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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도발사(史)
쏘주 한 잔에 서행 운전이니 아무 걱정이든 내려놓으십시오. 작년부터 탑승자 음주운전 책임시스템이 생겼으니 형님께서 공모자가 안 되도록 온몸으로 조심합니닷. 솔직히 경찰도 없어요. 비도 부슬부슬 내리지만 걔네들도 등허리 붙여야 내일 정상 근무할 거 아니우? 심약한 분 태웠으니 조심조심.
술이요? 열다섯 살 때 처음 접했으니 사춘기 음주 도둑질이지요. 옛날엔 환갑잔치나 초상집이 마을 잔치였잖수? 환갑집 마당에 포장 쳐놓고 주전자 막걸리에 주로 돼지비계를 김치에 싸서 먹었는데 촌동네에서 그때 아니면 육고기로 목구멍 때 벗기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었던가요? 노름꾼 봉구 아저씨가 길바닥에 던지고 간 걸 중딩 셋이서 주워 먹은 거지요.
우리 고향은 격렬비열도에서 가장 가까운 서해바다 근방이라 해산물이 풍부했던 거요. 그렇죠. 자식들 중학교 진학은 못 시켜도 일꾼들 모내기 품앗이에서 갑오징어나 꽃게무침은 흔하게 먹었으니, 요즘 물가 기준으론 이해를 못할 계산인데, 상황이 달라요. 냉동고가 없던 시대이고 서해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대처까지 운반할 교통량이 전혀 안 되니 갯마을에서 빠른 시간 내에 자체 소화를 시키지 못하면 죄다 썩으니까 값싸게 유통된 거유. 계란 구경은 못해도 생선은 실컷 먹었어요,
중학교 때 마을 갑부 양조장 할배가 죽자 동네 농투성이들이.
‘대갓집 떡고리 쓰러졌다.’
투전판 깔아놓고 초상집 밤새미 술 파티를 싱글벙글 친 거지요. 그런데 대밭집 봉구아저씨가 과방에서 쏘주 댓병을 몰래 훔쳐 당신 집에 가져가려고 밤길 걷다가 똥이 마려우니까 길바닥에 놓고 억새밭 들어가서 허리띠 푼 거요. 그 다음 ‘어허, 시원하다.’며 깜빡 그냥 놓고 집으로 갔는데 하굣길 중딩들에게 쏘주 댓병이 발견된 거예요.
겨우 코밑수염이 거무스레 나기 시작한 덕규가,
‘마시자. 한 잔의 술을.’
나머지 두 놈 끌고 짚누리에 퍼질러 앉는 거요. 박박대가리 셋이서 도시락 뚜껑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으니 겁대가리 없던 청춘이지. 반찬그릇에 남은 짠지 조각 몇 개를 안주로 씹다보니 머리가 혼미해지는데.
‘아항, 어른들이 이 기분으로 술을 마시는구나’
술맛을 처음 맛본 그날은 박살났지요. 질풍노도 세 놈 모두 논두렁 짚토매에 쓰러져 꾸역꾸역 토하다가 집으로 몰래 숨어들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원래.
‘어디 아프냐?’
말 한 마디 묻지 않는 무사태평이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니까 또 마시고 싶어지니 그 사건이 술꾼 입문 시발점이 되었다가 그 후 수십 년 연장이 된 거지요. 박정희 시대 통일벼가 막 나올 때쯤부터 지금 ‘조국 대전’이 벌어진 문재인 정권 때까지 주구장창 퍼마신 거니 40년 캐리어지요. 형님은 범생이 출생이라 스물두 살 때까지는 입도 안 대다가 제대 후 늦깎이로 배워 초로까지 주태백이시라매요? 일찍 배운 놈이나 늦게 배운 사람이나 기실 알콜 축적 분량이 똑같은 거지요. 물리학에서 등장하는 총량불변의 법칙.
싸움도 좀 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주먹 이짱이었어요. 일짱은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고 키도 반 뼘은 컸는데 둘이 서로 경계하느라고 실제로 붙지는 않고 빙빙 돌면서 웬만하면 못 본 척 무사히 졸업을 했어요. 근데 걔가 가난해서 중학교를 안 들어가니까 내가 면소재지 신작로 출신 중에서는 자동 일짱이 되었지요. 문제는 울타리 하나에 대장 호랑이 두 마리가 살 수 없잖아요. 타동 초등학교 출신들과 일짱 자리를 놓고 서열을 가리는 벼랑끝 상황이 된 겁니다. 하필 사춘기가 남들보다 한두 해 늦게 오는 바람에 키가 안 크는데 이 자식들 고추에 털 나면서 개학만 되면 훌쩍훌쩍 불은 몸으로 ‘한판 붙자’ 도전장 디미니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대결.
한 달에 대여섯 차례 맞장을 트는 게 힘이 들어 날마다 일기장에,
‘제발 키 좀 크게 해주세요. 한 뼘만 크면 아무도 못 덤빕니다.’
기도문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습디다. 아무튼 중3때 155센티의 단신으로 170이 훨씬 넘는 타동 아이들과 맞장을 트다 보니 나중에는 이력이 붙어 싸움판이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비닐하우스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 교무실에 무릎 꿇고 있으면 지나가던 선생님들이 출석부로 툭툭 건드리는데, 그때 수학선생 이름도 안 잊어요, 엄덕배 씨가.
‘길태, 저 새낀 나중에 조폭이 될 거여. 50원 건다.’
