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보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보면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 어떤 논란에 휩싸이는 지 웬만하면 다 알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의 박칼린도, 케이블 방송에서 이미 끝난 '슈스케'도 인터넷 기사 때문에 그나마 재방송을 통해 늦게나마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위대한 탄생'을 본방으로 보기로 했다.
자꾸 금요일 밤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가수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이 많은 줄 몰랐다. 모두 나름대로 노래도 잘 부르는 편이며 가창력 뛰어난 출연자도 많았다. 내 귀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물론 멘토라 불리는 심사위원들의 귀는 용서가 없어 더 놀라웠다. 다 잘 부르는 것 같은데 음정, 박자, 감정, 손동작, 시선처리까지 지적하는 것이다. 게다가 들어보지도 못했던 가요들이 모두 멜로디며 박자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고 어려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따라부르지도 못할 성 싶었다. 그 어려운 곡들을 감정을 넣어 멋있게 부르는 출연자들이 다 대견해 보였다.
그래도 탈락의 쓴 잔과 아쉬움의 눈물이 화면을 적셨다. 한 편의 드라마였다. 나를 더 열중하게 만든 것은 열한살짜리 꼬마 정인이였다. 새로 나기 시작한 앞니가 드문드문 대문짝만한데 되바라진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순진하고 어리숙한 얼굴이 우선 맘에 들었다. 그 아이의 청아하고도 꾸밈없는 목소리, 침착한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마치 박하사탕을 탁 깨무는 것처럼 달콤하고 청량한 느낌이었다.
서바이벌 게임인만치 정인이가 끝까지 살아남아 그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다. 정인이는 최후의 10인을 뽑을 때 탈락했다가 패자부활전에 나왔는데 또 탈락했다. 그래도 그 아이의 노래는 모두를 감동시켰다. 국민할매 김태원(이번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의 말,
'나는 나의 열한 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인이의 열한 살은 너무나 행복하게 기억될 것이다'
정말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쾌감을 맛보게 한다. 그 노래가 어떤 장르에 속하던 감동은 똑같다.
그런 류의 재미가 또 다른 프로 "나는 가수다" 를 보게 했다. 프로가수들의 대결이었다. 이름을 아는 가수, 노래도 들어본 가수, 생전 처음 보는 가수, 대체로 세 부류였고 프로들이니까 당연히 잘 부르겠지 싶었다. 선곡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것들이었으며 여간한 가창력 없이는 소화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놀라운 일은 계속되었다. 그 내로라 하는 가수들의 자세였다.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열창하는 것은 물론 다른 동료가수들의 노래를 경청하며 감탄하기도 하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처럼 탄식하기도 했다. 한 순간, 한 순간 보여주는 진지하면서도 초조한 모습들도 너무 뜻밖이었다. 그들이 혼신을 다해 노래할 때 청중석은 감동의 열기로 달아올랐고 그 감동이 선물한 희열로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가요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는데다 요즘 소위 아이돌 가수들의 뜻도 모를 가벼운 노래들에 질려 아예 관심도 없었다. 이번 MBC의 두 프로그램이 그런 나의 무지와 편견을 확실히 사라지게 해주었다. 장르가 대중가요일 뿐 작곡이나 편곡, 그리고 뛰어난 가수들의 가창력으로 볼 때 하나의 완성된 예술이었다.
예술의 궁극적 목적은 감동을 얼마나 주느냐에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가수다'는 나같은 문외한을 대중예술의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다. 내 실력으로는 오히려 서양의 가곡이나 우리 가곡은 부를 수 있어도 그 기기묘묘한 가요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멜로디의 변주, 정형화되지 않은 흐름, 박자 어느 것 하나도 쉽게 생각되지 않았다.
대중매체가 너무 보여주기와 인기에만 급급해 대중예술의 진가를 조금은 흐리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니아들이나, 아는 사람만 아는 좋은 곡들이 10대들을 겨냥한 가요의 홍수 속에 묻혀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취향이 너무 한쪽으로만 쏠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에 즐겨 듣고 부르던 가요들과는 그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따라 부르기도 힘들지만 나는 그들이 열창하던 그 이름모를 가요들이 좋아졌다. 어쩌면 그들이 불러서 좋은지도...
오랜 세월 노래와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한 곡 한 곡 갈고 닦아최선을 다해 자기것으로 만들어 처음인 것처럼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들을 보며 아, 글 쓰는 일도 다르지 않구나, 크게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첫댓글 이혜연 섯생님이 올리신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랬어요. '나는 가수다' 프로는 특이했지요. 하지만 나는 좀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본 문에서 말했듯이 그 일곱 명 가수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치 노래를 잘 불렀지요. 그런데 구태여
그 중에서 꼴지를 가려내기까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내가 느낀 아쉬움이었어요. 말하자면, 시청율을 높이기
위하여 어느 가수 한 명을 희생 시켰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미투, 옳으신 말씀..^^
그래서 탈락했어도 유감이 없었던 것이지요. 첫 탈락자 정엽의 말처럼 심판한 청중이 가수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 판단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심을 다해, 제 기량을 모두 발휘해 불렀으니 그것으로 부른 이도 들은 이도 만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남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첨단기계 덕분으로 조작된 음반을 발매하고 부족한 가창력을 춤이나 외모로 때우려는 요즘 가수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라 생각됩니다.
재방송까지 보았는데 김건모가 처음부터 당당하게 심사단의 평가(*이것이 결코 절대적인평가는 아니더라도)를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하는 아쉬움과 진행을 맡은 이소라가 자기가 좋아하는 선배가수의 탈락이라해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눈물까지 보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행동은 씁쓸한 뒷맛을 ..... 다른 가수가 탈락했으면 그랬을까??? 그래서 정엽이란 가수가 더 박수를 받는 것이겠지요.
나름대로 경지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으로 습관화 되었을 그들의 가수생활에 아마 큰 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서바이벌 게임 같은 프로에 나갈 수 없다며 화를 내는 기성가수들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당당히 나와서 겨루어 보려는 마음과 감히 우열을 가리려는 일에 자존심 상해 하는 마음, 어느 쪽이 맞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요. 모든 일에는 양면서이 있으니까요. 다시 시작한다니 기대됩니다.
아니, 방을 옮겼나? 접대 읽은 거잖아~!ㅎㅎㅎ
이혜연 선생님께서 이 방에 올려야 될 것 같다 하시더니 옮기셨기에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것은 내렸습니다. 두 번 읽게 해드려 죄송...
맞아요. 그래서 내 댓글에는 다음, 다음 번엔 순위가 골고루 정해질거란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비록 그 프로그램이 짜고치는 고스톱일 지라도 흥미 진진한 시청율이 높아지겠지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