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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시즌= 원문보기 글쓴이: 양주골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1957년)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대한민국의 미인대회로 1957년부터 시작했다.
학력(고등학교 졸업 이상), 연령(한국나이 19~27세), 기혼 유무(미혼) 등의 제한 요소가 있으며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스코리아 지역 대회에서 입상해야 한다고 한다. 미스코리아에서 입상하면,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어스 등 국제 미인대회에도 나갈 수 있다.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사절로서 과거에는 꽤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미스코리아 입상 경력을 바탕으로 연예인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심사과정에서의 뇌물 수수 사건이 터지고, 성형수술이 보편화되면서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가진 지원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참가자들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진데다가, 대중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함량미달 미모의 입상자들이 난무하면서 최고권위의 미의 제전이라는 위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주최사인 한국일보의 위상도 함께 떨어졌다. 수영복 심사를 둘러싼 논란과 여성계의 비판 때문에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결국 2002년부터는 공중파에서 미스코리아 본선 중계 방송이 중단되었고,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2015년부터 MBC 플러스가 주관 방송사로 있으며, MBC every1과 MBC MUSIC에서 동시편성되고 있다.
최근 미스코리아 인지도가 굉장히 많이 떨어져 심지어 아는 형님 8회에서 가짜 미스코리아를 찾는 진실게임을 진행했는데 단 1명만, 그것도 찍어서 맞힐 정도. 슈퍼모델 1명 외엔 모두 그 해 미스코리아 전국대회 진선미였는데 그 누구도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더이상 미스코리아가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말은 입상자에게만 붙이는 말이다.
한국 최초의 미인 대회는 일제강점기에 있었다. 1931년 국경의 밤을 쓴 시인 김동환이 창간한 잡지사 삼천리가 개최한 '반도의 대표적 려인(麗人) 미쓰 코레아 삼천리 일색(一色)'으로, 사진응모를 통해서 선발하였다. 심사위원이 의외로 화려한데, 이광수, 염상섭, 김억, 안석주, 이승만(李承萬), 허영숙, 나혜석, 김원주, 최승희가 심미안을 갖췄다라는 이유로 선발되었다. 총 326명의 응모를 받아서 14명이 입상했다. 그중에서 1등을 특상이라고 불렀는데, 당대 여류문인 최정희의 여동생인 최정원(崔貞嫄)이 선택되었다. 최정원은 이후 카프 소속인 이갑기와 결혼했는데, 결혼 몇 주만에 이갑기가 카프 참여 혐의로 체포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언니 최정희처럼 소설 <낙동강>을 발표하면서 문인으로도 데뷔.
다음은 1940년 8월 일본 잡지사인 <모던 니뽄>이 황기 2600년을 기념하여 미스 조선을 선발하였는데, 전남 목포 정명고등여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김영애가 선발되었다. 그리고 김영애는 화가였던 문재덕과 결혼하였는데, 이쪽도 운수가 좋지 못했는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남편이 납북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미인대회는 1949년 월간잡지 <신태양>이 미스 대한 선발 대회를 개최한 것이 기원이다. 신태양은 사진응모로 후보를 추린 다음에 명동에 그 사진을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의 투표로 미인을 선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고등학생이나 사무직 여직원 등 47명의 사진만 도착하였다. 그나마 영 아니다 싶은 경우를 추리자 7명만 남았고, 이 7명 역시 잡지에 실을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기자들에게 나가서 외모가 되는 미인들을 찾아오라고 했으니, 주 대상은 다방 마담들과 요정 직원들이 주가 되었다. 이렇게 20명을 채웠으니, 우승자도 역시 명동 지역 다방 마담이었던 임현숙이 선정된다. 이후 임현숙은 나름대로 연예계 생활을 좀 했다.
이 다음은 더욱 가관이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달리던 1953년 5월 피난 수도였던 부산시청 강당에서 미인대회가 열렸다. 중앙일보 주최였던 제1회 여성 경염대회(競艶大會). 제1회라고 하지만 어차피 2회는 없었다. 이 대회의 1등은 숙명여대 재학 중에 부산으로 피난온 강귀희가 차지하였는데, 이 과정도 골치아프다. 원래 강귀희는 참가자 명단에도 없었는데, 심사위원들의 요청으로 후보가 되었다. 이 본선은 수영복 심사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수영복 심사는 비공개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공개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미인대회에서 수영복 심사한다는 소리를 듣고 인파가 많이 몰렸기 때문에 결국 모조리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다만 본선 진출자 10명으로 모아놓고 발표회만은 공개로 진행했다.
