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스포츠 산업 기지개, 다시 뜨는 ‘암표 거래’
7만원 짜리 표가 “25만원”…현장 적발 힘들고 ‘윤리적’ 측면 사회합의 필요
코로나 장기화로 움츠렸던 공연·스포츠 산업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온라인 암표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이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두고 엇갈린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축구팬 정모(25)씨는 이달 진행되고 있는 축구 대표팀 평가전 티켓 예매를 시도했으나 피 튀기는 티켓팅, 이른바 ‘피켓팅’에 실패했다. 정씨는 “혹시나” 하고 취소표를 알아보던 중, ”티켓이 매진되자마자 곧바로 암표들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며 중고거래 플랫폼에 속속 올라오는 암표들의 거래 가격에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장 내 육성응원이 허용됨과 동시에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골든 부트를 수상한 ‘손흥민 효과’까지 더해져 암표 거래가 성행한 것이다.
지난 2일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대표팀 브라질전이 열리기 전 70만원 가량의 프리미엄A 티켓이 200만원에 판매된 게시물.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 페이지 캡처)
실제로,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와 ‘번개장터’를 살펴본 결과, 티켓을 사고파는 게시물이 수백 건 게시됐으며, 많은 암표가 거래됐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브라질전은 7만원 짜리 2등석S티켓을 24만 원에 팔고, 5만원 짜리 2등석B 티켓이 15만원에 판매되는가 하면, 35만원 짜리 프리미엄A석은 1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들 암표들은 대체로 원래 가격의 3배 정도에 시세가 형성됐으며, 많게는 7배 값까지 치솟았다. “한국 브라질 경기 티켓을 구한다”며 “가격을 제시해달라”는 글이 폭주하는 등 구매하려는 이들도 넘쳐났다.
법적으로, 암표 판매는 금지돼 있다. 경범죄 처벌법은 ‘경기장, 역, 정류장 등 정해진 장소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 및 승차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은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직거래 등 현장 거래 상황이 적발돼야 처벌이 가능할 뿐, ‘온라인 암표 거래’에 대해서는 단속하고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티켓을 판매하는 업계에서 규제하거나 관리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코로나 상황이 잦아들자 티켓 수요가 늘어났고, 암표가 성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다”면서도 “법적으로 규제하고, 처벌할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적극적으로 단속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티켓을 구매하기 전 동의해야 하는 '프로스포츠 암표 근절 이용 약관'이 존재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와 별개로 암표 거래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들이 속출하자 지난 2017년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의원이던 신용현 전 의원이 온라인 암표 거래 방지를 골자로 한 이른바 ‘인터넷 티켓 싹쓸이, 암표 처벌법’을 발의하는 등 암표 근절을 위한 시도들이 나오긴 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오랜 문제로 자리잡은 온라인 암표문제를 처벌할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표근절법안을 둘러싼 의회 찬반 대립의 밑바탕에는 윤리 논쟁과 시장경제 논쟁이 깔려 있다.
만약 웃돈을 받고 티켓을 판매하고자 티켓을 구매, 되판다면 이는 국가적인 불법사항이다. 불법사항이니 비윤리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관람하려고 티켓을 구매했으나 사정이 생겨 가지 못해 양도 차원에서 티켓을 판매하는데, 시장가격이 본래 가격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면 이를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더불어 ‘윤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게 올바른가’라는 의견도 나온다. 효도하지 않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마이클 샌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관점에 입각해보자. 책에서는 ‘줄서기 윤리’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먼저 온 사람들이 줄을 서 티켓을 갖는 것은 사회적으로 당연하다. 우리가 새치기를 비윤리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같은 줄서기 윤리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표는 새치기가 아니라 자기가 투자한 시간 비용을 더해 다른 사람에게 그 기회를 넘긴다는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티켓 선점을 위해 ‘매크로’같은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례는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줄서기 윤리 교란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구매한다면 비윤리적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이 각도에서 본다면, 티켓 자체는 본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고 시세가 본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는 것은 ‘희소가치’라는 시장 논리가 개입될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이 성립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강원대학교 윤리교육학과 박보람 교수는 “티켓을 사서 되파는 행위는 팬심을 악용해 티켓을 구매할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대리로 줄서기를 시키는 것을 비윤리적 행위로 보는 것과 같다은데, 이런 논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법적으로 규제를 가한다고 해도 처벌과 단속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도 문제다. 법으로 막기 위해서는 단속 등 비용이 투자돼야 하며, 그 비용은 암표와 아무 상관 없는 시민들이 부담하게 된다. 박 교수는 “만약 법적으로 제재해도 막지 못한다면 범죄자만 양성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윤리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합의조차 쉽지 않은데 입법으로 암표를 막으려는 것은 성급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암표 거래가 윤리적으로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암표 근절이 법적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윤리적 측면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임을 시사한다. 구매자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티켓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것인지, 비싼 값을 치루고라도 경기를 보려는 수요자와 어렵게 표를 구한 공급자간의 공정한 합의가 이뤄진 결과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우선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티켓은 선점하고, 고액으로 되파는 행위는 국가적으로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암표를 구매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윤리의식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한 축구 팬카페에서는 “사지 않으면 가격은 내려간다”며 암표를 구매하지 말자라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축구팬 이모(27)씨는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판매하는 암표를 파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둘다 불법행위를 행한 것”이라며 “결국 사지 않으면 암표도 없어질 것이니 암표를 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광찬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