이랬다니깐요. 육영수 여사가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에 맞던 그해였으니 44년 전이우.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늦게 사춘기가 오면서 갑자기 일 년에 10센티씩 두어 번 커버리니까 세상에 무서운 게 없습디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 지나가다가도 그냥 누군가를 어깨로 툭툭 건드리고 싶은 거요. 그래서일까, 지금도 질풍노도들이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싸우는 걸 보면 나는 ‘좋다. 건강하게만 커라’ 하며 관대해집니다.
잠깐만요. 신호대기니 멈추고 창문 좀 열겠습니다. 어느새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가시고 초가을 날씨네요. 낮에는 형님이 좋아하는 문장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맑고 청량한 초가을 햇살’이더니 어느새 썩은새 같은 어둠이 덮였네요. 그래요. 30년 전만 해도 검문이 엉성하고 부드러웠지요. 이차구차 봐주기도 하던.
첫 번째 검문 탈출이 92년도 말이니, 아스팔트 중앙경계선이 두세 개로 보일 때까지 퍼마셔도 당연히 운전대를 잡던 시국이지요. 그때만 해도 순경들이 운전자에 대한 인정도 남아있어서 소위 인간적 유도리도 있던 시절이오.
시장통에서 내 친구 김윤석이 부르는 거예요. 옥천 출신 군대 고참인데 내가 대학 졸업 후 입대했으니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이 동네에서 다시 만난 케이스이지요. 92년 12월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던 그해 겨울 제가 공무원 선거 개표원으로 차출되었는데 그 친구는 교사 개표원으로 와서 제대 이후 처음 조우했지요. 군대 고참 계급장과 나이를 서로 하나씩 까부시면서 그냥 친구로 트고 지내는 중이지요. 그 후 가끔 만났어요.
공주에서 선생 하던 그가 출장차 놀뫼에 왔다가 마침 시간이 남으니까 혼자 관촉사 어디쯤 빙빙 돌다가 나를 떠올린 거지요. 공무원 퇴근이 여섯 시인데 그날은 다섯 시에 나왔으니 술청 시간으론 조금 빠르다 할까? 그 예비역 병장은 특공대 출신답게 체력 하나는 끝내줬지만 술을 전혀 못해요, 덩치와 알콜 분해 능력은 완전히 별개인 거 아시죠? 아무튼 술을 못해도 벗들에게 자기 돈 들여 사주는 것을 좋아하는 흥부 같은 친구라오, 나는 독주는 약하지만 맥주는 무한정 스타일인데 그날은 이차구차 얘기하면서 5천CC 가량 마셨으니.
그래 빠이빠이 한 다음 집으로 오는데 어둑어둑 대교동 샛강 다리에서 검경 합동단속이 벌어진 거예요. 10미터 앞에서 도깨비불이 반짝반짝하니 빼도 박도 못하는 시추에이션! 그때 내 차는 빨간 색 프라이드 땡칠땡칠이우. 왜 있잖수, 뒤에 트렁크 없는 프라이드, 티코보다 쬐끔 더 큰 차 말이죠.
자동차 경주 때 티코가 일등을 하고 프라이드가 꼴찌를 했어요. 티코는 남들이 흉볼까봐 죽어라고 꽁지 빠지게 달려서 일등을 했고 프라이드는 ‘나는 티코가 아니야’라는 팩트를 증명하기 위해서 슬로우비디오로 달렸답니다. 그건 그렇고,
제복 입은 경찰이 프라이드를 세우는 거예요. 차문을 열자 술 냄새가 바깥으로 진동하니까 자, 내리시우, 하더니 일단 차 키를 빼앗데요.
‘선생님 약주 하셨나요?’
그냥 걔네들이 통상적으로 부르는 호칭인데 나는 굳이 선생님이 아니라 시청 공무원이라고 밝히고 싶은 걸 일단 참았지요. 곧바로 음주측정기를 붙이더라구요. 앞에 대여섯 명이 음주측정 대기 중인데 이거 큰일이네요, 시키는 대로 불었다가는 100프로 걸릴 게 뻔하고. 그래서 일단.
‘차 키를 주세요.’
‘왜요?’
‘차에 귀중품이 있는데 잃어버리면 나중에 책임질 꺼유?’
갸우뚱거리며 줍디다. 받자마자 그대로 무궁화 예식장 뒷골목으로 튀었어요. 뒤에서 ‘잡아라’ 소리가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부여행 외곽으로 사타구니에서 방울소리 나도록 정신없이 토꼈으니……그때만 해도 100미터 13초 이내였으니 잘 달리는 노루발이었지요. 휙 돌아보니 어둑어둑한 제방에서 나보다 커다란 제복의 덩치 하나가 여전히 따라옵디다.
그런데 1킬로 이상 달렸는데 추적자와의 거리 차이가 도대체 벌어지질 않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제방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공사판입디다. 더 이상 기력이 없어서 판자때기 옆에서 흐물흐물 주저앉았지요. 그렇게 늘어지려는 순간 내 앞으로 무슨 물체 하나가 쿵 떨어지는 거예요. 아까 그 덩치 큰 경찰인데 글쎄 스물서너 살짜리 애송이 얼굴입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애송이 경찰복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었다’ 복창이 나오더라구요.
그가 내 허리띠를 잡는데 힘이 만만치 않아요. 물론 치고 박고 밀어붙이면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진짜 범죄가 될 수 있잖아요. 순간적으로 젊은 경찰에게 얼굴 조아리며 싹싹 빌었지요. 처음에는 그냥 쑈처럼 빌었는데 나중에는 진심으로 눈물까지 나는 거예요.
