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새
김이랑
삭정이 앙상한 들녘, 먼저 깨어나 가지 끝에 알부터 낳은 이, 너 누구냐. 하얀 꼬리 감추는 겨울이 슬어놓은 알 같고, 화신花神의 축제 전야前夜를 밝히는 하얀 성화 같기도 하다.
웃음이 헤퍼 보인다면 꽃단장한 유혹이라 여기고 씨익 웃어주고 말건만, 맵시가 허름하다면 산하를 떠도는 행자로 여기고 합장이라도 하련만, 이파리 한 장 없는 가지 끝에 봉긋한 알을 낳았으니, 필시, 마음 맑고 숨결 고운 집안의 핏줄이 아니고서야. 더군다나 붓처럼 생겼으니, 묵향 담뿍 담아 사군자 깨나 친 규수 같기도,
누리달이면 난초가 대롱 끝에 조그마한 알을 낳더라. 동충하초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것이 알을 깨더니 이윽고 새가 되더라. 해가 뜨면 날까, 달이 뜨면 날까. 창문을 열어놓아도 끝내 새는 날지 못하고 하얀 깃털을 바닥에 흩뿌리고 말더라. 사군자四君子는 지상에서 최고의 반열인데, 갈매기난초는 어째서 그 명예도 버리고 하늘을 꿈꾸는지 무척 궁금하더라.
해오름달이면 연을 만들었다. 대나무 야윈 살 깎고 깎아 문종이에 붙이고, 어깨엔 깃털, 엉덩이엔 상모 꼬리를 달았다. 마루에 길게 걸어 두었다가 바람 부는 날이면 언덕으로 나갔다. 연아 연아 까치설날 가오리연아. 내 마음의 연도 하늘 높이 날아라. 센바람엔 얼레를 풀고, 여린 바람엔 감고, 바람이 쉬면 내가 달음박질쳤다. 어쩌다 줄이 끊어져 멀리 추락하는 연을 보고 발만 동동 굴렸다. 그날 밤 꿈에 나는 연을 찾으러 떠났고, 어깻죽지를 파닥이다 그만 벼랑에서 떨어져 비명을 지르곤 했다.
이 땅에는 하늘로 가는 활주로가 있더라. SKY라는 대학인데 SKY에 활주로를 타야 하늘로 날더라. 부모가 힘껏 밀어주는 SKY에서 이륙하는 이들이 부럽더라. 고공비행으로 그들만의 자유를 누리는 이들을 보면 샘이 나더라. 그렇지 못하는 이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 몇 번 떨어지자 다른 길로 가더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 날아오르려 달음박질쳐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더라. 돌아보니 가난이 발목을 잡고 있더라. 허리가 동강 난 땅에 던져졌기에 이념에 묶이고, 경쟁에 떠밀렸기에 성적에 잘리고 제도에 갇히고, 편견에 치이다 보니 때로는 추락한 목련꽃처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더라.
작은 사업체를 하나 꾸렸다. 바닥에서 시작해 돈이 보이자 욕망이 높이 치솟더라. 더 오르지 못할 곳에 멈추니 욕망은 날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 꼬리에 불 달고 솟구치다 추락한 그 망신, 몹시 부끄럽고 아프더라. 산사에 들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가난했지만 물욕도 목적도 없이 마음만 하늘 높이 날리던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더라.
하늘을 나는 하얀 새를 보면 나는 생각한다. 기어코 날아야겠다는 하나를 대지가 지상의 법칙을 어기고 슬그머니 놓아주어 마침내 새가 되었다고. 그러하지 않으면 바닥에 흩날리는 깃털이 너무 안타까워, 나는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다.
알에서 화르르 깨어나 꽃잎을 파닥일 때, 가지 끝을 툭 꺾어주면 날 것 같으나, 그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일, 너의 날갯짓 지치고, 비바람에 깃털 몸서리치게 낭자한 날에는 하늘이 우르르 호통을 치더라. 깜짝 놀란 대지는 부르르 떨더라. 네 뜻을 하늘이 알았으니 머지않아 너는 탈속해 하늘의 품계를 받지 않겠나.
