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 바람이 좋다. 맑은 공기도 좋고. 파란 하늘을 보고 또 보는것은 참 좋다. 두발로 서서 어께를 으슥해보니 더욱 좋다. 무한 긍정이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좋고 좋으니 참 좋다! 이러고 살면 누가 뭐래? 이러고 살았으면 참 좋겠구만. 그런데, 왜 이러지 못하는 것이지? 누가 있어서 발목을 잡는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 아마도 평생 이러지 않았을까. 미혼 시절과, 결혼 기간과, 과부로 혼자 살아온 기간이 대락 삼분의 일 수준이다. 어떤 계산이 더 필요할까. 마칠때가 된듯 싶은데, 끝은 언제일까. 작은고모도 그러셨다. 죽을날만 기다리고 사는 중이라고. 대체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걷으로는 소리내어 웃었지만 목이 매이고 울움이 나올것만 같았다.살아있다는 것은 은혜이고 축복이다.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씀하신게 주님이시다. 그분이 실언을 했다고는 생각안한다. 그걸 곱게 받아드리지 못하고 사는 우리 삶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쓸모없다는것,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싫다. 그것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에게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나도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정말 아닌지는 모르겟다. 노인으로 사는 삶에는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스스로 창출해내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가 짐이된다. 나는, 벌써부터 짐이되어 있다. 지금 바로 떠난다면 얼마간 현금과 이 반지하가 유산으로 남겨질수도 있는데,,, 이거라도 남기고 싶은게 과한 욕심일까. 이 반지하가 개발되어 얼마라도 돈이 된다면 손주 셋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런데, 이것도 불공평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들과 딸에게 반분하라고 하는게 옳을까. 만일 효도비용이라는게 있다면 딸에게 더 줘야 맞는 것일까. 그런데 삼분하라고 하면 딸에게 상처를 주는게 될까. 한번 물어봐야겠다. 물어보고 딸의 의견에 따라야 겠다. 그런데 왜 나는 자식을 건너뛰어 손주들에게 주고 싶어젔을까. 단지 며늘이 마땅찮아서? 우진이 살가워서? 우진이 살갑다. 그렇다고 은호를 놓을수도 없다. 호영은 혼자다. 그래서 이런 계산을 했나싶다. 옳은 셈법은 아닐수도 있다. 딸이 섭섭해 할수도 있다. 이번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아프지않고 살다가 속히 가주는게 어떤 유산보다 더 효율이 높을텐데,,, 이걸 누가 해주겠는가. 주님께서 응답하실 차래입니다. 고모, 이모, 시집 형님들 여럿이 연세가 높습니다. 가능하다면 그분들을 추월해서 깃발을 날려보고 싶습니다. 그 행운을 허락해주시지 않겠는지요.부탁 부탁 드립니다. 천국이, 제가 바란 그 천국이, 제 앞에 펼쳐저 있을지는 아직도 확신이 없습니다.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것 같지는 않아섭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은혜로, 어딘가 가야할 그 곳은 반듯이 있을거라 믿습니다. 참으로 시시하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이 땅을 힘들게 살았습니다.우똑 서 보고도 싶었고, 높이 높이 날아도보고 싶었지만 그 판타지는 끝까지 판타지로 끝낫습니다. 이제, 날아서 천국에 이르고 싶습니다. 이건 꼭 들어주실거지요? ㅎㅎㅎ주님께서는 제 하나님이시고 아버지이십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