‘한번만 봐주시오, 헉허억. 나는 시청 공무원인데 여기서 끌려가면 우리 집이 망한다오, 보아하니 젊은 경찰 같은데 삼촌이라고 생각하고 한번만 봐주시오.’
그 친구도 헉헉 대면서 허리띠를 놓기에 다시 싹싹 빌며.
‘아내가 집을 나가서 노모 혼자 아기를 보고 있으니 여기서 끌려가서 파면이라도 당하면 내 인생은 끝장이니 제발 한 번만 봐주시오.’
거의 10분을 비니까 그 친구 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선생님, 저도 경찰복 입은 지 석 달밖에 안 되었어요.’
하는데, 엇, ‘살 수 있다.’ 하는 생각이 퍼뜩 스치데요. 그러더니.
‘저도 어머니와 둘이 사는데 우리 엄마는 아직 직장 다니는데요. 대전시청 다니지만 공무원은 아니구 화장실 청소하고 있어요. 근데 사모님은 어디 가시고 혼자예요. 정말 많이 힘 드시겠네요.’
사실은 둘째를 가져 친정에 쉬러간 건데 시치미 뚝 떼니까 이 친구가.
‘선생님. 그냥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얘기하면 봐줄 수도 있는데 아까 왜 도망을 가신 거예요.’
어둠 속 눈동자가 천사표로 반짝입디다. 그래서.
‘겁이 나서 뭐 그런 정황이 없었어. 미안해요. 동생.’
조아리는 순간. 저 언덕 위에서 라이트가 번쩍 하는 거예요. 뒤늦게 따라온 경찰 두 명이 후배 경찰이 안 보이니까 불안하고 궁금한 거지. 저 꼭대기 아카시아 울타리 속에서 불빛이 흔들리며.
‘어이 잡았어?’
목소리가 기차 화통처럼 큽디다. 이 젊은 경찰이 아주 잠깐 망설이는데,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거예요. 이제 이자가 ‘여기 잡았어요.’ 실토하면 음주검문 불응 도주자가 되어 공무수행 방해죄로 체포가 되는 거요, 그런데.
‘놓쳤어요.’
그 찰나 ‘아. 살았다’는 탄성을 간신히 참았어요. 어둠 컴컴한 아카시아 수풀에서 반딧불이 광채가 그리도 찬란합디다. 그가.
‘있다가 올라갈 테니 경위님, 먼저 가셔서 지구대에서 기다리세요. 네.’
위를 보며 손나팔로 소리치는데 엎드려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디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했지요.
승용차를 놓고 온 건 괜찮으냐구요. 물론 그 사람들도 주인이 누구인지 다 알아요. 그래도 위법으로 수집한 건 증거가 못됩니다. 사생활 방지법,
얼마 전 장관 청문회에서 국회의원 하나가 장관 후보 여식의 성적표를 공개했잖아요. 그런 게 개인정보 수집 위반이지요. 아따,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소리치며 후보를 혼 내키는데 오싹합디다. 다음날 그쪽 국회의원 아들이 음주운전 사고에 운전자 바꿔치기로 걸렸다고 매스컴에 뜨더구만요, 뒤집기 사건인데 후폭풍은 약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짜깁기 해보면 그날은 ‘제가 음주운전 안한 거’로 알리바이가 성립됩니다. 나는 그냥 차를 거기에 세우고 내린 것으로 기록이 남는 거예요. 딱 하나의 경우 수, 나를 잡았던 젊은 경찰이 지구대로 소환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가 통과시켰으니 면죄부지요. 그래요. 나는 그렇게 첫 음주검문을 살아났어요. 보통 사람은 음주검문 순간 오금이 서려 도망칠 엄두를 못 내지만 나는 사춘기 시절부터 날쌘돌이로 단련된 몸이지요.
나중 얘기지만 그 젊은 경찰이 그럽디다.
‘한 시 넘어서 우리가 철수하면 끌고 가세요. 나머지는 잘 얘기할게요. 선생님.’
하기에 그 조카뻘 경찰한데 허리를 70도로 숙여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아까 형님과 마시던 그 호프집에서 또 한 잔을 마셨어요. 한 시쯤 되었는데 비가 부슬부슬 옵디다. 그리고 경찰서에 전화했더니 면허증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 술기운에 ‘아니. 흘리면 어떻게 해요’ 냅다 핀잔할 뻔하다가 ‘아차, 면허증은 내가 잃어버린 거지’ 생각이 들어
‘아닙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중전화기에 꾸벅 인사를 했지요. 그거야 갱신하면 되는 거구요.
다음날 지구대에서 면허증도 찾았다는 전화가 와서 아내가 받았지요. 그 직원이 뭘 알고 있다는 듯,
‘아저씨한테 오라고 하면 안 올 테니까 아줌마가 와서 찾아가슈.’
아내가 박카스 들고 하나씩 돌리고 간신히 대서사의 종을 쳤다오. 92년도니까 김영란법은 당연히 없었고 핸드폰이나 삐삐도 없어서 공중전화로 소통하던 시절이고.
아이쿠, 저 자식은 트럭이 왜 갑자기 끼어들어. 간신히 피했네. 사고 나면 우리는 망가져도 저 인간은 보험처리하면 그뿐이지요. 심풀.
양아치들 세 놈하고 시비 붙은 무용담 하나.
발단은 유치해요. 지방대 입학 직후 춘삼월, 시장통 선술집 혼술 중 맞은편에서 마시던 양아치 세 놈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고 피차간에 눈빛이 밀리지 않은 게 시비의 이유이지요. 나는 취했을 때 상대방이 걸어오면 양보가 없거든요. 원래 양아치 싸움이 대개 그런 거지요. 왜 노려보느냐. 어깨를 부딪쳤느냐, 왜 시발, 나보다 키가 더 크냐, 따위로 목숨 건 활극을 벌이는 거지요. 객지라 타동 타는 것도 있구요. 자식들이 먼저.
