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생각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요즘 아이들 가운데는 모르는 애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동요다.
그런데 이 동요 작가가 12살 소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동요를 쓴 사람은 최순애 발표 당시 12살 소녀였다.
최순애는 1914년 수원 출생으로 당시 12살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1925년 11월 어린이 잡지에 <오빠 생각>을 투고하여 그것이 동시란에 실렸던 것입니다. 훗날 최순애의 회고에 따르면 그 당시 나에게는 오빠 한 분이 계셨다.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뿐인 우리 집에서 오빠는 참으로 귀한 존재였다.
오빠는 동경으로 유학 갔다가 관동대지진 직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태를 피해 가까스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일본 순사들이 오빠를 요시찰 인물로 점찍고 늘 따라 다녔다.
오빠는 고향인 수원에서 소년 운동을 하다가 서울로 옮겨 방정환 선생 밑에서 소년 운동과 독립 운동에 열심이었다.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오질 않았다.
오빠가 집에 올 때면 늘 선물을 사왔는데 한번은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다 줄게 라고 말하고 서울로 떠났다.
오빠는 뜸북새 뻐국새 여름새가 울 때 떠나서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서울 간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다.
과수원집 딸인 나는 과수원 밭둑에서 서울 하늘을 바라보고 오빠를 그리워하며 울다가 돌아오곤 했다며 그때 쓴 것이 바로 오빠 생각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그런데 운명이었을까. 다음 해 4월 같은 어린이 잡지 동시에 14세 소년 이원수가 투고한 <고향의 봄>이 실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렇게 시작하는 고향의 봄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고향의 봄을 보고 크게 감동 받은 특별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빠 생각을 썼던 최순애였다
그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최순애는 이원수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원수도 이에 답장을 보내 둘은 펜팔 친구가 되어 편지를 주고받기 7년.
이들은 한 번도 얼굴을 못 본 상태에서 결혼을 약속하고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1911년생인 이원수와 1914년생인 최순애는 이제는 소년 소녀가 아니라 결혼을 앞둔 어엿한 청년과 처녀가 되어 그날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약속한 날 수원역에는 최순애는 나와 있었지만 이원수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최순애는 크게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실망한 것은 최순애만이 아니었으니 최순애 집안에서도 예비 사위가 못마땅해 다른 혼처를 알아보고 그리로 시집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순애는 이원수에게 무슨 곡절이 있을 것으로 믿고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한사코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버티기를 1년 어느 날이었다.
이원수가 예고도 없이 불쑥 최순애의 집에 나타났습니다.
이원수는 1년 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정을 털어놨는데, 사연인즉 당시 이원수는 독서회를 통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불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체포되어 1년간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최순애의 집에서도 오해가 풀리고 양가의 축복 속에 1936년 6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다가 이원수는 1981년 작고 하였고 (향년 70세) 최순애는 1998년 작고하였습니다 (향년 84세) 요즘에는 찾기 어려운 순애보로 보입니다.
<오빠 생각>에 곡을 붙인 작곡가는 이은상의 동무 생각 <思友>에 곡을 붙인 박태준인데 그는 최순애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훗날 이원수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만 들었다고 합니다.
<고향의 봄>에 가사를 붙인 이는 이원수이고 <봉선화>에 곡을 붙인 이는 홍난파다.
처음은 이일래라는 분이 곡을 붙였는데 마산 지역에서만 불리는 것을 보고 홍난파가 다시 곡을 붙여 <조선 동요 100선>에 발표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향의 봄>은 홍난파 곡입니다.
이 두 곡 모두 가정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 동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