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글을 이렇게 문단을 나누어 반론한다는 것은 본문 작성자에게 우선 결례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본문 작성자가 언짢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야 하고 이를 혼쾌히 받아들이는 아량이 요구됩니다.
첫째는 쌍방간의 토론목적과 반론형태가 일목요연하며 서로간 왜곡된 내용으로 토론되는 것을 최소화 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단지 문단을 나눈다는 불쾌감은 형식적일뿐 토론에 자신이 있으면 오히려 쌍방간 주장의 내용이 서로 왜곡되어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감소되는 이점으로 서로 환영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셋째로는 제3자의 회원님들께서 객관적인 평가와 상호 토론자의 주장하는 바를 상호대비하여 보다 쉽고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상호 주장하는 바의 오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으로 반론을 하오니 우선 천량성주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天狼星主님 의 글]
최근 이 카페의 여타회원분들(소호금천씨, 무전신현, 한국호랑이)과 한국의 미래모델을 놓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특히 소호금천씨 회원님은 본인이 "외침에 시달리는 역사였기에 무엇이 본받아야 될 모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신 말을 "외침에 시달려서 배울것이 없다"로 왜곡했다며 본인에게 항의까지 하셨다.
만약 말을 꼬아서 왜곡했다는 인상을 드렸다면 소호금천씨 회원님께 사과를 드린다.
(본인 답글)
말을 꼬아서 왜곡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기에 댓글 역시 항의조로 올린 것입니다.
공연히 제자신의 견해와 상반된다고 하여 무조건 나서거나 함부로 반론을 하질 않습니다.
[天狼星主님 의 글]
그러면 소호금천씨 회원님이 말씀하신 “외침에 시달리는 역사였기에 무엇이 본받아야 될 모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에서 논의를 진행시키고자 한다.
본인과 논쟁을 하면서 분명한 사실은 소호금천씨 회원님은 신라사에 대하여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는 본인도 마찬가지이다. 본인 역시 신라사는 한국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신라사를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말하자면 본인은 삼국통합기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후기 신라의 터전을 닦은 문무대왕을 한국사상 열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위대한 군주로 뽑는데 주저함이 없다.
혹시라도 고구려를 모델로 삼자는 말이 신라를 깎아내리자는 말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께는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말이 ‘아’가 다르고 ‘어’가 다르듯이 고구려가 새로운 모델로 부각된다함은 고구려가 좀 더 표면에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지,
신라사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고구려가 표면적인 학술적인 담론에서, 그리고 대중매체에서 상대적으로 드러나 보인다는 뜻이다.
(본인 답글)
과연 그럴까요?
님께서 고구려사에 애정을 가지고 순수하게 고구려를 모델로 삼자든지 보다 고구려사를 부각시키자라고 했는데도 제가 쌩뚱맞게
신라를 깎아내리자는 말로 오해를 할 정도로 어리석거나 맹목적으로 신라만을 추종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님께서 과연 위의 말처럼 그런 순수한 차원에서 댓글을 달으셨는지요???
물론 이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천량성주님과의 오해 부분이 있어 님과는 다르게 임의대로 곡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도형님의 게시물 :신라 폄하되는 이유 라는 글에 대한 님의 댓글에서 "신라에게 더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라는 부분입니다..이 부분은 추모왕님께 단 댓글로써 오로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내용에 국한하여 신라에게 더 배울것이 없다"라는 내용이라면
제가 오바된 부분으로 먼저 사과를 드립니다..하지만 더 이상의 범위에서 주장했다면 제가 오바했다는 사과를 취소하겠습니다.
그 이후의 본인 댓글이 있었으니까요.
[天狼星主님 의 글]
그러나 소호금천씨 회원님이 2369번 ‘한국호랑이’님의 글에 단 댓글에서
‘민족의 반역역사로 신라사를 폄훼 훼손시키고 고구려사를 숭배시키면서 북한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북한당국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나라의 고구려 연구로 인하여 밝혀진 고구려의 이미지는 북한당국이 주장하는 고구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북한의 고구려 연구는 아직도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저항’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힘 센 나라에게 대들기를 주저하지 않고 전쟁을 하여 꺾은 역사만 부각이 된다.