‘백강으로 가자.’
‘근데 느들 양아치처럼 3대1로 붙을 거냐?’
양아치 소리는 듣기 싫었는지 수군수군하더니 두 놈은 백사장에 앉아있고 완죠니 장발족인 놈 하나가 대표로 나오더라구요. 딱 가늠해보니까 날렵하긴 한데 어깨가 좁아 근력이 약한 기골이데요. 날아오는 놈을 업어치기로 넘기고 올라타서 머리를 잡아당겼는데 으악, 머리카락이 통째로 홀라당 빠지더니 대머리가 번쩍 등장하는 거예요. 나도 깜짝 놀랐지만 알대가리를 들킨 그놈 표정이 더 가관입디다. 무슨 알몸 들킨 스무 살 처녀처럼 황망스런 표정 때문에 내가 더 당황했어요. 몇 대 갈기려다가 그만 멈추고 싶어서.
‘친구들, 타협을 하자. 느네도 쪽수가 많은데 그냥 맞기만 하면 체면이 상할 테니 한 놈 당 한 대씩만 때려라. 그걸로 끝내자. 오케이?’
놈들도 고개를 끄떡여서 무방비 자세로 각자 한 방씩 세 대를 맞아주었어요. 구경꾼 두 놈은 복부와 가슴을 때려서 견딜 만했는데 가발족 그놈이 ‘시방 시키’하면서 얼굴에 날렸어요. 맞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화해주에 취해 하숙집에 돌아와 거울 보니까 뚱뚱 부어있습디다. 그놈들은 나중에 시장 골목에서 만나 손도 흔들어줬으니 뒤끝은 없어요.
깜빡 신호를 놓쳤으니 또 3분 대기네요. 어때요? 휘황하지요? 형님이, 원숭이띠니까 병신년생, 그때만 해도 시골에선 50프로가 국졸이라고 했지요. 내가 소띠니까 5년 차이인데 우리 친구들은 거의 고졸 이상이나 그 사이에 국민 소득이 확 오른 건가요. 6.25 직후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70불이었는데 열배면 700불 100배면 7000불 지금은 2만8천불이니 300배 성장했다는 게 참.
자, 두 번째 음주 검문 사연이요. 무신아파트에 살 때니까 94년도 얘기고 그때만 해도 내가 서른 초입이니 펄펄할 때 얘기지요.
옆동 복희 후배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 여자가 아니라 남자 이름입니다. 그도 축협에 다니는데 아들 두 놈 모두 공부 잘한다고 소문난 집이지요. 집사람 친정아버지 그러니까 복희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소식을 전한 건데 부여 양화면 어디쯤이라네요. 그때만 해도 장례식장에서 초상을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그냥 상갓집이지요. 내 차를 타고 옆 라인 구 선생과 문상을 다녀온 거요. 특이한 점은 부여에서는 상갓집에서 보신탕을 해줘요. 지금도 부여, 서천, 군산 근방은 상갓집 문상 온 손님들에게 보신탕을 접대하는 풍속이 있으니 초상집 개고기 맛이 별미이지요.
이차구차 빙 둘러 앉아 쏘주를 까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안 마시려고 빼다가 마침 복희 씨가 상복을 입은 채 권해서 한 잔 마셨어요. 술이란 게 그렇잖아요. 제 스타일은 아예 안 마시시면 잘 버티는데 일단 몇 잔 들이키면 음주 신경을 통제하지 못해요, 쏘주 석 잔에 맥주 한두 잔 마시다가 막걸리도 두 잔 더 마셨어요, 그걸 마시고 샛강 다리를 통과하려다가 찜찜해서 요리조리 머리를 굴렸는데 아이쿠, 하필 파출소 50미터 앞에서 딱 걸렸어요. 번쩍번쩍 도깨비 불빛을 빙빙 돌리는 거예요. 입에 대니까 당장 삐리삐리 소리가 나옵디다. 하차시키더니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 격리시킵디다. 그러니까 바깥 일차 측정에서는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느냐 안 했느냐 여부만 따지는 거고 파출소 안에서는 다시 정밀 기계로 세부적 혈중 알콜 농도를 측정하는 시스템이지요. 그땐 그랬어요.
아는 사람이 있나 없나, 굴려 봐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94년도이니까 그때 막 등장한 게 ‘삐삐’인데 그건 누가 전화를 걸었을 때 ‘삐삐’ 소리를 내면서 상대방 전화가 찍히던 시스템일 뿐 이쪽에서 걸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지금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벨소리가 아니라 모두 ‘삐삐’ 소리로만 나니까 예닐곱 명이 함께 앉았다가도 삐삐 소리가 나면 저마다 동시에 주머니를 뒤져 ‘내 껀가?’ 확인하던 그 시절의 풍경이 순식간에 사라졌네요. 형님 친구 과학자 한 사람이 얘기했다면서요.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삐삐가 사라진다구요. 아닌 게 아니라 순식간에 핸드폰 세상으로 바뀌었지요,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가 감옥 생활 7년을 끝내고 바깥에 나오니 사람들이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고 하던데 지금은 기계 하나에 전화, 신문, 책자, 텔레비전, 사진기, 승용차나 기차 티켓까지 모두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세뱃돈 빼놓고는 종이돈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겠지요. 세뱃돈도 카드 결재나 계좌번호로 이체시키는 세상이 올 수도 있구요. 그건 그렇고.
