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제사장들의 죄악 (1) 하나님과 율법에 무지하여 잘못 가르침
호세아 4:4-7
4.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5.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호세아의 첫번째 설교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원인이 제사장들의 타락과 죄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서는 제사장들만 타락했고 백성들은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피장파장이므로 손가락질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제사장들과 백성들 모두의 죄로 인한 것이므로 서로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절에서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라는 말은 여러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얼마나 제사장들이 타락했으면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제사장들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제사장들처럼 백성들도 타락했다는 것이며 셋째로는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사장을 대항하여 싸우는 지극히 악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이 만일 천자히 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천자히 행치 아니하리라"(신 17:12-13)
이스라엘의 죄악은 1절에서 말씀하듯이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도 없었고 하나님을 알기위해 노력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즉 영적으로 죽어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만드셨을 때, 아직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는 죽은 흙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생기를 불어넣는 순간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죽은 흙덩어리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즉 동물과 같다는 말입니다.
동물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본능에 의지해서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먹기 위해 싸우고 살기위해 빼앗습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도 똑같은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 역시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명명했었고, 세네카는 그것을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ist, social animal )"이라고 바꿔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 뿐만이 아니라 동물들 역시 조류와 포유류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종류의 것들이 만나서 상호간의 관계에 의해 유기적으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혼자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사회가 필요없는 사람은 짐승이거나 하나님 둘 중의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의 최고 목표는 인간 개개인의 자아실현이며 인간의 자아실현은 사회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인간은 가족과 이웃을 통해 사랑을 느끼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인간의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할 때에 가능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인간은 동물과 같이 본능의 욕구에 의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싸우고 경쟁하고 도전하며 쟁취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세상은 무법천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엄연히 법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무법천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거치겠고"라는 히브리어 '카솰'(כָּשַׁל)은 '넘어지다, 발을 헛 디디다, 비틀거리다, 사별하다'(fall, stumble, cast down, be feeble, bring injury, bereave) 등의 뜻을 갖고있는 동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 "너"는 이스라엘 개개인을 말하며, "선지자(נָבִיא, 나비)"는 거짓선지자를 말하고 "네 어미"는 이스라엘 나라를 말합니다.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제사장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에 대해 여러 군데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 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11-15)
열왕기상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는 참 선지자보다 거짓 선지자가 엄청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4백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왕상 22:6-8)
오늘 본문에서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으므로 서로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제사장들의 잘못을 먼저 책망하십니다. 모든 곳에서의 결과는 항상 책임자에게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도 항상 책임자에게 먼저 추궁하십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권했었지만 가정의 대표인 아담에게 그 책임을 물으신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온 인류가 죄악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인류를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속죄양으로 돌아가신 것이 바로 그러한 대표성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제사장들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며 둘째로 그들의 마음이 세속에 물들어 있으며 셋째로 여호와 좇기를 그친 것입니다.
(1) 제사장들이 하나님과 율법에 무지하여 잘못 가르침(6-7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라고 한탄하십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누구로부터 공급받겠습니까?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들은 율법에 능통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말 2:7-9)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2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사장의 입술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입각한 지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생명과 평강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리 가운데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말 2:5-6)
제사장들이 해야할 의무는 백성들에게 성경말씀을 올바로 가르쳐서 말씀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며 만약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율법을 버리고 그 말씀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기억하라" 또 "기억하라" 그리고 "깨어있으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율법을 법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는 그것을 생명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법을 생명의 법이 아닌 행위의 법으로 주어 그들을 사망의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이 모두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교인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교회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과의 사귐이 좋고 또 어딘가 새로운 곳을 향해 가는 것이 두렵고, 어디를 간들 거기에서 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이미 크리스천들의 마음 속에는 목회자들을 신뢰하는 믿음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강 자기들이 다니기 편하고 자녀들을 교육하기에 괜찮은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입니다.
6절의 "네 자녀"라는 말은 거짓된 제사장을 따르는 백성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기 때문에 그 말씀은 더이상 제사장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씀에 무관심한 것처럼 그들에게도 무관심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흩어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즉 고난과 환난의 도가니로 몰아넣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아십니까?