북한의 고구려 연구는 현재 세계의 최강국(미국)에게 ‘대들고’ 있는 자기 나라를 예전의 고구려-중국 관계에 투영시킨 것이 중축(中軸)을 이루고 있다.
비록 문화에 대한 연구도 다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는 고구려가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였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북한 현재의 ‘자주성’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 답글)
물론 본인이 ‘민족의 반역역사로 신라사를 폄훼 훼손시키고 고구려사를 숭배시키면서 북한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북한당국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
라고 댓글을 단것은 사실입니다..그리고 북한의 조선전사나 통사에서 주장하는 부분이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먼저 님께서 본인의 의도를 먼저 질문하셔서 무슨 의도의 내용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한 후에 토론을 했으면
위의 님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반론이 되어야 하는데 님께서 반론이라고 하는 위의 내용은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심히 공감하는 매우 당연한 내용입니다..
문제는 님께서 그런 원칙주의적 설명이 본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사를 숭배할 목적으로 신라사를 민족의 반역역사로 폄훼 훼손" 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내용이 북한당국의 주장과 같다는 뜻입니다.
만일에 고구려사를 숭배하던 하늘처럼 떠 받들던 그런 것은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닌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신라사의 폄훼가 고구려사 숭배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天狼星主님 의 글]
현재 고구려의 연구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고구려가 다른 나라와 지역과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도 스스로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현대적인 용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자국의 국가적/문화적 정체성을 공고히 다졌다는 말이다.
이를 위하여 위성국을 거느리기도 하고 다른 ‘천하’들과 경쟁하며 700년을 지켜온 것이 고구려의 역사이다.
비록 전쟁이 많기는 하였어도 이러한 전쟁을 통하여 건국당시 인구 겨우 15만 정도에다가 만주 남부의 일부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던
고구려가 건국 400년 뒤에는 만주전체와 한강 이북의 한반도, 연해주, 몽골 일부까지 아우르는 대국(大國)으로 자라났다.
이것이 바로 고구려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고구려가 ‘드넓은 만주땅’을 ‘가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찌하여 압록강 중류에서 시작한 조그만 나라가 어찌하여 한반도 대부분과 만주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 카페의 대문에도 보이듯이 고구려가 대국이었던 그 순간만 곱씹자는 것이 아니라 졸본의 부족들이 모인 조그만 성읍국가가 ‘어떻게 하여 대국이 되었냐’는 것이다.
이를 서양사에 대입시키자면 로마제국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오현제(五賢帝) 시절의 융성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에트루리아와 삼니움에게도 쩔쩔매던 하찮은 도시국가가 유럽천하와 지중해안 전체를 제패한 대제국이 되는 ‘과정’을 본받자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물론 신라도 소국에서 크기는 하였고 복잡한 국제정세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스스로의 문명 정체성(Civilizational identity)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스스로 당나라가 이루어놓은 안정적 패권(Hegemonic Stability)체제하에 포섭되었던 것이다.
졸본에서 시작한 고구려 역시 그 존망이 심하게 위협받았다.
한나라는 물론이요, 주변의 고만고만한 나라들에게도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단순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문명 정체성을 지닌 대국을 형성하였다.
팽창의 기로에 서있는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은 ‘생존’이 최종목표였던 신라가 아니라 ‘대국’이 목표였던 고구려의 길인 것이다.
(본인 답글)
물론 현재 고구려의 연구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맹목적으로 고구려을 부각 시키기 보다는 다른 반론이 무색할 정도로 내용이 실제적이며 합당한 사료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더욱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사료가 그렇게 뚜렷한 일일까요??
우선 "고구려가 건국 400년 뒤에는 만주전체와 한강 이북의 한반도, 연해주, 몽골 일부까지 아우르는 대국(大國)으로 자라났다."
