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포경찰서에 면허증을 반납하러 갔다. 그때 한참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십만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준다는 말에 혹해서 장롱면허증을 정리할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중간에 갱신을 하지 않아 소용없다며 나중에 다시 발급받은 후 시도해 보란다. '앓느니 죽지' 평생 한 번 가져본 면허증을 그렇게 속절없이 반납하고 돌아섰다.
어느 해 늦여름,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딱히 필요하지도 않았던 터라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나이가 더 들어 순발력이 떨어지기 전에 시작하는 거야, 평생에 면허증 하나 정도는 가져봐야 하지 않겠어? 남들도 다 하는데 뭐가 두려워, 차도 사지 못할 텐데 뭘, 아니, 면허를 딴다는 그 자체가 중요해….’
생각으로 그치지 않으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언을 했다.
‘운전면허를 딸까 해요. 너무 늦지 않았을까?’
그러자 너도 나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것을 안 따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남이 운전하는 차에 탔을 때와 내가 운전할 때, 그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지요. 세상이 달라 보인다니까요'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달떴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니 해 볼만 하지 않은가. 나는 당장에 운전학원에 등록을 하고 필기시험 교재를 받아들었다.
시험 준비를 해본 것이 언제였던가. 머리는 굳을 대로 굳었는데 문항들은 왜 그리 많은지, 게다가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내용. 세세한 교통법규니 신호체계를 아무리 외워도 머리에 저장되는 순간 두리 뭉실 섞여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내 머리 속은 수납 칸이 전혀 없이 통으로 된 가방 속처럼 뒤죽박죽이 되곤 했다. 내가 필기시험에 붙은 것은 분명히 작은 기적이었다.
자동차학원의 연습장은 모든 형태의 길을 모아놓은 미니어처였다.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하고 장난감 나라 같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오가는 차량들 모두 원격제어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첫 날 강습은 가만히 서있는 자동차 안에서 핸들만 수없이 돌려보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날 밤엔 몸살처럼 팔이며 어깨가 몹시 아팠다. 처음으로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자 차가 스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그 부드러운 움직임에 속아 금방이라도 운전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착각은 잠깐. 쉬운 과정이 하나도 없었다. S자 코스를 주행할 때 그만 핸들링 미숙으로 차체가 덜컹 경계석 위로 올라앉았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라니. T자 코스도 어려웠고 주차는 더구나 쉽지 않았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통제가 안 되는 차체는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처럼 버거웠다. 언제쯤이면 이 괴물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어느새 그 시간들을 즐기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떤 코스에서나 핸들조작에 필요한 탄성彈性과 완급은 순전히 감感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다 깨어나 반응하는 그 미세하면서도 생생한 감을 느낄 때는 짜릿한 전율까지 맛보았다. 그 순간에 기울이는 집중력과 몰입은 날선 긴장감으로 정신을 벼려주고 있었던 것일까. 연습이 끝나고 나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장내 시험 전에 쿠폰 몇 장을 사서 개별 연습을 했다. 시험 당일에 기울였던 집중력은 드물게 완벽했다. 90점을 받고 가볍게 통과했다. 그때 맛보았던 순도 높은 기쁨은 뭐랄까, 깔끔하고 선명한 마침표 하나 찍은 것 같이 개운하기만 했다.
남은 관문인 도로주행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반도로에서 달리는 일은 떨리기도 했지만 가슴이 툭 터지는 시원함도 있었다. 마침 초가을의 고즈넉함이 월드컵공원의 숲에 내려앉고 있었다. 옆자리에 강사가 앉아 여차하면 주의를 받는 긴장된 순간. 그렇다고 차창 밖을 스치는 초가을 풍경을 놓칠 수는 없지. 세상이 달라 보인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었을까. 연습생 주제에 슬쩍슬쩍 속도감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심 운전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자만심을 가져본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턴을 하고 차선을 바꾸는 일은 할 때마다 겁이 났다. 달리는 차량들이 연습용 차량을 배려해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 가장 통행량이 많은 수색에서 그것도 내리막길을 내려가자마자 유턴할 때는 언제나 손에 땀이 나곤 했다. 반대 차선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들이 움직이기 전, 짧은 동안에 해내야 했다.
짬이 나지 않아 따로 연습도 못해본 채 도로주행 시험을 보게 된 나는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브레이크를 살짝 살짝 밟으며 천천히 핸들링을 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속도를 냈더니 차가 그만 도로 경계석 바로 옆에 바짝 붙어버린 것이다. 바퀴가 달 듯 말 듯 한 상태에서 겨우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뒷좌석에는 같은 조의 교습생이 타고 있고 옆 자리에는 시험관이 버티고 있었다.
내심 떨어졌다는 생각에 낙심이 되어 차선 바꾸는 과정에서도 허둥대고 말았다. 실은 첫 출발에서 실수는 이미 저질러졌다. 얼마나 긴장이 되었던지 출발과 동시에 왼쪽 깜박이 등을 켜는 것도 잊었던 것이다. 틀림없는 탈락이었고 다시 시험을 봐야 하는 판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합격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몹시 찜찜했다. 같이 타고 있어서 내 실수를 다 봐버린 교습생의 눈총이 따가웠다. 실제로 그는 발표가 나자 항의조로 투덜거리기도 했다.
'나이도 있으시고, 가족들에게 어른 체면도 세우셔야 할 테고 다시 시험을 보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테니 이번엔 봐드린 겁니다. 실제로 운전하게 되면 절대 규칙을 잘 지키셔야 합니다.'
시험관은 늙수그레한 전직 경찰간부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전혀 고맙지 않았다. 봐주다니 오히려 기분이 나빴지만 그렇다고 무를 수도 없는 일. 마음 같아서는 다시 시험을 봐서 명쾌하게 붙고 싶었다.
장내시험 합격 후에는 발걸음이 땅에 붙을 새가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돌아오는 발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동승했던 교습생의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자꾸 내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시험관과 무슨 내통이라도 있는 줄 알았을 것 아닌가. 그 생각을 하니 못 먹을 것이나 먹은 것처럼 입맛이 썼다.
모처럼 마음먹고 난생 처음 손에 쥔 면허증이었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도전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을 뿐이다. 그러니 석연찮은 합격이 썩 반갑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양심가여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장내시험에 붙었을 때의 그 온전한 기쁨이 떳떳했고 최선을 다 한 후에 맛본 과실의 달콤함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운전면허 습득은 어쩌면 인생과 닮았다. 그러나 정작 삶에는 아무도 면허 같은 것은 주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만약 인생에도 면허가 있어야 한다면 그다지 자신 있게 따낼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자체가 이미 면허를 받은 셈이어서 지금껏 살아오지 않았을까. 물론 경계석에 올라앉은 일도 많고 방향등도 제때 못 켜는 바람에 삶의 여정에서 머뭇거릴 때가 많았지만…. 이제 내 삶의 면허도 반납할 때가 다가오지 싶은데 역시 갱신 한 번도 못했으니 환승카드 하나도 못 받을 것 같다.
첫댓글
만나뵙지는 않았어도 올리는 글마나 심(속힘)이 보이거든요.
갱신도 환승도 할 수 있으십니다.
맘먹기 나름인 거 아시지요?
무엇이든 놔버리고 반납할 시기를 잘 아는것은 좋은 일인데 쉽지가 않습니다.
참 수필 맛있게 쓰십니다. 나는 언제쯤 이리 쓸까, 한숨쉬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