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레
한준수
소금물 같은 세월은 흘렀다. 8월 15일, 해방이 되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서울서 큰형 식구가 내려왔다. 첫아들을 안고 온 형수는 천사처럼 보였다. 뒤란에서 익어가는 능금을 따다 주면 참 맛있게 먹었다.
형님은 말했다. 이젠 해방이 되었으니 잘 살게 되었다며 사업 자금이 필요하니 집을 팔아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드디어 아들 덕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집을 선뜻 팔아 주었다. 세 식구는 서울로 먼저 올라갔다. 나머지 우리 네 식구는 외상 술값을 받아서 좀 늦게 올라왔다.
서울역으로 마중 나온 형님 몰골이 초췌하고 어딘지 빈티가 흘렀다. 형님이 양복에 넥타이를 한 사장님이길 바랐었다. 하지만 내 몸이 절망의 늪으로 곤두박질쳐 들어가는 듯했다. 해방도 되었고 형님이 사업을 잘하면,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어머니도 낙담과 충격으로 우시면서 큰아들을 마구 꾸지람하셨다.
형님이 살고 있던 집은 서울 서부역 맞은편 마포구 서계동이었다. 대문이 좁아 내가 걸머진 이불 보따리도 모로 집어넣어야 들어갔다. 그래도 형님 집이려니 했는데, 아니었고, 좁은 건넌방에 세를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탄식의 나날이었고, 형님은 도박으로 잃은 돈을 만회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작은누나는 작은형이 밥만 얻어먹고 있는 영천 제사공으로 갔다. 나는 식구들 끼닛거리를 보태기 위해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시장 바닥에서는 부서진 사과 궤짝을 줍고, 남산으로 가서는 소나무 삭정이를 꺾었다. 그래야만 콩비지라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너 오늘 우리 학교에 왜 왔니?”
안집 소녀가 묻는 말이었다. 내가 여학생 교실을 들여다볼 때 내 얼굴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너희들 공부하는 모습이 부러워 보러 갔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얼굴만 붉히고 있는데 소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너 공부하고 싶지 않니? 나랑 같이 공부할래?”
나는 고개로 대답했다. 소녀는 연필과 공책을 들고 마루로 나왔다.
“너 글을 어디까지 아니?”하고 물었다. 글을 배운 적이없으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그러지 말고 한글 기초부터 배워보자.”
국민학교 4학년 순자는 공책에다 ‘ㄱ’에서부터 ‘ㅎ’까지 쓰더니 저를 따라 해보라고 했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따라서 했다. 연필을 손에 쥐어주면서 써보라고 했다. 글자 밑에 그대로 그려나갔다. 몇 번을 반복시켰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ㅏ’에서부터 ‘ㅣ’까지 쓰곤 다시 연필을 넘겨주었다. 그것도 여남은 번 반복한 후 그대로 그리고 외울 수도 있었다. 다음은 글자와 받침을 가르쳐주었다. 그다음엔 내 이름을 써보라고 했다. ‘한준수’를 썼다. 소녀는 감탄사를 터뜨리며 저네 방에 대고 소리쳤다.
“엄마, 엄마! 얘는 천잰가봐. 몇 번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한글 모음과 자음을 다 배우고 제 이름까지 쓸 줄 알지 뭐야.”
그 애는 기쁨을 참지 못했다. 제 실력으로 문맹아 한 명을 눈뜨게 했다는 자부심과 우쭐한 기분인 듯했다. 나의 첫 번째 선생님 ‘순자’는 시간이 나는 대로 정성껏 나를 가르쳤다. 까다로운 맞춤법을 빼고는 한글을 거의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맹인이어서 집안일을 잘 못했다. 나는 소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공동 수돗물 길어오는 일을 대신해주든가 굵은 장작을 잘게 쪼개주는 일도 다 맡아 해주었다.
소녀네 세 식구는 절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서울역 앞 큰 교회를 다녔는데, 일요일마다 나를 데리고 갔다. 구호물자가 나온 날이면 나에게 맞을 만한 옷이나 신발을 골라내느라 소녀는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어느 일요일인가, 나하고 둘이서만 교회에서 먼저 나가자고 했다. 서울역 파출소 앞 길가의 염천교 건너 길가에는 수구레 파는 아줌마들이 옆으로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염천교를 건넜다. 소녀가 갑자기 수구레 파는 아줌마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 수구레 이 원어치 주세요.”
수구레 접시를 받아 나에게 주면서 혼자 다 먹으라고 했다. 콧날이 찌릿했다. 그때까지 공복인 것은 저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미군 트럭이 지나가며 시꺼먼 먼지를 일으켰다. 아줌마들은 수구레 양푼을 보자기로 덮었다. 소녀는 분홍 손수건을 얼른 꺼내어 내가 들고 앉은 수구레 접시에 씌워주었다. 목이 메어 수구레를 빨리 먹을 수가 없었다.
소녀는 쥐고 있던 빨간 지갑을 열었다. 하얀 잠금 구슬이 햇빛에 빤짝 빛났다. 종이돈 두 장을 꺼내서 아줌마에게 주었다.
*수구레: 소의 가죽에 달라붙어 있는 아교질의 살. 배고프던 시절, 서민들이 살코기 대신 먹던 음식
첫댓글 감동과 연민의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이
한편의 귀한 수필로 탄생하였군요.
'수구레'도 알게되었구요.
준빠님의 글은 언제나 콧등이 시립니다.
하지만 온기와 감동의 햇살도 언제나 같이 합니다.
그 소녀도 세월조차 비껴간 준빠님의 순수한 영혼을 닮았네요.
아름다운 글, 올려주신 이혜연선생님, 감사합니다.
어휴~!
준빠님, 나를 또 울리시네요.~!!!
이런 글 쓸 수 있는 사람은 준빠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수구레'를 얻어먹던 소년이 이런 훌륭한 작가가 됐다는 의외성~!!!
그리고 전쟁통에 바닥 인생을 몸소 겪으신 일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쓸 수있다는 용기입니다.
준빠님의 진솔함을 익히 잘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준빠님의 수필집을 다시 들춰봐야 겠네요.
준빠님, 화이팅~!
찡하네요. 8.15 때 그러셨다면 인생 대선배시겠는데...그 험난한 시기를... 우리들 지난날도 다시금 떠오릅니다. 건안하시길 ..
부실한 글을 올려 주신 이혜연 샘도 고맙고, 댓글로 찬양해 주신 님들도 매우 고맙습니다.
미군정에 때러서 주한 미군용 차량도 지나다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