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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나의 친구 신영복 선생님(4)(탁현민)
By 탁현민 | 2023년 6월 16일 | 미분류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지 않는다. 거기에는 대결과 갈등, 폭력과 무지의 상업적 언어만 나부끼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여전히,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주식이나 집값, 코인, 과학 기술의 혁신이 ‘나’를 힘들게 한다. 세기말도 아닌데 우울이 정서의 기조다. 가까운 심리치료 병의원은 환자들로 붐빈다. 버려진 느낌으로 살고 있는데 탁현민 작가가 신영복 선생을 모시고 왔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작은 기쁨에 인색하지 말고 큰 슬픔에 절망하지 맙시다.” 익숙한 선생님의 언어가 탁 작가를 통해 다시 들려온다. 8월 출간될 탁 작가의 신간 <사소한 추억의 힘> 원고 일부(70매)를 입수해 주말 식탁에 올린다. [편집자 주]
나무의 소망은 숲을 이루는 것
왜 그러한 시간을 내어주셨을까? 세월이 흐른 후 나 역시 누군가의 선생이 되었을 때 생각해 보니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주 시간을 내는 것도 그렇지만 비문투성이 글을 읽고 학생이 무엇을 고민하며 썼는지 헤아리고, 또 그에 따른 생각과 배경에 대해 말해주는 일은 상당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선생님을 좋아하며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셨으니 팬들도 많았고 학교 수업뿐 아니라 이런저런 강연 요청, 글씨 부탁에 무척 분주하셨을 무렵이었다.
그럼에도 거르지 않고 선생님은 나를 만나주셨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까지 해주신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선생님도 왜 그러셨는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자면 선생님 평생에 걸쳐 말씀하시던 ‘더불어 숲’의 철학, ‘나무의 소망은 한 그루 낙락장송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숲을 이루는 것’이라는 그 말씀의 작은 실천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매우 운이 좋았고 나만 좋았으면 싶었다. 어느 날 “혹시 주변에 글쓰기나 읽기를 좋아하는 다른 학생들이 있으면 몇 명 더 함께하는 것은 어때요?”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찾아보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학기 마지막 날까지 늘 혼자 연구실로 갔다. 실은 찾아보지도 않았지만 누군가 있었어도 아마 혼자 갔을 것이었다. 그렇게 내 대학 생활은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성장했던 시기였다. 다만 배우는 속도가 느리고 좋지 못한 머리 탓으로, 알려주신 것들을 제대로 깨치지 못한 늘 모자란 제자였다는 것이 지금도 안타까울 뿐이다.
1999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선생님은 새천년의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보시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시게 되었다. 또 자리를 비우시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곧 졸업인데….’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떠나기 며칠 전 연구실로 나를 부르셨다. “이제 곧 졸업인데 마지막 학기 잘 보내고 내 연구실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보내요.” 그러시며 연구실 키를 맡기셨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읽을 책을 좀 추천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책장에서 <논어>를 꺼내 주셨다. 왜 <논어>인지 미처 묻지 못했다. 선생님은 다시 긴 여행을 떠나셨다. 비어있는 연구실에서 마지막 한 학기 동안 틈틈이 <논어>를 읽었다. 하지만 매번 몇 장을 읽다 말았다. 결국 다 떼지 못했다. 선생님은 왜 <논어>를 읽었으면 하셨을까.
언젠가 선생님은 스승이란 큰 의미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각자가 놓여 있는 처지가 다른데 어떻게 스승이 배우고 익힌 것이 제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씀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스승은 목표가 될 수 없어요. 다만 참고될 뿐이에요. 그러니 (각자가) 부단히 새로운 길과 방법을 찾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선생님이 <논어>의 완독을 바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논어>를 통해 이전의 가르침을 참고로 삼고 결국에는 나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 매주 나의 글을 읽어주며, 논어를 권해주며 내 바깥의 껍질을 깨주신 것이 아닐까 싶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우는 소리를 내면, 어미가 밖에서 껍질을 쪼아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모든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줄(啐)과 탁(啄)은 동시(同時)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 ‘줄탁동시(啐啄同時)’
이듬해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한동안 헤매긴 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내게 연출과 기획이라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재능을 찾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도움도 있었고 운이 따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혼자 했던 많은 고민과 공부의 결과이기도 했다.
나는 약간의 성공과 그 평가 덕분에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위촉되었다. 첫 강의를 나가던 날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가 되신 선생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학교에 다닐 때도 하대는커녕 반말 한 번 하신 적이 없었는데, 선생이 되고 나니 그날부터 ‘탁 선생’이라 부르시며 반겨주셨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차도 내려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시며 정말 동료 교수처럼 대해 주셨다. 그 후 몇 해 동안 제자이자 동료 교수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혼할 때는 주례를 서주시고, 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시기도 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그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답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을 만나고 나면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분명해지곤 했다.
2012년 겨울에는 이명박 정부 언론 탄압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해 방송 3사 총파업이 있었다. MBC를 시작으로 KBS, YTN까지 동참한 파업이었다. 나는 3사 노조의 부탁을 받아 장충체육관과 여의도공원 등지에서 파업의 정당성과 언론자유를 위한 콘서트를 연출했다. 그 행사에서 각 방송사 노조원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여러 지식인의 메시지를 모아 영상으로 만들었다. 삼엄한 시대라 입바른 소리를 하던 많은 사람도 정부 눈치를 보다가 거절하거나 난처해했지만 선생님은 거절하지 않으시고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고통이 견디기 어려운 까닭은 그것을 혼자서 짐 져야 한다는 외로움 때문입니다.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인칭의 고독이 고통의 본질입니다.
여럿이 겪는 고통은 훨씬 가볍고, 여럿이 맞는 벌은 놀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처럼’
2012년 대선이 끝나고 나는 무척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은 박근혜 씨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내 앞에서 밀물처럼 다가오던 새로운 시대가 이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는 정치와 무관했다. 큰 관심도 없었고 정치판과 별다른 인연도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뒤 그의 추모 공연을 연출했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이후 박근혜 정권 문체부와 국정원의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랐다). 더 이상 상업적인 공연을 연출하기가 막연해진 그때, 문재인 당시 후보를 만났고 그에게 매료되어 18대 대선 선거운동을 나서서 도왔었다.
그 시절 확신에 찬 모습으로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때때로 엄습하는 불안감에 선생님께 여러 번 물었다.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까요? 민주주의는 종종 엉뚱한 선택을 하곤 하잖아요?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죠?” 그때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고 있어요. 세상은 언제나 앞으로 가지 않는 것 같지만 보다 넓게 멀리서 보면 분명히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어요.”
하지만 다들 기억하다시피 문재인 후보는 당시 대선에서 패배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엄존했고 선거로 승패는 갈렸으며 절망감은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
선거가 끝난 직후 따지듯 물었었다. “선생님 사람들이 다 알 거라면서요?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죠?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밉고 싫었다.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아예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더 이상 세상 돌아가는 일, 이전에 해왔던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로부터 멀어지기로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낚시를 했고 잡은 고기를 손질했고 그것을 먹었다. 하루의 전부가 그랬다. 누가 불러도 들은 척하지 않았고, 더 이상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또 몇 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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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고 있어요. 세상은 언제나 앞으로 가지 않는 것 같지만 보다 넓게 멀리서 보면 분명히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어요.”
이 말씀이 오늘 저에게도 위로가 되네요
모든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줄(啐)과 탁(啄)은 동시(同時)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 ‘줄탁동시(啐啄同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