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정신 2021년 봄호)
첫눈 외 1편
이민숙
뜨겁게 흘러내리는 샤워꼭지의 물방울, 나 첫눈이야!
뜨겁게 흐르는 눈물, 나 첫눈이야!
물? 묻는 나도 나 첫눈이야!
첫눈은 얼굴 흰 남동생과의 희디흰 이별이다
열여섯 살 초경을 치루다가 부딪친 죽음으로부터
각각의 인간들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현관문 앞 죽음처럼 놀랍게
심장을 덮치며 첫눈은 온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억되어버리는 허공의 순리
폴폴 날아와 쌓인 마당에 발자국을 그리는 어린 화가처럼
불면의 솔방울을 투둑 떨어뜨려 바위를 깨운다 죄의식도 깜짝 놀라 일어선다
새벽 커튼을 젖히고 내리는 첫눈 사이로 세상이 순결하게 변해가면,
갑자기 역설주의자도 첫눈이야!
초등학교 6학년도 못 마치고 하늘나라로 가며 희미하게 웃던 남자아이처럼
어느 육체적 교육자에 대하여
-몽골시편 9
시는 가르쳐주었다, 바람이 왜 강으로부터 불어오는지
가르쳐주었다 사랑은 왜 간절한 건지
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매화향기 훔쳐가는 도둑 뼛속 추위에 대해서는
시는 다만,
동짓달 즈음에 구만리 창천을 날아와 갈대숲에 숨어들 수밖에 없는 흑두루미를 만나보라고 했다그 빠알갛게 얼어터진 부리를 만져보라고도 했다
덧붙이길 좋아했는데,
영하 40도의 몽골초원에서 말이나 소나 양들이 24시간 뾰족풀을 뜯어먹느라 보름달을 보고도 발자국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새벽을 스케치하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얼어 죽을 뻔! 시의 투명한 육체를 만나러 다니던 그 흰 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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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숙 약력
1998년 《사람의 깊이》에 ‘가족’외 5편의 시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지금 이 순간』등. 샘뿔인문학연구소에서 책읽기, 문학아카데미 운영하고 있음. e-mail: 123lms@hanmail.net
첫댓글 얼어죽을뻔!! 생각해보니 얼어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와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몽골 겨울은 도처에 '얼어죽을 뻔'이 널려있었어요. 실제로 차탕족 마을 가는 길에선 길을 찾아 헤매다 밤이 되었고...사면초가구나! 했으니까요. 살아온 것 보듬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몽골! 잘 익은 별들을 따먹고 싶어진다.
이제 곧 몽골 별 따러 갈 수 있겠네요. 기대만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