이 발표에서 당연히 심사위원이 초빙한 강귀희가 1등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때 명칭을 미스코리아라고 했기 때문에 강귀희를 최초의 미스코리아라고 부르는 사람도 가끔 있으나 이 대회는 공식적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후 강귀희의 앞날도 그렇게 순탄하지 않아서 유명세로 몇 년간 공부를 못하질 않나,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서 한국 음식점을 여네 디자인을 하네 하다가 결국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단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의 고교 1년 선배라는 이유로 KTX의 시스템 및 열차 도입 과정에서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의 로비를 담당하였고, 개신교계 유명 목사와 프랑스 나비부인과의 관계를 주선하는 인물이라서 이후의 소송에서 참여했다.
과거의 위상은 없어지고 아나운서나 연예인 지망생의 이력서에 한 줄 더 써 넣을만한 대회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이런 현상은 70년대 부터 있어왔던 일이지만 대회의 위상이 낮아지면서 그 도가 심해졌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사실상 방송 입문 코스로만 전락 해버린 것. 다른 메리트도 있던 대회가 이제는 단순한 방송 입문을 위한 스펙 쌓기 대회가 되어버린 것이 현실. 그리고 연예인 지망생들이 스펙쌓기 위해서 나오는 경우도 많아 연예인 입문 루트 중 하나로 인식될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6.2. 국제대회 부진
미스코리아는 1980년대가 지난 후 유난히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 아마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태닝된 구릿빛 피부에 근육으로 다져진 당당한 이미지의 미인을 선호해서 다소곳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여성을 선호하는 미스코리아와는 코드가 안 맞는거라 하지만 그러기엔 다른 아시아 국가 미녀들은 잘만 입상한다. 미국, 일본도 국내대회인 미스 아메리카, 미스 재팬은 엄친딸 속성인 사람을 뽑고, 미스 유니버스 대표 선발전인 미스 USA,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서는 태닝한 파티걸 스타일을 뽑는다. 2015년도 미스 유니버스 재팬에서는 흑인 혼혈 참가자 미야모토 아리아나가 우승하기까지 했다.
미스코리아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청순하고 다소곳한 이미지보다도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태닝된 피부에 거침없고, 당당하고, 솔직한 매력이 통통 튀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까 말까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모든 미코들의 롤 모델이자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4위를 한 이하늬를 예로 들어보자. 이하늬는 국악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을 거침없이 어필할 뿐 아니라 글래머러스한 가슴에 11자 복근을 바탕으로 한 몸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끌 수 있었다. 거기다 동양적 마스크에 서구적 몸매, 차분하면서 관능적인 목소리가 이하늬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이게 해줬다. 덕분에 그 결과 2007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우승은 못하더라도 최소 4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미코대회를 보게 되면 이러한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보다도 아련하고 청순한 이미지에만 집착하다보니 국제 성적과는 더욱 더 멀어져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미스코리아 대회는 2011년에는 미스 월드의 출전권을 상실하더니, 2016년부터는 국제 양대 미인대회 중 하나인 미스 유니버스에 나갈 한국 대표를 뽑을 권리를 상실하게 되어버렸다. 제1회 2016년 미스 유니버스 코리아 대회 우승자는 2017년 1월에 개최되는 2016년 미스 유니버스에서 한국 대표로 나갈 자격을 얻게 된다. 이로써 미스코리아 대회는 미스 월드에 이어서 미스 유니버스라는 국제 양대 미인대회의 출전권을 모두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2015년 이후 미스코리아 선, 미 당선자 중에서 남은 국제대회인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어스에만 출전하게 되어 미스코리아 진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6.3. 각종 대회관련 비리들
사건사고가 끝도 없이 터졌고, 뒷말도 엄청나게 많은 것이 현실이다.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나온 것만 해도 1990년 대회에는 한국일보 임원과 미용실 원장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었다. 1993년 미스코리아 선 역시 뇌물의 결과로 드러났고 역시 관련인물들이 구속되었다. 1998년 대회에서는 기술상 문제로 점수가 잘못 산정되는 오채점 문제가 나타나서 희대의 재투표가 벌어졌는데, 이에 대해서도 뇌물 받아먹은 것이 꼬여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미리 점수를 맞춰놓은 것이 아니면 이 총점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거니와, 현장에서 관련인들 사이에서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결국 1998년 대회는 방송없이 원래 방송일로부터 5일 후에 비공개로 결과 발표만 나왔다.
