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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에는 문자를 해득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지식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특권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고, 그에 대비해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 세종에 의해 한글이 창제(1443)되었음에도, 근대전환기까지 지식인들에게 한자가 꾸준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한자를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던 양반들에게, 과거에 활용되지 않는 한글보다 한자로 글을 쓰는 것이 더 익숙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더욱이 지금처럼 편리하고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필기구가 많지 않았던 당시에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선비들의 방(文房)’에는 붓글씨를 쓸 수 있는 도구들이 갖춰져 있어야만 했으며, 이를 일컬어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지칭했다. 곧 필기구인 붓(筆)과 종이(紙), 그리고 오늘날의 잉크에 해당하는 먹물의 재료인 먹(墨)과 물을 공급해 먹을 갈 수 있도록 한 벼루(硯)을 가리킨다. 이 책은 문방사우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소개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저자는 오랫동안 고서(古書)와 각종 문화재를 수집했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자료들을 출간하여 소개하는 출판업에 종사했던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문방사우라는 주제에 걸맞게, 저자가 보유한 품목들을 중심으로 개인 혹은 박물관 등에 소장된 자료들을 사진과 글로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통 가옥에서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와 구별하여,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채는 외부 손님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남성 중심의 문화가 반영된 이러한 가옥 구조에서, 사랑채는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이면서 남성들의 서재이자 침실로도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는 ‘문방(文房)’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따라서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은 지식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과 중의 하나였으며, 목차의 ‘사랑과 문방’ 항목에서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문방사우를 이루는 종이와 붓 그리고 먹과 벼루 등에 대해서, 저자가 보유한 자료를 포함해 다양한 품목들에 대한 소개를 사진을 곁들여 제공하고 있다.
문방사우에는 속하지 않지만, 먹을 갈기 위해 물을 담는 연적이나 붓을 보관하는 필통 등을 소개하는 ‘그 밖의 문방용구’ 등도 사진과 함께 그 용도와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말미의 ‘자문자답’이란 항목을 통해서 저자 저자가 문방사우에 대해서 ‘책을 쓸 만한 조예나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겸사와 함께, 그럼에도 ‘반세기 남짓 옛 문헌들을 다루면서 자연히 많은 문인 문객들을 접촉’하면서 얻었던 자료와 정보를 소개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지금은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활용하여 기록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실제 대학 강의에서도 필기구나 공책을 지니지 않은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의 내용에 대한 필기마저도 휴대용 컴퓨터를 활용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필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기에, 앞으로 ‘문방사우’라는 개념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단지 지식이나 정보의 차원에서 이해될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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