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베개 이야기 - 안유환
고침단명(高枕短命)이란 말이 있다. 높은 베개가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말을 듣고 베개를 높이 베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침안면(高枕安眠)이란 말도 있다. 베개를 높이 베면 잠을 편안히 잘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잠을 이루지 못해 밤새 고통을 겪는 것보다 잠을 편히 잔다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또한 고침단면(高枕短眠)이란 말도 있다. 이는 베개를 높이 베면 잠을 오래자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말대로라면 똑같이 높은 베개를 베는데 하나는 숙면을 하고 하나는 불편한 잠을 잔다는 것이 된다. 그러고 보면 베개의 높고 낮음이 건강과 숙면의 기준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베개를 낮게 베는 것이 편안하고 어떤 이는 베개를 베지 않고도 잠을 잘 자는 사람도 있다. “신선은 종이 한 장을 베고 잔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베개는 낮을수록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때 이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기능성 베개 판매율이 작년과 같은 기간에 비해 60%대의 높은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요즘은 등산복이나 운동복에 기능성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의미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기능성이 좋다고 하면 땀을 잘 흡수하거나 발산시키는 기능을 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기능성 베개라고 하면 단지 베개의 역할을 하는 것 외에 잠을 잘 자게해주는 기능을 함께 하는 베개일 것으로 이해된다. 기능성이란 말이 요즘처럼 많이 쓰이기 전부터 나는 베개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곳저곳에서 사다놓은 기능성 베개만 해도 열 개는 넘을 것이다.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목침이다. 목침이란 옛날 할아버지들이 사랑방이나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식힐 때 즐겨 베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래전 서식(西式)건강법이 유행하고 있을 때 목침 같은 나무베개가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비슷한 베개를 구하고 싶었으나 마땅치 않았다. 언젠가 화명동에 새로 생긴 목욕탕에 갔을 때 깎아 만든 목침이 수면실에 비치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놓으면 평평한 목침이지만 뒤집어놓으면 뒤통수가 들어가도록 오목하게 깎은 모형이었다. 교회 노인대학 어르신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목욕시켜드리면서 그 목욕탕주인과도 인사한 적이 있었다. 나는 목욕탕 주인에게 부탁하여 1만원을 주고 그 목침 한 개를 사왔다. 잠시 허리를 펼 때나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을 때는 특히 좋았다. 며칠씩 여행할 때도 이 목침을 갖고 다니며 잘 사용했다.
또 하나는 대만 여행 때 사온 것으로 옥돌조각을 엮어 만든 베개이다. 머리의 피로를 쉬 풀어주고 숙면을 할 수 있다는 선전이 군침을 돌게 했다. 한창 옥 매트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옥이 인체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우리 돈 2만원정도를 주고 사온 옥 베개는 잠시 기분이 좋은 것 같았으나 조금만 오래 베고 있으면 불편해졌다.
베개에 대한 나의 관심은 상당히 오래 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다. 어느 초여름 1박2일 노회원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한 친구가 송광사 앞 기념품 집에서 향나무로 만들어진 베개를 사와서 건강에 좋은 것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때는 일행이 탄 차가 그곳을 떠나려던 참이었는데 나는 양해를 구하고 친구와 급히 달려가 그 베개를 사왔다. 단순한 목침보다는 신경을 써서 제작한 것이었다. 베고 있으면 짙은 향나무 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할 것 같았다. 베개 한쪽은 나무토막을 엮어 붙였고 다른 한쪽은 다듬은 돌조각을 엮어 만든 베개였다. 베개 측면에는 ‘건강한 삶의 지혜, 맥반석·게르마늄’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었다. 첫눈에 들었던 것과는 달리 높이도 맞지 않아 계속 쓸 수가 없었다. 구슬모양의 나무를 엮어 만든 베개도 있었는데 이사를 다니면서 버린 것 같다.
언젠가는 온천시장 앞길에서 아내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살구씨 베개를 2개 구입했다. 베개 길이는 30cm정도, 높이는 7~8cm정도 되는 자그만 크기로 황토색 누비 베를 잇으로 감았다. ‘온고을 황토’라는 라벨이 붙은 그 베개는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살구씨 부딪치는 소리가 지압효과와 함께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능성 베개는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 한 성도로부터 선물 받은 건강베개도 있다. 얇은 나무졸대를 붙여 만든 가벼운 베개로 내게는 높이가 맞지 않아 쓰기가 불편했다. 베개는 역시 높은 것보다는 낮은 것이 나의 체형에 맞는 모양이다. 이 베개는 누비 베갯잇을 손수 덮어씌워 꿰매고 내 책상의 발받침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능성 베개가 발등상의 기능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것으로는 라텍스 베개가 있다. 신학교 졸업30주년기념 선교대회를 2년 전 홍콩동신교회에서 개최할 때였다. 귀국하는 길에 스펀지 비슷한 라텍스 매트리스와 함께 베개를 구입했다. 납작하게 흰 천으로 싸인 건강베개는 적당한 높이에 부드러운 감촉인데도 왠지 불편하여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이 베개는 내 책상 의자의 허리를 바치는 대용쿠션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게르마늄 베개는 문을 열어놓는 때가 많은 요즘 바람에 문이 쾅, 닫히지 않도록 고정받침으로 쓰고 있다. 하나는 발등상으로, 하나는 쿠션으로, 또 하나는 문 고정받침으로-. 기능성 베개의 기능은 참으로 다양한 것 같다.
베개는 역시 메밀껍질을 넣은 전통적인 것이 좋아 보인다. 침대를 사용하고부터는 늘 사용하던 베개의 높이가 높게 느껴져 속에든 메밀껍질 3분의 1을 들어내니 내게 알맞았다. 몸이 약한 사람들이 보약이나 민간요법을 써보다가 ‘역시 밥이 보약’이라는 쪽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제는 기능성이 아닌 보통 베개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목 디스크·어깨 결림·수면장애·피로? 25억짜리 베개, 7일이면 고통 뚝!’ 이란 대형광고도 신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기능성 베개 광고가 오히려 불면의 밤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선들이 기능성 베개 광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아마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선들은 변함없이 오늘도 종이 한 장을 베고 단잠을 자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