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 차례예요”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품자주자 시민들 공동대표)
우리 학교에 경사가 났다. 여선생님 두 분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것이다. 저출산을 국가 위기라고 하며 출산 장려책을 국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갖가지로 강구하고 있는 터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를 가지셨단다. 선생님들 가정에도 기쁨이요, 학교와 국가적으로도 경사스런 일이다.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매사에 양면성이 있지 않던가. 학교에선 마냥 축하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대안학교인 우리 학교는 새 학년을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해서 담임 교사 배정을 일찍이 마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이를 임신한 두 선생님이 모두 3학년 담임인데다 출산 시기도 모두 9월로 비슷하여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하나?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지혜를 구해 보았지만 결국 누군가가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여러 날, 여러 방안들을 놓고 다양한 분석을 해가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였다. 결국 임신한 두 선생님과 새 생명을 축하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으로 다른 두 선생님께 담임 업무와 보직 업무를 맡아주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이미 새 학년 반을 맡아 운영할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라 업무를 다시 조정하여 맡아주도록 부탁하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사정을 알고 이해하면서도 막상 내 문제가 되고 보면 망설여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거라 생각하니 더욱 부담이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마음을 가다듬고 면담을 통해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드렸다.
“ㄱ 선생님, 아시다시피 임신한 ㄴ 선생님이 3학년 담임인데 선생님, 학생. 학교를 생각하여 ㄱ 선생님께서 3학년을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거절할 것을 염려하여 아주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렵게 꺼낸 질문에 너무 쉽게 승낙하는 바람에 오히려 요청한 내가 의아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예? 어떻게 그리 쉽게 대답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예, 저는 작년 3월에 몸이 아파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학교와 선생님들의 이해와 배려로 크게 도움받은 바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마음에 새기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갚으리라 다짐을 두었답니다. 마침 임신한 선생님이 계셔서 제게 기회가 온 것이지요. 이제 제 차례예요.”
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한 마음이 아로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학교가 그동안 공부하고 부대끼며 꿈꾸어 왔던 지난 몇 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래, 더불어 빛나는 행복한 공동체는 바로 이것이다.
또 다른 ㄷ 선생님의 업무도 ㄹ 선생님께 요청을 드렸더니 거의 비슷한 이유로 흔쾌하게 승낙해 주었다. 긴 시간 동안 고민해 온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동료교사들과 학교에 대한 공동체 의식에 대하여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아서 말이다. 또 너그러운 선생님들의 태도와 의식과 달리 나의 옹졸한 마음에 대하여 말이다.
아주 오래전 어느 설교 예화집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평소에 사랑이 많은 목사님이 있었다. 그에겐 예쁜 딸이 있었다. 목사님인지라 외출이 잦았고, 외출에서 귀가할 때마다 예쁜 딸을 위해 딸이 좋아할 선물을 사들고 들어왔다. 딸은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빠 손에서 선물을 나꿔채듯 받아 들고 좋아라 하였다. 아빠는 딸의 그 좋아하는 모습을 흐뭇해하며 미소 지었다. 시간이 지나 딸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였다.
어느 날 아빠는 예전처럼 딸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사 들고 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빠는 선물을 빼앗듯 받아 들고 기뻐할 딸을 상상하며 대문 앞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아빠를 맞이한 딸은 반갑게 맞으면서도 선물꾸러미에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빠는 의아한 마음으로 딸의 안내를 받아 안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까지도 딸은 아빠의 선물엔 관심이 없는 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차 끓여 올게요”하며 주방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아빠는 참다 못해 딸에게 “얘야, 너 주려고 아빠가 사 왔다”며 선물꾸러미를 딸에게 내밀었다. 공손하게 선물을 받아 들며 딸이 말한다. “ 아빠의 사랑은 여전하시군요. 그러나 아빠, 이젠 저도 컸어요. 이제는 제 차례예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곳에서는 경쟁과 성패의 칼날 같은 배제와 차별이 난무할 뿐이다. 더불어 빛나는 행복한, 성숙한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이젠 제 차례”라고 선언하고 나설 때 가능해진다.
첫댓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서로를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광주푸른꿈창작학교. 아름다운 관계를 엿봅니다. 이제 제차례예요. 저도 이제 제차례의 나눔들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