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말고 어른이 그리운 사회(조용우)
"어른은 없고 꼰대만 가득한 시대,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경남 진주의 어느 한약방, 그곳에는 60년 동안 한약방을 지킨 한약사 김장하 선생이 있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도 인터뷰 한 번 하지 않고 많은 이들을 도우면서도 자신의 옷 한 벌 허투루 사지 않는 사람. 11월, 좋은 어른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김장하의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15일 개봉한 영화 <어른 김장하>의 홍보 문구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어른 김장하'는 MBC 경남의 방송 다큐멘터리가 큰 반향을 일으킨 뒤 이를 다시 영화로 개봉한 작품이다. 앞서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을 수상했고, 올해 최고 화제의 다큐멘터리로 떠올랐다.
영화는 '김장하'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 자체 보다 정신을 강조한 김장하 정신은 한마디로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라는 그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생물적 나이와 자기 세대의 경험에만 의존한 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는 위치가 높다는 이유로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른바 '꼰대'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어른 김장하'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우리 시대 어른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주고 있다.
사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무조건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어른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나이만 많아진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노인과 어른은 다르다. 아니 노인과 어른은 구분 되어야 한다. 구분해야 한다.
어른이란 오랜 연륜과 삶의 경험이 내적으로 갈무리되고 인격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으면서 삶의 지혜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즉 지혜로운 노인이 바로 어른이다. 어른은 오래된 마을공동체의 지도자, 즉 촌장 같은 사람이다. 마을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내 삶의 방향이 불투명할 때, 힘이 되고 헤쳐나갈 길을 제시하고 가르침을 주는 분이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며 공동체의 본이 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을 존경하고 따르며 또 그 현명함과 삶을 본받고 가르침을 배우고자 한다.
그러나 노인은 경우가 다르다. 인간이 내적 반성과 자기 검열 없이 나이를 먹으면 오히려 점점 더 욕망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자제해왔던 욕구와 불만이 가감없이 분출되기도하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예의와 염치도 희미해져버리고 결국에는 후안무치한 꼰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되면 나이가 벼슬이 되어 안하무인이 된다. 나이를 무기로 삼고 젊은 시절 당했던 것처럼 이제는 노인이 되어 똑같이 군림하려 든다. 이러한 노인을 바로 꼰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성찰이 더욱 중요하다. 노인이 되는 건 불가피하나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고 있지는 않은 지 자기 검열이 필요한 까닭이다.
‘화병(hwa-byung)’이라는 말을 세계정신의학용어로 등록시킨 뇌과학자 이시형 박사는 그의 책〈어른답게 삽시다〉에서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성찰에 충실해야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고 다양성도 받아들일 수 있다. 수년 전 향년 86세의 일기로 별세한 '우리 시대의 어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또한 언론 인터뷰나 강연을 통해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노인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며 어른의 역할이 부족한 노인세대에 대해 준열히 꾸짖은 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노인은 많지만 어른은 보기 드물다. 물론 생산력을 상실하고 육체적으로 늙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자본주의적 매카니즘 자체도 문제이지만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스스로 어른이 되지 못한 이유 또한 크다 하겠다.
물론 '나의 젊음이 나의 노력에 따른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이 나의 잘못에 의한 벌이 아님은' 자명하다. 하지만 한 살 나이를 더 먹었거든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야한다. 또 한 분 어른이셨던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그저 굵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젊음이 신선함을 항상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니다. 늙음이 원숙으로, 젊음이 청신함으로 되고 안되고는 그 세월을 안받침하고 있는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 여하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인 되기는 쉬워도 어른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른이 더욱 그립기도 하다.
[출처] [시사매거진 시사칼럼] 꼰대 말고 어른이 그리운 사회|작성자 조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