내가 추레한 표정으로 끌려가니깐 잡아온 경찰관이 안 됐다 싶은 건지.
‘화장실에 가서 찬물 좀 마시고 오시우.’
배려해주는 바람에 두 바가지를 마시고 또 일부는 꾸역꾸역 게워내고 칫솔질로 톡톡 털며 나왔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대기실로 웬 초등학교 교무부장인가 하는 사람이 걸려들어 싱갱이하는 거예요. 내가 그 사람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해요. 김만철, 왜 있잖아요. 87년도인가, 북한에서 의사 직업을 가진 사람 김만철이.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고 싶다.’
배를 타고 탈북하며 절묘한 문장을 던졌잖아요. 마누라는 단추공장 노동자인데, 북한이란 나라가 묘합디다. 남편은 의사인데 아내는 노동자이니 우리나라와는 계급 구조가 다른 건가?
그해 초에 서울대 언어학과 2학년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죽었잖아요. 기억나지요?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그 말이 독재시국 속에서 민주화운동의 시금석이 되기도 했던 그 이름자이지요. 그래서 민주화의 외침이 노도처럼 일어나다가 김만철의 탈북 사건이 매스컴을 도배하면서 싸그리 잦아들 뻔했었어요, 세간에는 종철이가 종 쳐라’ 해서 잠들었던 민중 의식이 종을 치며 깨어나는데 김만철이 내려오면서 ‘(그)만 쳐라’해서 종을 그만쳤다는 막걸리 개그의 주인공 김만철이 동명이인으로 잡혀와 있던 거예요. 그 사람은 나보다 스무 살쯤 더 먹어 보이는 오십대 중반인데 경찰들과 반말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겁니다, ‘불어라’ ‘못 불겠다’ 옥신각신하더니 나중에는 당직자들이 열이 받으니까.
‘니까짓 게 무슨 선생이냐?’
멱살 잡고 흔드는데 버럭버럭 끝까지 측정기에 입을 대지 않는 거예요. 한 시간 가량 버텨주니 나한테는 그만큼 시간을 벌어준 거지. 나는 그 사이에 또 물 한 바가지 또 마시고 오글오글 씻어내니까 진짜로 상큼하게 깨는 기분입디다. 그때 경찰관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아저씨가 한번 불어 보쇼.’
내 입에 측정기를 대는 거예요. 그래서 ‘옛다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냅다 불었지요, 그러니까 경찰관이 김만철에게 반말 비스므리하게.
‘이것 봐, 이분은 자신 있으니까 떳떳하게 불잖아. 당신은 음주측정 거부로 상부로 넘기겠어.’
김만철의 허리띠를 잡더라구요, 나요? 내 수치는 처음 0.03에서 서서히 올라가 0.05까지 변하는데 그 경찰관이 김만철 한 놈만 죽이려고 작심을 했는지 거기서 스위치를 딱 끄는 거요. 그래서 훈방. 나는 넙죽 인사하고 ‘룰루랄라’ 나왔지요.
나중 얘기지만 김만철이란 선생은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여기서 걸리면 절대 안 될 것 같아 끝까지 버틴 거라는 후문이었어요, 그는 경찰서와 교육청에서 동시에 징계를 받아 영원히 승진을 하지 못하고 만년 평교사로 몇 년 버티다가 5년쯤 남기고 명퇴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통사정 하면 봐주던 시국이우.
저쪽 누런 황금빛 벌판이 보이지요. 거기가 황산벌, 계백장군이 결사대 5천을 거느리고 나당연합군 10만 대군과 맞붙었다는 그 격전의 벌판입니다. 우리 옛날에 배웠잖아요. 계백이 마지막 전투를 나가기 전에 아내와 자식들을 모아놓고.
‘적들에게 욕을 보이느니 차라리 아비의 칼을 받아라.’
그렇게 아내와 자식들의 목을 하나씩 치고 자신도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걸 초딩 역사시간에 배우면서 감동했었지요. 근데 15년 전인가, 영화 황산벌을 보니까 계백의 아내가 노발대발 펄펄 뛰는 거예요.
‘계백아, 싸우러 가면서 왜 멀쩡한 가족들 쌩목을 치고 가려느냐? 너 혼자 나가 싸워 죽든가 말든가 해라. 나는 죽기 싫다아.’
어린 자식들 감싸던 부인의 목이 댕그랑 날아갔지요. 위인전 얘기는 그냥 만든 스토리지요.
삼남 지방 홍주대학교 시인 곽 교수의 부고장 날아온 게 최근에는 가장 쇼킹한 사건이지요. 형님이 잘 아시잖아요. 창비에서도 시집이 나오고 검인정 교과서에도 실렸으니 어지간히 나가던 시인이었는데 깜빡 방심한 게 치명타지요. 그러니까 그 대학 법대 교수가 암으로 죽어서 거기 홍주의대 장례식장에 동료교수로 문상 갔다가 쏘주 두 병쯤 마셨다지요. 형님과 함께 마실 때도 그랬잖아요.
‘여긴 내 나와바리여. 지구대 소장도 나랑 가끔씩 쏘주 병 타고 달리는 후배라서 낚시코에 걸려도 빠져나올 수 있소. 걱정 마.’
여유 있게 운전대 몰더니 아차 하는 찰나에 승용차가 트럭 밑으로 들어간 거요. 흔히 영화에 나오듯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얼굴인데 가슴 아래로 피투성이가 되어 두 시간 뒤에 법대 교수하던 후배 장례식장 옆으로 안치되었지요. 어럽쇼, 표정이 왜 그래요. 괜한 말을 꺼냈나. 아, 세 번째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깜빡할 뻔했네.
