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셨다
전철이나 거리에서 종종 농아들이 수화하는 것을 본다. 손짓 하나로 의사소통을 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직 그 수화의 의미를 모르는 나에게는 아주 신기하다. 거의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을 보면 놀랍기도 하다.
상징은 교육의 중요한 도구이다. 상징symbol은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표식과 기호로써 사용된다. 상징은 실제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종교, 교육, 문화, 기술, 과학, 수학, 미술, 문학, 예술 등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우리는 부호나 기호를 통하여 수학을 공부한다. +, -, =, %, 등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는 아주 많다.
시는 상징적인 언어이다. 상징은 간단한 단어나 기호로써 많은 것을 말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미 그 안에 수많은 복합적 메시지가 들어 있다. 별은 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최고를 상징하기도 한다. 빛은 따스함, 환함, 길 안내, 희망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상징은 상상력에 호소한다. 또 마음의 언어이며 영적인 언어이다. 우리가 언어나 글로써 말할 수 없는 부분을 상징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고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종교에서는 상징을 많이 사용한다. 십자가는 상징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십자가 안에는 성경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고 그것을 묵상하면 책 한권 이상의 내용이 담긴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해서 추상적이고 기초적인 원칙을 찾아냈을까? 그는 수학과 논리 대신 가상의 은유적 시나리오를 통하여 자신의 인상과 이미지를 사용해서 그 원칙을 찾아냈다. 숫자와 가상의 세계가 상호작용이 일어나 그 원칙들을 보게 한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가보지 않은 세계를 알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다고 가상하여,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면 갑자기 내 마음에 사랑이 밀려오게 된다. 이것을 현실 세계와 연결하여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사용한다면 가상의 은유적 시나리오는 충분히 미리 경험하고 그 원리를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주의 난해한 법칙임에도 불구하고 은유적인 가상의 그림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얻어낸 결과였다.
본질을 알려면 일단 벗어나 본질을 보여주는 다른 은유를 상상하면 자연스럽게 그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은유란 한 개념을 설명하거나 전달하려고 할 때 무언가 다른 것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은유는 곧 상징이다. 은유나 상징으로 말하면 언어를 넘어서는 강점이 있다. 은유의 학습은 마음에 새로운 연상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특히 이해가 쉽지 않을 때 우리는 은유나 상징을 사용한다.
예수님은 가르침에 은유와 상징을 많이 사용하셨다. 베드로를 제자로 불렀을 때 사명과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어려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비유와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면서 쉽게 그 뜻을 풀어 주셨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놀라운 말씀이다. 베드로의 상황과 연관시켜 베드로가 잘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셨다. 어부인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은유는 쉽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짧은 말씀 안에는 이미 수많은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다. 이미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십자가라는 상징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심지어 온종일 묵상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할 때 긴 설명을 하기보다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 “눈은 몸의 등불” 등의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셨다. 이는 짤막한 글 이상의 많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는 강점이 있다.
이것이 교육에 풍부하게 사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비유와 은유가 교육 현장에서 잘 사용된다면 공부는 즐겁고 누구든지 쉽게 이해하게 되며 학교생활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학교 현장은 은유와 상징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미 가지고 있던 많은 상상조차도 사용법을 묻혀 두고 있는 실정이다. 교과서 외에 다른 이야기나 상징은 교육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아쉬울 뿐이다. 정해진 틀 위에서 어려운 이론들을 암기하고 복잡한 문제를 계속 풀어가는 교육에 모두가 꼼짝없이 매여 있다. 글 이상의 글과 말 이상의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그런 가르침이 그립다.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는 언제나 표현의 한계가 있다. 우리가 하느님을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가? 사실 불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하느님의 이름은 없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감히 붙일 수 없다. 하느님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상징적이다. 그 이상의 의미가 그 안에 들어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결국 여기에 놀라운 교육의 원리가 들어 있다. 상징이 빠진 교육은 고루한 교육이 되고 죽은 교육이 된다. 말과 글자와 문자에 매인 교육이 된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창의적인 능력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적은 이유는 바로 이런 교육의 문제점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상징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상징을 잘못 사용하면 비본질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우상을 만들어 자칫 그것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우상을 자기 신으로 만드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을 미리 주의하면서 상징의 강점을 잘 살린다면 교육에서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계속적인 창의력은 상징을 사용하는 데서 일어나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은 새로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컴퓨터의 수많은 자료를 압축화일 하나에 집어넣듯이 상징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쉽게 전할 수 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