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군청 앞과 시가지(1966년).
초가지붕과 개량지붕이 반쯤 섞여있다.
농업은행 장성지점 모습(1945년).현재의 농업협동조합의 전신.
백양사 입구 전경. 양옆으로 법계비(琺界碑)가 세워져 있다(1970년대 후반).
국립공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법계비에서 백양사 안쪽으로 늘어서 있던 상가를 현재의 위치 백양사 입구쪽으로 옮겼다.
도로 확포장사업(1970 ∼ 1973).
이를 계기로 도로의 기능과 활용도가 크게 강화되었다.
역전 남 사거리에 있던 금강당 서점.
역전 남 사거리에 있던 금강당 서점. 장성최초의 서점이었다.(1960년)
월평 초등학교 운동회 모습과 제식훈련 사열장면.
청군과 백군을 가리키는 머리끈을 질끈 동여메고, 당목으로 만든 반바지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다
(일제시대).
월평초등학교 전경.
선산초등학교에 이어 우리 고장에서는 두 번째로 건립된 교육기관이었다.
일본의 목화 공출 장면(1940년).
공출된 목화는 영광 법성포로 옮겨져 일본에 전해졌다. 건물 중앙에 벽보판이 보인다.
장성읍 성산공원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본 모습(1960년).
옛날 오산현과 진원현이 합해져 지금의 장성현이 되었다.당시 원님이 살던 현터가 바로 이곳이었다.
장성 공립농업 학교 전경.
현재의 장성실업고등학교(1941년경).
장성읍과 서삼면을 연결해주던 배(1960년대 이전).
처음에는 강의 양쪽을 굵은 줄로 연결하고, 그 줄을 잡고 강을 건넜으나,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노를 저어 강을 건너게 되었다. 배삯은 보리나 나락 1가마씩 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지불하였다.
장성 중앙초등학교 아래에 위치한 장성 천주교회의 모습(1937년).
원안의 사진은 장성 최초 신부인 지(地, B.Geraagbty)신부.
최초의 장성 역사 모습(1914년).
대전을 기점으로 했을 때 163.8 km에 이르는 단선이었으며 1987년에야 복선이 되었다
첫댓글 참말로 귀한 사진이네 잉 ~~
대단허이 ~ 고등학교. 강을건너다니는배.역전은 알것같네 !
금강당서점 ...초딩때는 영근이네 어린이 상점만 들다니다가 금강당서점에 완전정복 참고서사러 처음 들어간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