이 부분은 광개토태왕의 비문 내용에 의한 것으로 이 내용이 후대 장수왕에 의해 과장되었다느니, 당대의 1차적 사료 비문으로 사실적이다라는 논란에
빠져 있는 내용입니다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사실적인 역사로 믿습니다. 저 또한 사실적인 내용으로 믿으며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매우 숭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국으로 팽창시킨 고구려가 장수왕때 한반도내로 들어옴에 따라 더 이상의 팽창의 시대는 없어지고 오히려 백제 개로왕을 죽임으로써
나제동명의 결속으로 신라가 완전히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며 그나마 남진정책마져 여의치 못해 진전이 없어지며
이후 고구려는 한반도내 백제와 신라와의 치열한 삼국의 쟁패인 전쟁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또한 삼국과의 전쟁에 휘말린 고구려 역시 편안한 시절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고구려도 살아남기 위해서 발부등쳤던 역사는 전혀 없었는지요? ..고구려 800년 역사에서 우리가 열광하는 광개토태왕 시절 30여년의 팽창을 빼면
고구려 역사 또한 역시 팽창이었을까요? 고구려의 자기 문명의 정체성은 무었을 말하는지요??.
.오로지 천하중심주의적 정체성이라면 그것은 백번 지당한 주장입니다.
그것만으로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 되는 것인지요???
당시 1980년대나 21세기인 2009년도 대한민국이 옛고구려 처럼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에서
님께서는 대한민국이 하필이면 ‘생존’이 최종목표였던 신라가 아니라 대국’이 목표였던 고구려의 길이라고 하였는지요??..
신라가 생존이 최종 목표였다는 것은 누구의 논리이며 어느 사서에서 그런 기록이 있었으며
신라인들이 그런 의식과 목표를 가졌었다고 어느 사서에 그런 내용이나 기사가 나와 있던가요??
대한민국이 가장 약소국인 신라가 그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함에 따라 국가가 어떻게 성정하고 최종의 승리자가 되었는가??그리고
통일이후에 서라벌에는 생활이 풍족하고 기와집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백성들의 윤택함이 삼국유사에 기록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이런 것을 본받아 대한민국이 보다 건전하고 부강해지는 역사의 교훈을 모델로도 삼을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혀 가치가 없다고 보십니까??
물론 고구려의 것 선택적으로는 그들의 천하제일중심의 정체성도 매우 중요하지요 하지만 우리주변국가에 비해 오로지 수출로써 살아가야하는
대한민국이 고구려의 천하제일중심주의나 팽창을 모델로 삼았을때 어떠한 결과를 예상하십니까???
[天狼星主님 의 글]
각설하고, 다시 이야기하자면 스스로 문 닫아걸고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거부하고 외부의 정보가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면서,
수많은 인민들을 굶어죽이면서도 경제를 돌보지 않고 많지 않은 자원을 쥐어짜 겨우 그럭저럭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팽창은커녕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있는 그런 나라(북한)는, 팽창의 기회에 주저하지 않고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임에 적극적이었던
개방적인 제국(帝國)인 고구려의 ‘정통’임을 자처할 자격이 없다.
아울러 고구려 역사의 극히 일부분(외세에 대한 저항)이 북한정권이 외치는 일부 정치적인 구호와 비슷하다고 하여 북한의 국가적 정통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북한과 고구려는 그 성격 자체가 다른 국가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단지 한반도의 북부를 차지하고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남부를 차지하였다는 것뿐이다.
아울러 역사는 ‘포섭’이기 때문에 북한은 고구려 역사의 극히 일부분을 강조하는 와중에 고구려 역사의 ‘전체’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 답글)
이 부분은 본인과 똑같은 인식과 공유되므로 오히려 님의 설명이 더욱 훌륭하여 사족을 생략합니다.
[天狼星主님 의 글]
북한이 한반도 북부를 차지하였다하여 고구려와 등치시키고,
아울러 대한민국이 ‘한강’과 ‘경주’를 차지하였다하여 남한을 신라와 등치시키는 일부 인사들의 정치적인 논리는
도대체 아이큐 몇 점짜리 머리에서 나온 논리일까?
