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처럼 사고, 쓰레기로 끝난다… 초저가 직구의 두 얼굴
테무는 제조부터 소비자까지의 유통 과정을 간소화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초저가 직구 플랫폼이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라는 슬로건처럼, 이용자는 몇천 원 수준의 가격으로 상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앱에 접속하자마자 룰렛이나 컵 뽑기처럼 파격적인 금액이 적힌 게임 창이 이용자를 반긴다. 이미 최고 금액 당첨이 예정된 뻔한 상술이라는 점은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화려한 폭죽과 함께 등장하는 '럭키 데이' 보상 안내와 촉박한 제한 시간을 마주하는 순간, 일단 받아두자는 심리가 이성을 앞지른다.
대학생 박모(23)씨는 “딱히 살 물건이 없어도 일단 앱을 켠다. 룰렛을 돌리고 무료 사은품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한다.
몇천 원이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 구조 속에서 소비자들은 품질이나 활용도보다 일단 구매해 보는 선택을 반복한다. 이러한 소비 방식 배경에는 플랫폼의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룰렛, 쿠폰 지급, 미니 게임과 같은 요소는 이용자가 쉽게 보상을 얻고 성취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장치이며, 이는 쇼핑을 단순한 구매가 아닌 참여형 놀이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앱 분석 플랫폼 Mobile Index에 따르면 2026년 4월 쇼핑 카테고리 신규 설치 순위에서 테무는 약 75만 건으로 1위를 기록했다. AliExpress 역시 상위권을 유지하며 초저가 직구 플랫폼의 확산을 보여준다.
문제는 저가 플랫폼 확산에 대한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TRASS)를 바탕으로 중국발 전자상거래 수입 건수와 금액 흐름을 비교한 결과, 소액 다건 구매 경향이 드러났다.
알리·테무 등 초저가 플랫폼이 국내 시장을 본격 공습하기 전인 2022년, 중국 직구의 건당 평균 단가는 약 50.1달러였다. 하지만 플랫폼 간 경쟁이 격화된 2024년에는 29.7달러까지 급락했고, 2025년 역시 28달러 선에 머물며2년 만에 구매 단가가 사실상 반 토막 난 셈이다. 반면 수입 건수는 2022년 870만 건에서 2025년 3,221만 건으로 약 3.7배 폭증하며, 신중한 소비 대신 저가 물품을 게임하듯 구매하는 실태를 뒷받침했다.
이러한 소비 변화 뒤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행동 유도 구조가 작동한다. 행동과학자 B. J. Fogg는 인간의 행동이 동기(Motivation), 자극(Trigger), 실행의 용이성(Ability)이 결합할 때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초저가 플랫폼은 낮은 가격으로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카운트다운 타이머'로 자극하며, '간편 결제'로 실행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다.
이러한 구조가 효과를 발휘하는 배경에는 최근 소비 트렌드로 언급되는 ‘필코노미(Fill-conomy)’적 심리도 맞물린다. 이는 일상의 공허함이나 결핍을 소비로 채우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물건의 실제 효용보다 장바구니를 채우고 결제를 완료하는 순간의 만족감에 더 의미를 두는 것이다. 플랫폼의 보상 구조는 이러한 심리는 자극하며, 소비자가 필요에 의해 구매하기보다 감정적 충족을 위해 반복적으로 결제하도록 만드는 환경을 강화한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의 끝이 쉬운 폐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과거 테무는 제품 회수 비용이 물건값보다 비싼 탓에, 통상 14달러(약 2만 원) 이하의 상품은 반품 절차 없이 즉시 환불해 주는 파격적인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최근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제는 단돈 몇 천 원짜리 물건도 무조건 반품을 보내야 환불이 된다'는 경험담이 나오고있다. 플랫폼이 무상 환불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이 까다로워졌음에도 소비자에게 반품은 여전히 무의미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반품 배송비는 약 2,500원 내외지만, 초저가 상품 구매자들에게는 이마저도 문턱이 높다. 예를 들어 3,000원짜리 티셔츠 한 장을 반품하기 위해 포장과 접수의 번거로움을 견디고 배송비까지 내고 나면, 실제 환불받는 금액은 단돈 50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용자는 반품 대신 그냥 버리기를 택하게 된다. 생산부터 배송, 그리고 폐기까지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은 저렴한 가격표 뒤에 교묘히 가려져 있다.
이러한 탓인지 국내 폐의류 건수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이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 ’폐의류의 국내 재활용 체계 구축 방안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의류 쓰레기는 연간 80만 톤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의류 폐기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의류 재사용 문화를 주도하는 환경 단체, ‘다시입다연구소' 정주연 대표는 최근 소비 변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초저가 플랫폼 이용 증가를 지목했다. 정 대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테무나 저가 브랜드에서 구매 후 한 철 입고 버린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저가 의류는 내구성이 낮아 폐기로 이어지기 쉽고, 순간적인 만족을 위한 구매가 늘어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대표는 “현재는 폐의류가 해외로 수출되며 처리되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 수입 제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수출이 막힐 경우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물량이 급증해 더 큰 환경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정 대표는 "불필요한 구매를 줄이고 중고 의류나 수선을 통해 사용 기간을 늘리는 소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쇼핑이 개인의 필요에 기반한 능동적 선택이었다면, 이제는 플랫폼이 설계한 환경 속에서 보상에 반응하는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장바구니에 담은 것이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아니면 잠시 머물다 쓰레기가 될 가짜 만족감인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첫댓글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님과 인터뷰 날짜를 조율하느라 수정본을 말씀드린 날보다 늦게 올리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