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시옷
쏴아, 철썩
파도소리는 수식이 없고 군말도 없다. 어릴 적부터 바닷가에서 자랐기에 나는 해조음에 친숙하다. 바다의 언어는 간결하지만 그 속에 많은 것을 품고 있다.
남편이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정이 든 부산을 떠나야 했다. 막상 집을 알아보려니 어디에 자리를 잡을까 하는 고민에 부딪쳤다. 며칠 생각하고 의논한 끝에 아이를 우선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학군이야 강남이 좋지만 살기에 답답할 것 같았다. 이곳저곳 따지다가 숨 쉴 여유가 있는 도시를 선택했다.
분당이 눈에 쏙 들어왔다. 분당은 기반시설도 훌륭했고 도로도 널찍했다. 계획도시라서 전신주 대신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짙은 초록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언제 들어도 맑았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느껴졌다. ‘천당 밑에 분당’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출신지가 달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주민 하나하나가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자꾸만 스치다보니 눈인사를 하고 말문을 열다보니 마음이 열렸다. 이웃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외로움도 조금씩 사라졌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벽이 있었다.
“이 살 얼마예요?”
“뭐라구요?”
한 번 더 말해도 점원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볼펜과 메모지를 꺼냈다. ‘쌀 주세요.’라고 적어 점원에게 건넸다. 그제야 점원은 고개를 끄떡거렸다.
“어디로 배달해드릴까요.”
“상용아파트 0동 몇 호요.”
“어디요?”
“상용요, 스앙용 ~”
힘주어 말해도 점원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그럴 것이, 나는 쌍시옷 발음이 잘 되지 않았다. 내 입은 ‘쌀’을 ‘살’로 발음한다. 주말에 가족끼리 치킨을 배달시키려고 해도 쌍시옷이 들어간 아파트 명을 말할 때는‘쌍시옷’, ‘아’, ‘ 이응’하고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서 말해야했다.
사람을 만나면 서울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긋나긋하게 발음해보고 억양도 낮춰보았다. 그러나 끝만 올린다고 다 표준어가 되는 게 아니었다. 15년이 지나도 억양이 강하고 투박한 입말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부산에선 표준어로 분당에선 부산 사투리로 통했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내 언어는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분당에서 십년 넘게 살다 보니 고향이 다른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나처럼 쌍시옷 발음이 서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감자 굴러가듯 구르는 강원도 사투리, 거시기로 다 통하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있으며 돌도 느릿하게 굴러가는 충청도 사람들도 있다.
ㅅㅅ
쌍시옷은 상형문자인 한자漢字로 보면 人과 人이다. 사람과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면 소통해야하고 그 수단은 언어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민족마다 말이 다르고 지역마다 고유의 사투리가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말을 다 알기는 불가능하다.
살다보니 사람과 사람은 말로만 통하는 게 아니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김장 한통을 건네줬더니 할머니는 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았다. 이웃에게 과일을 건네자 이웃은 내게 친정엄마가 보내준 강원도 옥수수로 답례했다. 내가 먼저 웃으면 저쪽에서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굳이 말을 안 해도 마음을 전하는 언어는 많았다.
친정에 내려온 길, 볼일을 끝내고 나니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오랜만에 어릴 적 정서를 키우던 고향 앞 바다를 거닐고 싶었다. 아들딸 다 떼놓고 혼자 영도 해변으로 나갔다. 땅과 바다의 경계에 서자 철썩, 쏴아아, 파도는 여전히 센 발음으로 말을 걸고 부서졌다. 혓바닥에 힘을 바짝 주고 대답해보았다.
“철석”
“솨아아”
나를 보며 파도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첫댓글 작품에 담긴 서술 (글말)들은 더 없이 부드럽고 매력도 있네요.
경상도 아가씨는 정말 상냥합니다.
"한 번 만납시다"하면 "어디예" 하고, 만날 장소를 말하면, "언제예" 만날 시간을 말해 주면 또 "어데예" 하고 거절을 합니다.
부정적인 그 대답 음은 그야 말로 젊은 남자의 영혼을 뺏어 가지요.ㅋㅋㅋ
준빠님은 젊은 시절, 영혼을 자주 뺏기셨을 듯. 로맨티스트의 특징 아닐까요? ㅎㅎㅎ
선생님 댓글에 제가 두 손을 벌 서듯이 들고 있어야겠네요.
경상도 아가씨가 다 저런 것은 아니랍니다.
저 같은 경상도 아가씨를 만났으면 그쪽 처녀들은 죄다 조폭에 가입된 사람들인가 했을 겁니다.
외모부터도 다릅니다.
저는 숏커트를 하고 다녔는데 한번은 가던 차도 멈춰서 '여자예요? 남자예요?' 물어 볼 정도였답니다.
만약 '한번 만납시다' 남자가 물었다면
'와예? 뭐한다꼬예' 라며 쏘아붙였을 거예요.
그러니 그 다음으로 나올 언제예, 는 도통 들어볼 수도 없지요.
다른 의미에서 젊은 남자의 영혼을 뺏어 가지 않았을까요.
암만 세월이 가도 쌍ㅅ 발음 안되는 겡상도 사람들, 듣는 사람들은 재미로 꼬투리 잡으면서도 다 알고 있답니다. ㅎㅎ
저는 아주 쌍시옷 발음을 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둘레를 보면 정말 발음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쌀 주세요, 해보세요'
'써니텐 발음 안 되죠?'
'쌍둥이는 될려나'
이러면서 놀려먹은 게 기억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