2012년 대회에서는 후보자의 모친이 해당 언론사 팀장을 통해서 심사위원들에게 뇌물 총 4,000만원을 전달했다가 결국 입선하지 못하자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심사위원들이 거부하면서 대형논란으로 발전했다. 이쪽과 관련된 것이 소위 말하는 미스코리아 미용실들로, 미스코리아 당선 소감으로 나오는 어느 어느 미용실 원장님에게 감사하고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평이 많다.
지방대회의 경우는 정말 관련된 악명이 자자한 편으로, 원래 심각하던 지역대회의 비리가 이젠 공중파를 타지 못하는 본대회까지 퍼졌다는 식의 이야기도 많다. 심사위원 매수금만 억단위라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기사까지 있었으니...
이런 비리의 온상으로 유지가 되는 것은, 미스코리아라는 것이 아직도 소위 '스펙'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결혼시장, 취업관련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문대학원에서도 미인대회 입상은 예체능 특기자로 취급해서 특차입학의 조건이 된다.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려고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에 뇌물썼다가 돈으로 분쟁이 벌어진 사건이 2011년 경기지역에서 이미 벌어졌었다.
이 문제를 특히 열심히 뒤지는 프로그램이 시사매거진 2580으로 2010년에는 '놀랍고도 추악했던 미스코리아', 2013년에는 '돈 주고 사는 미스코리아'라는 취재로 비리가 사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2010년 당시의 관련된 내용과 그 댓글들을 보면 참 답이 없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2018년에도 폭로가 나왔다.
미스코리아가 뽑혔다는 기사의 댓글에 많이 달리는 내용은 '저 얼굴로 어떻게 미스코리아 되었냐?', '요즘 왜 이렇게 인물들이 없어'등의 내용들이다. 즉 미스코리아 주제에 외모가 별로라는 평으로, 원인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위상이 점차 떨어짐과 동시에 지원자의 수준도 떨어지면서 미스가 아니라 미시 같은 지원자가 미스코리아가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대회 후 방송에 나온 미스코리아들이 걸그룹 멤버들의 미모보다 부족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의느님들이 일이 많아 바빠서 성형을 못 시켜준 게 아니냐" 악평까지 나온다. 왜냐하면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평가를 하기 때문... 비슷한 외모와 성형때문에 말이 많아지자 자체 인증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게다가 대회의 인지도가 갈수록 떨어지며 정말 미스코리아에 걸맞는 출중한 미모의 소유자들은 고생하며 2015년 대회부터 도입된 서바이벌 경연을 벌여야하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외면하고 바로 연예인쪽으로 도전하는 경우가 많아 양질의 참가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지고 있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인지도가 떨어지고 있고 미스코리아가 된다고해도 예전같은 인기나 존경을 얻기가 어렵기에 인재들의 참여욕구를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6.6. 원인
사실 이는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단체쪽에서 여성의 성상품화라는 이유로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을 벌여 공중파에서 생중계되던 미스코리아 대회를 케이블로 내쫓은게 가장 큰 원인이다.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으로 미스코리아나 미인대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고 공중파에서 쫓겨나 케이블에서 방송된 이후로는 관심도나 인기가 급하락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됐기에 그만큼 예전 수준만큼의 지원자도 모이지 않게 된 것. 공중파에 방송될때만 하더라도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생중계되던 날은 전가족이 같이 모여 시청하고 미스코리아 진은 방송계에 러브콜을 받아 단숨에 최고 인기 연예인이 되던 상황을 망친게 단순히 미스코리아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