(본인 답글)
이 부분도 공감이 되는 내용으로.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멋대로 해석하여 상대를 펨훼시키는 행위에는 본인 역시 거부감이 듭니다.
[天狼星主님 의 글]
여기서부터는 과연 신라역사가 폄훼되고 평가절하 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연구에서 신라역사가 평가절하 된 적은 없다.
(본인 답글)
이 부분은 토론의 본질을 완전히 외면한 내용입니다
학자들이 뭐하러 고구려이든 신라사이든 체신머리 없게 폄훼의 내용을 학술지에 올리겠는지요?
그런게 학술지에 발표될 내용인가요??
강단에서 세속과 떨어져 따로 논다는 강단사학자들의 이야기는 본 논쟁과 전혀 별개의 문제이므로 이문제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라면 본인의 반론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PASS
[天狼星主님 의 글]
오히려 기존의 정사(正史)가 신라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한 덕택으로 인하여 신라역사는 오히려 수월했고,
반(半)공식적으로 ‘삼국통일’과 ‘화랑’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과거의 정책적인 ‘배려’에 힘입어 신라역사는 적극적으로 연구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많은 학자들이 신라에 대하여 논문을 쓰고 신라를 연구하는 학술단체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삼국사(三國史)의 연구에서
신라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광개토태왕이나 을지문덕 같은 고구려의 영웅들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고구려는 면밀히 연구되지 않은 채 단지 막연하게 ‘한민족이 이루었던 대제국’정도로 일종의 역사적 ‘향수’ 비슷하게 취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인 ‘향수’로 한국인의 의식 뒷구석에서만 존재하고 있던 고구려가 갑자기 ‘실체’로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한국인들의 집단적인 반발 때문이다. 고구려 연구자들이 해방이후 수십년동안 행한 외로운 노력보다
손진기(孫進起), 마대정(馬大正)등 중국인들이 ‘고구려는 중국역사’라고 쓴 몇 편의 글이 고구려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구려의 ‘인기’가 올라간 것은 극히 최근의 현상이며 이를 대중매체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앞 다투어 고구려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바람에 눈에 띄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고구려 ‘붐’이 과연 고구려에 대한 연구라던가 게재되는 학술논문의 수를 급격히 늘려주었는가?
대중매체와의 관심과는 정반대로 고구려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신라에 비하여 미미한 수준이다.
필자가 'KERIS 학술연구정보서비스'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등의 네 단어로 검색을 행하여 본바 다음과 같은 결과가 산출되었다.
키워드 국내학술지 학위논문 단행본 학술지
고구려 1707 974 6851 4
백제 1955 965 7877 34
신라 4996 3720 13069 51
가야 1185 2085 6745 33
위에서 보이듯이 고구려에 관하여 국내학술지에 실린 논문과 학위논문, ‘고구려’가 제목에 포함된 단행본과 학술지의 수에 있어
고구려와 신라에 대한 연구는 일단 양적(量的)으로 비교되지 않는다.
일부 항목에서는 고구려가 심지어 백제, 가야에 뒤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따라서 일부 대중매체에서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처럼 보인다면 이것은 단지 일종의 유행(Fad)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고구려의 실체는 외면한 채 예전의 향수와 환상만 재생산되는 조짐이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신라연구자의 수는 여전히 고구려 연구자들을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신라에 대한 연구는 보다 빠른 속도로 축적되고 있다.
따라서 혹시라도 고구려에 가려서 신라가 폄하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본인 답글)
바로 이런 데이타로 주장하는 것을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님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저 많은 학술연구자료가 일반인들에게 아니면 소설이나 방송에 몇편이나 소개되었으며 저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얼머나 공개되었는지?
신라사 폄훼에 저런 연구 학술지가 무슨 연관성이라도 있는것인지? 설명을 좀 해 주시겠습니까???
