을 오래 한지라 성당은 거의 못 다니셨다.
이제 편히 쉬셔요
입관과 발인 장례식 상황을 페이스톡으로 보며 함께했다. 코로나 사태로 국가 간 직접 만나지 못하고 화상 회의를 통해 일을 진행하듯이 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은 건, 고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과 딸이 엄마 아빠를 대신해 모든 일정에 참여해 열심히 거드는 모습이었다. 조문 영상과 카톡을 계속 실시간으로 보내왔다. 중환자실 병원, 장례식장 어머니 영정 대, 조문객들, 친지들, 입관식... .
장례 리무진과 버스가 고향 집에 도착했다. 큰 조카가 영정사진을 들고 어머니께서 지냈던 집, 방 구석구석을 돌았다. 이어서 한우 농장에 도착해 섰다. 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음매~! 하고 우렁차게 목청 돋우는 누런 황소의 울음소리가 복숭아 과수원과 뒷산을 삼켜버렸다. 마지막 선산으로 향했다. 드디어 입관식. 마련된 가묘 옆에 파놓은 흙이 상기된 내 얼굴처럼 아주 붉었다. 어머니를 안장하고 흙으로 다 덮자 봉분이 도톰하게 올랐다. 떠 놓았던 파란 떼를 다시 입혔다. 아버지와 나란히 두 봉상이 자리를 굳혔다. 이민 오기 3년 전 사진처럼 두 분이 웃으시는 느낌이었다. 묘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모든 가족들이 절을 했다. 한 번, 두 번. 정성 들여 무릎을 꿇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Heavens and the Earth. 성경 맨 처음 말씀이 눈에 어렸다. 특히 Heavens 에 밑줄이 그어졌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키위 신부님으로부터 영어 성경을 배울 때 들었던 단어다. 성경이 쓰여 졌을 때 히브리원전 Heavens에 Now & Here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했다. 지금여기. 하늘나라.
어머니는 Heavens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지금여기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
아내와 나도 선산이 아닌 뉴질랜드 가정 제대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올렸다.
‘어머니, 이제 편히 쉬셔요. 아버지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잘 계셔요. +’ *
#백동흠의 뉴질랜드 콩트(248회). 뉴질랜드 타임스. 06/11/2020
첫댓글
고국 어머님께서 병상에서 돌아가시던 순간,
뉴질랜드 아들은 버스에서 ...???!!!
아, 그러셨군요.
삼가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얼굴이 붉어진 그 순간이 어머님께서 영원히 떠나시던 시간이었나봐요.
운전하시는 분의 안색을 살피고 혹시 싶어 신고를 한 분도 대단하십니다.
오시지도 못하고 많이 마음 아프셨겠어요.
위로의 마음으로 꽃 한 송이 놓고 갑니다.
.
마지막 순간까지
못보던 아들을 기다리다.
직접 오셨다 가셨네요. ㅜㅜ
어느 분이 현관에 국화화분을
두고 갔네요.
아내랑 일마치고 오니까 반겨....
저도 금년에는 초등학교 2학년 부터 인연을 맺은 장모님과 유독 우리 부부를 잘 챙겨주시던 처 외숙모님께서 별세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생기는 인연보다 사라지는 인연들이 더 많아 집니다. 내 순서도 다가 오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살아생전 맛있는 것.
함께 먹었던 추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남은 어른들과 밥한번이라도
더 대접하며 이야기해야겠어요.
살아가는 일이 다름 아닌 그 시간을 향한 준비 땡! 같아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작가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 오는 글이네요...
몇번이나 울컥거리며 읽었습니다.
아까 읽었는데...지금도 감동의 여운이 가슴 한가운데에서
계속 울리고 있네요
저의 남편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아버님 장례식 전날밤, 캐나다와 미국에서 간 아들이 자는 방에
캄캄한데 누군가 문을 삐끗 열고 들어와 잠시 머물다 나가시더래요
다음날 누가 들어왔었냐고 물었더니 그시간에 들어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토론토는 어젯밤 첫눈이 많이 내렸어요...
어디나 마음은 통하나 봅니다.
저희 어머니가 황봉순 로사인데요.
~ ~ ~ ! ! !
세상 어느곳에 살아도 하나입니다.
좋은 격려말씀, 감사합니다.
삼가 어머님의 명복을 빌어 드립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은 큰 아픔입니다.
딱히 친인척 관계가 아니더라도 알 수없는 현상과 간혹 맞주치게 되더라구요~
첫아이 임신 막달인 1983년 9월 어느날 밤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조금 지났는데, 뿌연 연기가 자욱한 시베리아 벌판같은 곳에서
지금도 선명한 청바지에 빨간 웃옷을 입은 누군가가 온몸을 뒤틀면서 괴로워하며 죽어가고 있는...
아침에 뉴스를 보니 거의 그 시간에 우리의 여객기 kal기가 격추되어
전원사망, 이라는 비보가 아직껏 가슴에 남아 잊혀지질 않는답니다.
산달이라 예민하여 그랬겠지만 누군지모를 그 분과 내가 그 순간에 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히 잠드시라 기도를 드렸답니다.
............. 이상~, 전설따라 삼천리였슴다.ㅎ
그러게요. 역시 사람은 영물입니다.
예감과 직감에 스치는 그림자속에서.
전율하는 성령체험식 시간을 갖지요.
보통 10시 취침, 04시 기상하는데요.
어제는 걸려오는 고국 전화 받느라
12시에 취침 했어요. 근데 02시 그만~
대단한 꿈이었어요. 무슨 환시같은 꿈!
거실로 나와 그 생생한 장면을 적었어요.
빛의 속도로요. A4노트 4page. 딱 10분.
나중에 이걸 소재로 장편소설 하나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