지상에서의 생존권을 얻기 위한 몸부림은 가히 눈물겹다. 매미는 깜깜한 땅속에서 일곱 해를 웅크렸다가 날개를 얻고 며칠 째지게 울어댄다. 개똥벌레는 부화 이백예순일 동안 여섯 번 껍질을 벗는다. 물속에서 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번데기로 석달 열흘이나 살다가 비로소 깨어나 날개를 얻는다. 그렇게 빛을 얻었지만 별이 되기 위해 지금도 숱한 빛을 허공에 흩뿌리다가 지상에 스러진다.
계절도 다시 돌아와 뭇 생명 꿈틀거리는 이 해토머리, 발 꽁꽁 묶여 겨우내 냉가슴 앓던 물도 앙심을 풀고 재잘재잘 해원解寃하며 바다로 가는데. 목련새, 네 마음이야. 하물며 드넓은 하늘을 훨훨 날고 싶었던 내 마음이야.
너도 숱한 깃털을 흩뿌렸으니 때가 되면 새가 되지 않겠나. 낭자하게 흩날리는 네 깃털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대지도 차마 더 못 잡아 네 발목을 잡은 손 놓으리니. 허공만 휘적거리던 목필木筆로 바람의 악보를 하느작 하느작 받아써, 내 어린 날의 연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라라.
철새 곧 돌아와 알 낳을 텐데, 들판에 스러진 내 유년의 연들은 어디에서 환생하는지, 풀빛 머금을 저 산기슭 양지녘, 키 작은 민들레가 대롱 끝에 알을 낳겠다.
2022 선수필 봄호
김이랑
수필가, 문학 평론가, <김이랑 문예창작실> 운영
수상 : 독도문예대전, 목포문학상, 천강문학상, 농어촌문학상(소설) 외 다수
저서 : 실향민 감성앨범《버드내 사람들》, 감각적 글쓰기 실전서《문장의 문학적 메커니즘》
첫댓글 저는 읽어내기가 어렵더라고요. 뭐가 뭔지도 사실 잘 모르겠고요.
(맘에 들어서 업어 온 것은 아니라는...)
선생님들 느낌은 어떠신지요
ㅎㅎㅎ
저도 그래서 뭐라 할 수도 없었어요. 내 맘대로 상상할테니 니 멋대로 해석해라?
두 번을 읽었는데도 작품이 주는 감성이 열리지 않아 그저 내 빈약한 상상력과
안목의 부족함을 탓했다고나 할까요?
@이복희 선생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저에게 전달이 되어 댓글을 단 거랍니다^^
같은 느낌 느~무 좋아요 ㅋ
1: 추운 겨울에서 벗어나 봄에 목련이 피는 과정을 그렸는데, 목련의 꽃봉오리를 '알'이라 했고, 붓 끝으로 표현하여 대체적으로 찬양.
(자신이 우월했음을 말함) 2: 목련이 피기 전후를 싸잡아 자신을 비하한 듯한 숨김으로 자신의 행동거지를 말한 거 같고, 3:누리달 (유월 달)피고 지는 난초에게는, 혈기 왕성한 자신의 꿈을 맘대로 펴지 못한 바보스런 시절을 탄식한 대목 같고. 4: 소년 시절로 돌아가, 해오름달(정월 달) 연을 만들고 띄웠던 꿈을 설명한 거 같고, 4:SKY를 대학 진학 길로 표현 했고, 오르지 못한 자신의 심정과 낙방 한 이들이 다른 길을 택했음을 표현했고. 5: '더 넓은 세상' 철이 들어 무언가를 하고 싶었는데 가난하고 남북으로 갈린 땅에선 역부족이었다는 탄식 조를... 6:작은 사업체를 경영했으나 실패를 했고, 욕심 없이 살던 옛날이 그리웠다는 서술...7:하늘을 나는 새 들 (성공한 사람들) 8:바닥에 흩어진 깃털 (불운으로 성공 못한 사람들) 9;알에서 화르르 깨어나다 (꽃봉오리가 꽃으로 활짝 피다. 10: 결코 절망하지 않겠다. 언 땅이 풀리 듯, 어릴 적 연을 날리며 키운 꿈을 펼칠 날이 반듯이 오리라 믿는다. *지면이 부
선생님 덕분에 이해가 좀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하나 해석이 필요하다면 독자의 무지 탓으로 돌리긴 어렵지 않을까요.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시 선생님 해설과 본문을 줄긋기해서 읽어볼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