신라사 폄훼와 고구려사 부풀리기 라는 자체가 이미 학술적인 가치가 없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교육이 아닌 엉터리 교육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데이타를 추출할려면 차라리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는 대중 미디어 소설이나 잡지 또는 방송, 그리고 인터넷 매체등에서
1980년부터 오늘날까지의 데이타를 추출시켜 비교 설명해주시는게 보다 본질적이며 현실적인 주장이라 생각됩니다.
[天狼星主님 의 글]
글이 다소 길어진 감이 있어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마치고 한다.
삼국통일이전 신라사의 키워드는 ‘생존’이었다. 고구려사의 키워드는 ‘대국의 형성과 유지’이다.
그러나 신라사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이루어지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는 한, ‘생존’의 논리는 확대-재생산 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국가적 목표는 계속하여 ‘생존’에 머물러있게 될 것이다.
(본인 답글)
삼국통일이전 신라사의 키워드는 ‘생존’이었다라고 하셨는데
신라의 진흥왕 시절에는 어떻게 설명하시려고 합니까??
‘대국의 형성과 유지’의 키워드가 오로지 ‘생존’의 키워드에 패해 멸망 당한 것에 대해서는 또한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지요??
차라리 생존의 키워드에 멸망당할 대국의 형성과 유지’의 키워드라면 생존의 키워드를 삼는게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요??
솔직히 말해서 누구 마음대로
삼국통일이전 신라사의 키워드는 ‘생존’이었다 라고 결론을 내릴수가 있으며
고구려사의 키워드는 ‘대국의 형성과 유지’이다 라고 단정을 지을 수가 있는지요???..
저는 오히려 고구려사의 키워드는 "천하제일중심관" 으로 보는데도 말입니다.
첫댓글 고구려사를 부각시키고 신라를 폄훼하는 문제에 대해 다시금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북한학계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남한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이 좌파라거나 그에 준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왜냐구요? 양측이 같은 범주, 무리에 포함된다고 볼 절대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처음부터 계속 말씀드렸지만 신라사에 대한 폄훼와 고구려에 대한 강조는 단재 신채호를 비롯한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들에게서 먼저 발견되는 주장입니다. 주장이 같다는 이유로, 민족주의 사학도 좌파적 인식인 것일까요? 더욱이 북한도 없던 시절에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오류가 바로 이런 것이죠.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수도를 오늘날의 한반도 평양에 비정하였다. 고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식민사학자다." -> "조선시대 고조선의 수도를 한반도 평양에 비정한 실학자들은 식민사학자이다(???)" 식민사학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식민사학을 운운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요. 바로 고조선의 수도를 한반도 평양에 비정한 것과, 식민사학이라는 두 문제는 서로 직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것'과 '북한의 좌파적 인식'은 서로 직결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를 제가 블로그에 쓴 바 있습니다. http://bokli.egloos.com/1215992
님이 소개한 블러그에 들어가서 잘 감상했습니다..하지만 뭐가 그리 복잡해요??..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 그건 이미 사전에서 찾으면 되고 좌익이 아닌 사람을 좌익으로 몰아 억압을 했다면 피해를 당한 사람은 당연히 억울할 것이고 피해를 입힌 공권력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지요..또한 실제로 좌익인 사람을 억압했다면 당시 법이 어떠했는지 좌익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었으면 법대로 하는 것이고 그런법이 없었다면 당연히 공권력에 문제가 있는것 아닙니까?? 그런데 뭘 보라는 것입니까??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것'과 '북한의 좌파적 인식'은 서로 직결되지 않습니다.라는 님의 주장 맞아요 그렇게 주장하고 강조하는 사람 우파들도 많고 일반인들도 많고 저와 친한 친구들도 많아요..하지만 북한의 당국의 정통성을 위한 편법적인 주장에 동조하는 인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라는 뜻인데 그렇게 이해가 안됩니까?? 역으로 님의 주장대로라면 좌익들 100% 모두 "신라사를 폄허하고 고구려사를 숭배하는 그런 역사적 지식에 통달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집단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좀 더 깊게 파고들어 말씀드리자면, 북한의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인식은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것을 답습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좌파와의 어떠한 연관성, 논리적 긴밀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한에서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북한의 인식을 답습해서 주장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인식을 답습해서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겁니다.