그게 98년도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대권 4수로 골대 세입 직후니까 음주 단속이 쬐끔씩 강화되기 시작할 시점이오. 우리 테니스 동아리 멤버는 소방대원이 딱 한 명이고 나머지는 공무원과 교사들의 짬뽕이었는데 운동이 끝나면 으레 호프 한 잔씩 곁들이는 게 관행이었어요. 집에는 각자 모험 질주를 하든가 대리를 때리든가 알아서 하는 거지요. 요즘처럼 ‘나는 차 때문에 못해.’ 뒤로 빼는 건 여전히 비겁한 행태로 느껴지던 시절이지.
12시 이후는 음주단속을 안 하는 걸 알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파출소 앞을 통과하려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또 불빛이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걔네들도 검문 장소를 선택하잖아요. 일단 운전자들 가시권을 벗어난 모퉁이 꺾어진 장소를 택한 다음 퇴로를 차단해서 그물망 던지고 덫을 치는 거라구요. 나와 검문 장소까지의 거리는 15미터쯤 되었는데 일단 차를 멈추고 내렸어요. 내리자마자 도망치려고 했는데 이 자들이 먼저 바싹 붙어 벨트를 잡더라구요. 냅다 큰소리를 쳤으니 그런 똥배짱이 어디서 나왔는지.
‘놓으시우. 이걸 뭐 중범죄자 마냥 취급하우?’
그들이 벨트를 풀어주자마자 도망치려고 스퍼트 자세를 취하는데 덩치 큰 놈 하나가 목을 잡고 다리를 걸더라구요. 내가 재빨리 풀쩍 아시바리를 피하고 이번에는 진짜로 도망쳤어요. 죽어라고 뛰었어요. 두 명이 따라오다가 나중에 하나가 따라오더니 방향을 산속으로 옮기니까 안 따라옵니다. 그 사람들도 불안한 거예요. 자정이 넘어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산속까지 따라왔다가 자칫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근데 성님, 그때까진 몰랐어요. 30분 이상 허발나게 뛰다가 산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그제야 발바닥이 무지무지하게 아픈 겁니다. 알고 보니 구두가 벗겨진 맨발입디다.
쪼그리고 앉아 발발 떨며 가시를 빼내고 30분 후 살금살금 내려가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마누라가 난리 난 거예요.
‘걱정 마. 난 파출소 뒤쪽에 있는데 일단 당신이 여기 샛강교까지 와. 집에 가서 자다가 잡혀가면 골치 아파지니까 부창동까지 실어다 줘.
실제로 내 친구 재면이는 음주운전 후 도망까지는 잘 쳤는데 집에서 자다가 잡혀갔거든요. 그게 검문 불응에 도주가 되니 걔도 공무원이라 해임당할 처지였어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감봉으로 면했지만 숱한 돈 깨졌지요. 그도 옛날 얘기요. 요즘 같으면 뇌물도 안통하고 즉각 파면이우. 연금도 없어요.
언제부터였나, 음주 단속의 온정은 끝난 거 같아요. 물론 사람마다 체질상 알콜 분해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쏘주 한 병을 마시고 불어도 끄떡없는 경우도 있긴 해요. 내가 그 체질이고요. 암튼 처갓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수수꽃다리처럼 참한 우리 장모님이 부들부들 떨며.
‘김 서방 워째 그려. 평소에는 침착하고 든든해서 내가 사위 세 명 중 가장 믿는 사람인데 어째 그리 사고를 치나? 쟤는 뱃속에 애기가 들어있어서 놀래면 안 되는데.’
이튿날 내 발을 걸었던 인상 고약한 그 인간이 부르더라구요, 그런데 파출소가 아니라 횟집으로 오라는 거요. 시장통 초입 그 대가횟집 문을 열었더니 이미 거나하게 시켜놓고.
‘벌금은 300만원 플러스 다리 치료비에 정복 수선비까지 450 내시우.’
워낙 큰돈을 요구하니 순간 회 맛이 딱 떨어지는데, 그는 삐싯삐싯 웃으며.
‘회 맛 좋구만. 자연산이나 가두리나 맛은 똑 같은데 왜 인간들이 자연산, 자연산 떠드는지 당최 이유를 모르겠어.’
시간은 딱 이틀을 줍디다. 횟값을 치룬 이틀 후에 빈손으로 파출소에 들어갔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다리를 절룩거리는 거요. 아니, 어제는 멀쩡하다가 왜 이러지. 갸우뚱했어요. 다른 경찰도.
‘어, 우 순경, 왜 갑자기 절룩거리셔.’
헛웃음이 나옵디다. 아무튼 그가 나를 화장실 뒤로 끌고 가더니.
‘가져 오셨슈?’
‘아직 없는디유.‘
‘고발장 써야겠구나.’
겁을 주면서도 문서 꺼내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거요. 음주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몸이 아프다고 갑자기 엄살을 부리면서……뻔한 거 아뉴? 좋다. 맞불 작전을 작심했어요. 여차하면 진짜 재판까지 가려 했어요. 일단 얘네들이 서류를 다 지워놨기 때문에 음주 불응 도주의 증거가 없어요.
‘물귀신 작전으로 재판에 들어가면 같이 죽는 거지요?’
그랬더니 이 작자가, 얼굴이 확 변하면서.
‘좋소. 200으로 합시다.’
확 깎아주는 거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100짜리 한 장 딱 찔러주고.
