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이상국(1946∼ )
설 명절이 지났으니 이제는 새해의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어떤 이는 다이어트를, 다른 이는 금연을, 또 다른 이는 취업이나 승진을 계획하리라.
매년 거창한 새해 계획을 세워보았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첫날의 다짐이 성공보다는 실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찌 보면 새해 다짐이란 성공보다는 시도 그 자체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도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뜨끈해질 신년 계획은 없을까.
시도가 곧 행복인 새해의 목표는 없을까.
새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올해의 계획을 고민하는 이들이 계실까 봐 오늘의 시를 준비했다.
적어놓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계획.
이렇게 살아야 사는 거지 싶어 오래 기억하고 싶은 목표. 우리 마음속 위시리스트가 바로 이 시에 들어 있다.
집에 일찍 가서 밥 지어지는 냄새를 맡는다.
토끼 같은 아이들과 뒹굴면서 논다. 집에서 입는 옷은 허름해도 세상 편하다.
타인, 욕망, 상처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저 내가 나인 듯 존재하는 시간을 즐긴다.
이 얼마나 천국 같은 장면인지 모른다.
동시에 이 얼마나 맞이하기 어려운 시간인지 모른다.
여기에 거창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신년 계획이 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