북한의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인식은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것을 답습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님에게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라고 하겠습니다..차라리 남한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것을 답습한 것이라고 말씀하셔야 올바른 것 아닌가요???..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습니다..북한당국이 근대 민족주의 사학을 답습한것 보다는 그것을 이용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신들이 고구려 발해 고려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가지는 국가라는데 이용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칫 그들의 정통성에 옹호하고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그들의 논리에 부응하는 꼴이 되어 일부 보수우파들이 그런식으로 역공하는 것이 아닌가요??..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것을 답습한 것으로 좌익이니 우익이니 나누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만일 좌익일 경우는 북한 당국의 주장에 같이 동조하여 그들의 정통성 논리에 힘을 더욱 실어준다는 의심을 살만하다는 우려 또한 떨치기 어려운 현실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정이라 하겠습니다.
소호금천씨님은 '북한=좌익'이라는 선입견을 기저에 깔고 계십니다. 그러나 소호금천씨님이 조금만 남한의 좌파세력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건 그야말로 위험한 넘겨짚기일 뿐입니다. 현 정권에서 구속될 뻔했던 사노련이란 단체만 보더라도, 그들은 맑스주의적 입장에 서 있지만 우선 강령에서 북한을 맑스주의도 아닌 썩어빠진 봉건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좌익 가운데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이 정말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서 하는 말인지는 그 글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북한=좌익은 의 선입견은 유래로 우리나라의 좌익이라는 자체가 이미 북한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문제는 사노련 이라든지 또는 좌파들의 북한 관련성 문제는 있다 없다라는 문제를 제가 어떻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그들이 우파들로 부터 그러한 공격을 받았을때 적극적인 해명과 실제로 북한 당국의 이해 못할 행위에 적어도 우파 또는 일반인 정서와 같은 보조를 맞추어도 그러한 오해를 받지 않앗겠지요..그런데 스스로가 오해 받을 짓을 하고선 좌익=북한이라는 선입견에 문제를 삼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옹식으로 보입니다..
다만 고구려사 숭배를 위한 신라사 폄훼를 하면 좌파이며 북한과 연관성이 있다 라는 주장이 명백히 틀렸다는 것은 저 역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고구려사 숭배를 위한 신라사 폄훼를 누가 하든 북한의 정통성에 부합되는 주장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냥 고구려사를 숭배하고 발전시키면 간단한 문제를 고구려사를 숭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신라사를 민족의 반역역사로 같은 등식을 놓고 폄훼를 하는가?에 대한 반박일뿐! 더이상도 더이하도 아닙니다
오해라고요? 과거 독재정권에서 엄한 사람들을 좌파로 몰아붙이며 탄압하던 것도 '오해'라는 한 마디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만큼 좌파라는 딱지는 남한 사회에서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소호금천씨님은 지금 위험한 발상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에 대해 제가 블로그에 아예 글을 써놓았으니, 이참에 소호금천씨님도 한번 읽어보시고 곰곰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http://bokli.egloos.com/1391881
그리고 소호금천씨님이 천랑성주님께 자료 데이터를 요구하시는 모습을 보니, 도리어 제가 님께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하고 싶습니다. 남한의 좌익 세력이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사례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남한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볼 수 없을까요? 본인께서 처음 거론하실 때 구체적인 자료를 내놓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요?
이거 점점 갈수록 태산이네..지금 중간에 끼어들어 뭐하자는 짓이에요??과거 독재정권에서 엄한 사람들을 좌파로 몰아붙이며 탄압하던 것도 '오해'라는 한 마디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내가 그렇게 주장했나요??지금 나에게 시비거는겁니까???..당시 억울하게 좌파로 오해받아 탄압을 당했다면 그분이 억울한 것이고 좌파로 몰아붙여 탄압한 독재정권이 잘못한 것이지 그 문제하고 지금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잇다는 것입니까??..좌파는 좌파고 우파는 우파일뿐이지요..좌파인지 개파인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아는 문제이지? 그것을 뭐하러 저에게 자꾸 강요하는 것인지요??