‘이것밖에 없소. 알아서 하숏!’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더니 더 이상 잡지도 않는 거요. 스릴러 영화 ‘나쁜 놈들’ 스크린이 겹칩디다. 그리고 결심을 했어요. 다시는 음주운전으로 단돈 10원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세 번째 스토리 끝.
앞 유리 성애제거 좀 시키겠습니다. 잠깐이면 돼요. 오케이 잘 걷혔습니다. 습기는 찬바람으로 제거하는 게 제일 빨라요.
김한별 알지요? 우리 나이 친구 중에 한글 이름이라곤 걔 하나뿐인데 아버지가 국어 선생이라 그렇게 지었대요. ‘한별’ 이름을 한자어로 바꾸면 ‘일성’이라 그때 내가 술에 취해 ‘김일성 수령놈’ 하며 머리통 퉁퉁 건드려도 헤헤 사람 좋은 웃음만 터뜨리던 착한 친구 말요. 걔가 음주에 걸려 벌금 150에 면허취소 2년이 나왔잖아요. 그날은 마침 내가 차를 놓고 마셨으니 음주로는 평생 빠져나갈 팔자인가? 포장마차에서 각 두 병씩 해치웠는데 끝판에.
‘내가 데려다 줄게.’
우리 아파트 쪽으로 차를 모는 거예요. 걔네 집과 우리 집은 완전히 반대방향인데 하필 집 앞 골목길 음주검문에 딱 걸린 거요. 그냥 대뜸 불었는데 0,132이니 무식하게 나온 거지요. 그런데도 히히히 웃으며 내리니까 전경 애들도.
‘요상한 아저씨다, 당황도 안 하시고.’
하며 피차간에 여유 있게 징계와 벌금을 먹은 거지요.
‘아이, 수치가 이렇게 높은데 왜 이리 쌩쌩하슈.’
너털웃음 칠 때까지만 폼 났지만 깨질 건 다 깨졌어요. 그날 40만원씩 두 달째 부은 적금 통장 깨서 70은 내가 채워줬어요. 신기한 건. 집에 가서 가방을 놓고 내려와 보니 모두 철수했더라구요. 할당된 합동단속 숫자를 채웠으니 그만 퇴근하자며 모두 돌아갔으니 그게 도깨비단속이지요. 10분만 늦게 나왔으면 안 걸렸을 수도 있는데 그게 음주단속에 걸리라는 팔자니 재수가 없는 거지요.
네 번째 도바리 사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왜 단결이 잘 되는지 아시지요. 아파트 시공이 끝나자마자 입주민과 업체 측이 대판 싸움이 붙었는데 그 상황에서 주민들이 일치단결된 거요. 아무튼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나 겨우 나누는 정도로 쓰뭉하게 사는 다른 아파트와 달리 우리는 입주하자마자 시골동네처럼 살가운 이웃사촌이 되었어요. 자영업자도 몇몇 있긴 했지만 주로 공무원이나 보건소 그리고 교사들이 많아 수준이 비슷비슷해요.
206동 성태 씨가 바람을 넣어 버스를 대절하여 갑사까지 놀러갔지요. ‘춘마곡 추갑사’라고 봄은 마곡사 꽃구경이고 가을은 갑사 단풍놀이가 최곱니다. 계곡에 발 담그고 막걸리를 몇 잔 마셨는데 거기에 젊은 아줌마 몇 명이 오징어 땅콩도 건네주고 술도 따라주는데 몸에서 단팥빵 냄새도 풍겨 나오고 해서 뿅 취했어요. 생머리 여성동지 한 분이 ‘옵바’ ‘옵바’ 당길 때마다 은행잎이 막걸리잔으로 뚝뚝 떨어지며 분 냄새도 풍겨서 헬레레 하며 마셨어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헤룽헤룽 했는데 아파트까지 와서 갑자기 처갓집에 있는 마누라한테 가고 싶은 거예요.
골목길로 접어든 게 실책이지요. 음주시에는 대로를 통과하는 게 더 안전빵이거든요. 차량 통행이 많은 큰길에서는 검문하는 게 민원 소지가 많잖아요. 아무튼 도살장이 있는 청강리 샛길을 엉금엉금 가는데 아이쿠, 또 번쩍번쩍.
‘큰일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망이를 흔들며 길가에 대라는 신호를 합디다. 타성이 붙은 건지 웬 배짱인지 주차하는 척하다가 엑셀을 밟고 130 이상으로 홱 달렸지요.
사립 말뚝 박성균 선생한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술김에 모험심이 발동한 거지요. 그 사람이 그럽디다. 검문소에서 앳된 전경이 속도위반이라며 잡는데.
‘속도위반 아닌데요’
하니까 말하는 싸가지가.
‘오, 내 눈은 포경이 아닙니다. 내리시우.’
‘아니, 측정도 안 하면서 눈대중으로 무슨 속도위반입니까?’
‘내 맘이우.’
하며 장부를 꺼내기에.
‘그럼 나도 내 맘이야.’
홱 도망쳐서 성공한 적이 있다고 무용담을 낄낄댈 때 형님도 있었잖아요. 큰길에서 농로로 빠진 다음 반대방향 숲길로 삐뚤빼뚤 도망쳐서 성공했다고 합디다.
나도 그 생각으로 훽 밟았는데 백차 한 대가 전속력으로 쫓아오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이렇게 과속으로 달리다가 각도 하나만 빗나가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퍼뜩 듭디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고 등나무가든에 차를 반듯하게 받쳐놓고 강쪽 3미터 아래로 점프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이상하지요, 점프 동안 어렸을 때의 추억부터 고등학교 럭비공 시절까지 스크린이 쫘악 펼쳐지는 게 죽음의 예고편 같더라니까요. 어쨌든 논바닥에 쿵, 떨어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정신을 차리니까 강변 저쪽으로 불빛 몇 개가 반짝이는데 어디선가.
