휑하다
날로 짙어가는 녹음이 건강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햇살 부신 봄날 아침.
약간의 조바심, 설렘, 보고픔, 궁금증을 안고 집을 나섰다.
**병원 부설 **요양원.
널따란 로비가 아주 정결하다.
우릴 맞는 안내직원들의 친절한 미소가 평안을 준다.
초조할 새 없이 숙소 쪽에서 휠체어가 나타났다.
백발에 희디흰 얼굴, 홀쭉한 양 볼, 왜소한 체구가 휠체어 깊숙이 앉아 있다. 82세의 望九가 된 나의 큰 형님(동서)이시다.
세상인의 모습이랄 수 있을까. 인간 본연의 모습일까.
“형님! 제가 누군가요? 형님~ 고향이 어디세요? 형님, ** 알아요?......”
“누구? 나 모르겄는디요. 다 몰라~”
다섯 사람(손아래 동서3, 시누이2)의 줄줄이 질문에 “몰라”로 일관하시는 형님.
금방 되새김하던 이름들도 내쳐 물으면 묵묵무답,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신다.
남편의 죽음, 애지중지한 자식, 손주들도 까마득해졌다.
형님은 사단칠정의 80여 년 삶을 모두 비워내고 계셨다.
머리 속, 가슴 속까지 비워져 가고 있다.
자꾸 웃으신다.
비운 탓에 가벼워서일까 솜털 같은 표정이다.
짓누르는 고뇌가 없으니 행복하신지 갓난아이가 되셨다.
이제는 자유인이 되셨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논밭 농사로 갈퀴 같던 손도 정갈하다.
“맛있다 맛있다” 연발하며 요플레를 2개나 드신다.
살아있는 미각이 그저 고마웠다.
곱게 물든 단풍마냥 부귀영화 고운 삶은 아니었을망정, 이렇듯 빛바랜 낙엽같은 인생이라니.
처연하다. 휑하니 가슴이 시려왔다.
생의 끄트머리에 선, 저 텅 빈 머리, 가슴을 이제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앞으로 무엇을 기다리며, 기대하며 살아갈까.
모든 삶의 궤적들에서 떠나게 되는 나,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으려니.
나는 나를 끝까지 붙잡을 수 있을까?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망연과 침묵이 사위를 휘돌았다.
면회 시간이 끝나자 형님 실은 휠체어는 뒤돌아봄 한번 없이 요람을 향해 바쁜 걸음을 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양 우두망찰 서 있자니 눈물이 핑 돈다.
수족도 생각도 가슴도……
모든 것을 타의에 의존해 살아가는 형님을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짙어가는 녹색의 숲을 보며, 부활로 윤회로 우릴 다시 찾아온 자연의 순리에 터무니없는 욕심을 가져본다.
휑하다.
첫댓글 나도 나를 끝까지 붙잡을 수 있을까. 다가올 나의 미래를 보는듯 슬퍼집니다.
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어젯일처럼 명료하게 떠오르는 울엄마의 모습.
휠체어에 앉아 반가움에 미소지며 아는체를 하시던 우리엄마
지금도 눈물없인 회상하지 못하는 엄마와의 시간들.
글을 읽으며 엄마 생각에 눈물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