그리고 신농님 천량성주님에게 데이타를 요구한 적도 없소 본문에 제시된 데이타가 신라사 펨훼와 연관성이 없어 보이니 실제로 대중적인 매체에서 데이타를 찾아서 주장하는게 올바르다고 했는데 제가 그것을 뭐하러 찾아요..제가 언제 신라사를 폄훼했나요 그런 데이타를 찾게요??..댓글 달아도 제발 상황에 맞게 제대로 달아주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관성, 긴밀성을 지닐 수 없다는 겁니다. 더욱이, 신라를 폄훼하고 고구려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 사람이 좌익이거나 친북세력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기본적인 논리학 법칙을 무시하는 주장이니. // 그리고 제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원론적으로 고구려 신라 문제와 좌익 문제는 관련성을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좌파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 고대사를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북한의 인식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이병도가 친일파이니까, 그가 해놓은 사학은 전부 받아들일게 못된다는 논리하고 비슷한 겁니다.
네 이부분은 신농님의 주장이 저와 다르지 않습니다..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며 저 또한 같은 맥락으로 줄곳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라 진흥왕 시절도 제가 보기에는 천랑성주님 말씀대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진흥왕 시절에 무엇을 배워야 하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문서한장 없는 '배신'의 과정을 배워야 하나요? 백제와의 동맹을 야밤에 깨고 급습해서 백제영역을 빼앗아간 '배신' 말이죠. 진흥왕이 가야를 차지한 것은 팽창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말이죠. 단순 진흥왕비문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신라사에 잔뜩 뿌려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신라사에 있어 문무왕은 저도 훌륭한 군주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주저함이 없고 또한 이뤄놓은 신라의 찬란한 문화도 자랑스럽습니다.
클리쉐님 위와 같은 댓글을 달기전에 진흥왕 당시의 신라본기 백제본기 그리고 일본서기를 보다 자세하게 살핀 후에도 저러한 댓글을 간단하게 달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여기 신라,가야토론방 게시물 2045번 진흥왕의 배신??? 이라는 내용을 읽어 보시고 그래도 님과 같은 주장이 확고 하시면 본문으로 한번 토론을 유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진흥왕 비문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는데 뜬금없이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라는 것은 무엇을 알고자 한 것인지요?
결국 격하게 반응하시는군요. 감정적으로 나오시는 분과 토론을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좌파로 의심된다는 것이, 과거 독재정권이 비논리적인 좌파 꼬투리를 잡던 것과 다르지 않음을 말씀드렸는데도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이 이상은 토론이 불가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건대, 토론에서 그런 식의 격한 말씀은 토론을 흐릴 위험이 다분하다는 점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발요 좌파는 좌파고 우파는 우파일뿐이지요..그건 좌익을 하던 우익을 하던 스스로 자신이 택할 문제이지? 그것을 뭐하러 저에게 자꾸 강요하는 것인지요??..그것과 신라폄훼문제를 왜 자꾸 억지로 결합시켜서 결국은 "고구려사를 숭배하기 위해서 신라사를 폄훼하는 것은 좌익이다"라고 소호금천씨가 주장한다 이런 논리를 적용시킬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시는것으로 보입니다..하지만 위의 댓글들을 다시 살피시고 전혀 "아니 올씨다"이니 그냥 안심하세요..더이상 좌익이니 하는 서로 딴나라 방향에서 실없는 논쟁 이젠 그만합시다
학문을 논하는 열정들이 대단하신 듯합니다. 사소한 댓글보다는 중점논리에 대한 논박이 더 아름답겠지만 지금 모습도 나빠 보이지는 않습니다. 열정들이 좀 과하게 표출된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모든 분께 박수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