‘이 새끼 어디 갔지?’
‘특수부대 출신인가?’
두런두런 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고샅에 바짝 엎드려 있으니까 그들도 내려오지 않았어요. 아무튼 숨소리조차 죽은 듯 참았어요, 잡히면 음주 측정 거부에 공무집행 방해가 되고 혹시 욱하고 밀쳤다 하면 폭력이 추가되니까. 목숨 걸고 숨어있는 거지요. 나는 갈밭에 숨어 연신,
‘나는 도망친 게 아니다. 음주운전에 가책을 느껴 자성하는 마음으로 차를 세우고 집으로 걸어간 거다.’
연신 자기최면을 걸었더니 나중에는 내가 실제로 그런 것 같더라니까요.
고요, 고요한 어둠 속에서 갈대 소리만 서걱서걱 들리는 겁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갔나? 코스모스 향기로 콧구멍 간질이는 그 갈대밭에 두어 시간 가량 있었나 봐요. 슬쩍 쳐다보니 그들은 가고 없는데 내 차는 그대로 있더라구요. 갈대밭과 살살이꽃 헤쳐가며 살금살금 올라왔어요.
형님, 아시죠? 억새와 갈대의 차이. 몰라요? 그러니까 산에서 자라는 건 억새, 물에서 자라는 건 갈대요, 억새는 은빛이고 갈대는 갈빛이지요. 아, 그리고 코스모스의 우리말은 살살이꽃이라우,
천공리 문화마을에 후배 김복구가 마을 도서관을 하는 데, 거의 그 시대로는 최초의 마을 도서관 창립자 맞아요. 창문을 툭툭 치며.
‘복구 후배.’
‘뭐요? 이 밤중에 웬일이슈? 꾀죄죄해설라무니.’
‘목동 마누라 집까지 태워다 줘. 자초지종은 나중에.’
당연히 난리가 났지요. 마누라 왈 ‘당신이 유력한 용의자요, 도주자라나,’ 그래서 나는 지난 전과도 있고 장모님 눈치도 보이고 해서……아, 장모님요,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예요. 승용차로요. 도보로는 30분. 아무튼.
‘여보, 일단 등나무가든으로 가봅시다.’
어, 내 차가 여전히 잘 건재하고 있습디다. 아내가 앞장서고 나는 뒤에서 조심조심 징검다리 건너듯 차를 몰고 갔지요. 이튿날 직장으로 계속 전화가 오기에 아예 전화기를 꺼버렸어요. 핸드폰 사용자가 팍 늘어갈 때였지요.
결론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어요. 우리 과(科) 이준식 과장님한테 자초지종 얘기했더니.
‘그 파출소 차석이 내 친구야.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전화를 걸면서 나를 쳐다보는데 표정이 환해지더라구요. 내 사건을 근무일지에 적기 10초 직전으로 타이밍이 딱 맞은 거예요. 걔네들도 포위망 뚫린 것 일지에 적어놓으면 문책 받고 조사도 나오고 골치 아프니 아예 삭제해준 거예요. 그래서 내가.
‘과장님, 그 차석 양반과 함께 횟집에서 만납시다’
한 상 대접했는데 그 차석한테 애들 꾸짖듯 된통 야단맞았어요.
‘음주 도주는 완전히 범죄횻, 추격해서 잡으려다가 치고받고 싸우면 인명 피해도 우려되어 우리 애들이 부득불 참았지만 다시 한 번만 걸리면 그땐 즉시 수갑 채워 구속합니닷!’
나는 ‘니예니예’ 굽신대면서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야단을 맞고 나오니까 죄 값이라도 치룬 듯 심장이 뻥 뚫립디다. 횟값은 이준식 과장이 냈으니 그게 다 빚이지요. 아, 나중에 우리 고등학생 아들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니 그 차석이 참석했더라구요. 그때는 지서장으로 승진했드만요.
엥, 저기 또 도깨비 방망이네. 쏘주 딱 한 잔에 두 시간 지났으니 전혀 괜찮지만 대신 안전벨트 점검? 예스, 잘 매셨구만요.
‘경찰관님, 이리 대주세요. 자, 붑니다.’
멀쩡하죠? 형님. 기왕지사 무사통과 기념으로 가겟방 캔맥주 뚜껑이라도 몇 개 따야 하나.
‘급 브레이큿!’
아, 다행히 고라니가 죽지는 않았네요. 요새 밤길은 길짐승이 문제긴 한데 진짜 액땜이네요. 뭐요? 내려서 살피겠다구요. 그래요. 죽지 않았으면 119에 야생동물 사고 신고라도 합시다. 잠깐, 맞은편에 차량불빛 보이지요? 완전히 갓길 정차한 다음에 문을 여세요. 아직, 아직요.
강병철
소설집 『비늘눈』 『엄마의 장롱』 『초뻬이는 죽었다』 발간, 성장소설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 『토메이토와 포테이토』 발간, 시집 『유년일기』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꽃이 눈물이다』 『호모 중딩사피엔스』 『사랑해요 바보몽땅』 발간, 산문집 『선생님 울지 마세요』 『쓰뭉선생의 좌충우돌기』 『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 『작가의 객석』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 발간, 교육산문집 『넌, 아름다운 나비야』 『난, 너의 바람이고 싶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