또 7절에서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저희"는 제사장들과 백성들 모두를 말합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신학교와 교회가 많아지고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그들 중에서 정말 알곡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알곡은 소수에 불과하고 쭉정이와 가라지가 교회에 다수를 차지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쭉정이는 알이 없는 껍질을 말하고 가라지는 알은 있는데 독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둘은 심판날에 쭉정이는 날아가고 가라지는 불에 태워짐을 당하게 되는 것들로서 교회 안에서 알곡들을 연단하는 연단의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가룟유다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필요한 것처럼...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동기는 여로보암 2세때 번영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풍성해졌을 때에 하나님을 버리고 더욱 자기들의 길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의 우상숭배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자기의 지식과 재능과 물질과 권력과 그동안 갈고 닦았던 노력의 결과와 자기를 도와주는 어떤 사람 등으로 인해 생긴 번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잊은 것이고 하나님을 버린 행위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악한 일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들은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음식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생명까지 강대상에서는 거짓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크리스천은 자살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므로 조금만 힘이 들면 자살을 시도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아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말은 주로 중형교회나 대형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면서, 자살은 행위이므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은 자살을 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또 남을 살인하는 자도 용서해주시는데, 자살은 타살보다 약한 죄이므로 당연히 용서해주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성경 구절을 뽑아서 갖다 붙이는 심한 말장난입니까?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것은 구원파의 교리인데, 보통 교회 강단에서 목사들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자살하면 지옥에 가니까 자살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를 신천지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의 목사가 지난번에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했던 한인집회의 강사로 초청되어 갔던 것을 보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중형 이상의 교회에서 하는 것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을 길이 없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바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강도의 굴혈"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는 교회안에서 선교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사고파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물건을 사고파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나 선교단체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교회라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거듭나지도 않은 신학교를 나와 안수를 받은 수많은 이리들이 교회를 차려놓고 장사를 하며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양적으로 부흥되고 물질적으로 풍부해진다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영적인 부흥이 빠져있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복받는 말, 부드러운 말, 위로해주는 말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 11:6, 9)
사람들은 자기의 귀를 긁어줄 상대를 찾아다닙니다. 따라서 목사의 가르침이나 설교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사와 다투기도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부드러운 말과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달라고... 그러나 성령충만하여 지혜로운 자는 회개하라고 강하게 외치는 목회자와 다투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목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회개하라는 말은 하지 않고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주며 그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목사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을 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2-5)
제사장들의 죄는 율법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목사나 전도사라면 최소한 성경을 50번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최소한... 성경을 별로 읽지도 않고 가까이 하지 않고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양무리를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시간이나 기도할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느라 너무나 바쁩니다. 특히 교계에서 한자리 얻기 위해 정치하느라 바쁜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교회에 담임으로 가려고, 좋은 기독교단체에 들어가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연락하면서 줄을 잡으려고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합니까? 교인들을 보살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시간에 자기의 이익과 교회의 양적 부흥만을 위해 얼마나 필요없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까?
목사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잘못 행하는 것은 그들이 성경을, 하나님을 제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하나님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몰라서 잘못 가르칠까봐 끊임없이 더 알아가려고 매일 성경을 보며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게된 하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을 보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귀한 말씀을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성령충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아무리 천 번, 만 번 말해보았자 입만 아플 뿐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라면 더욱더 열심을 다해 성경을 읽고 연구하며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진리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 때문에 교인들까지 환난 속으로 넣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목회자 한 사람 때문에 온 교회가 환난 속에서 허우적 거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계속해서 일이 풀리지 않고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목회자가 진리가 아닌 자기방식으로 가르치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자기 교회의 목회자들의 영적 강건함을 위해 열심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 교회의 목회자가 성경과 다른 것을 가르치거나 설교를 한다면,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를 하되 아무리 기도해도 그들의 가르침이나 언행에 변화가 없다면 함께 망하지 말고 그러한 곳에서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목회자 밑에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으며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고 보호를 받은 신앙생활이 이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목회자는 자기에게 속한 주님의 양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면서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목회자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더욱더 그 목회자가 잘못되거나 힘들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열심히 진리를 사수하며 전하는 목회자는 계속해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도록 쉬지말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통하여 저와 저희 교회와 나라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뭔가 일이 잘 안될 때 사람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담이 가장 먼저 했던 일로서 저희가 아담의 후손이므로 그와 똑같은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중에서 주님을 경외하며 열심히 주의 말씀을 연구하며 그 말씀을 저희에게 잘 먹여주기위해 애쓰는 목사님이 있는 교회에 다니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 항상 저희를 위해 저희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목사님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분을 통하여 저희가 망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쳐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희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온갖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을 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정치, 경제 등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끝날 때가 많습니다.
설교 마지막에는 세상적으로 눈물이 핑 도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끝맺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눈물이 나기 때문에 그것이 은혜받았다고 착각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고 유교적인 사상에 입각해서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유교의 사상이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또 성경과 다르게 말씀을 전할 때도 있지만, 다른 교회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새로운 곳에 가면 적응해야 하는 일 등 여러 가지가 편치 않아서 그냥 습관적으로 불만을 품은 채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할 지 주여, 가르쳐 주옵소서)
그 동안 제가 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기도를 별로 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저희 목사님이 정말로 말씀 위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시고, 말씀과 기도에 전력하므로 저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잘 인도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목사님을 통하여 주께서 저희에게 가르쳐주시는 하늘의 지혜를 잘 깨달아 알아서 주님을 주님의 뜻대로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제가 듣고싶은 말씀만 골라서 먹는 자가 되지 말게 하시며, 듣기 싫어도 제 영이 살 수만 있다면 제 감정과 이성을 주의 말씀 앞에 모두 내려놓는 겸손함도 저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동안 교회의 목회자들과 교인들 모두가 주님을 알려고 애쓰지 않았던 모든 것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것으로 인하여 저희 교회가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저희가 살고있는 온 나라에 계속해서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 재해, 가축들에게 번지는 전염병, 가뭄, 전쟁의 위험 등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저희 나라에 계속해서 보이고 있는데도 교회들은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셔서 먼저 목사님들부터 회개의 영이 임하게 하셔서 지도자로서 먼저 회개의 본을 보이게 하시며 또한 저희 교인들도 그러한 지도자를 따라 함께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저희 가정과 자녀들이 잘 되기 위해 교회에 다녔지만, 실제로는 자녀들이 잘못되도록 저의 행위는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해왔음을 고백합니다.이제부터는 저와 저희 교회가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여 가장 먼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한 뒤에 하루를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자꾸만 성경 말씀보다 세상적인 상식과 지식과 경험이 앞서는 저의 모든 습관을 바꿔주셔서 항상 모든 일을 대할 때에 성경 말씀이 먼저 떠오르게 하시며, 그 말씀대로 삶 속에 적용하며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셔서 주님을 잊어버리고 심히 교만한 행위를 하지 말게 하시며,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과 언행을 하는 가운데 주님의 영광만을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수 경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