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산에 가보세요. 북한산은 장대하게 펼쳐진 비봉능선을 따라 넘쳐나던 초록의 물결을 바햐흐로 거두려 하고 있네요. 벌써 노란 갈참나무잎과 불그스레 단풍나무잎이 제 차례를 못 참고 홍단(紅段) 났다 하고 소리지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멀찌기 서있던 산벚꽃이 어른스레 "임마, 홍단은 무슨 홍단, 기껏 풍약(楓藥) 해놓고서.." 공자께서 논어(論語) 옹야편(翁也篇)에서 말씀하셨나요. [子曰].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智者樂水],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 흐흐흐 공자님도 뭘 모르시는 것같애. 산에 있어 보세요. 얼마나 소란한지 흡사 장터 한 가운데서 장돌뱅이 장타령 듣는 것이 외려 견딜만 할 걸요.
계절이 바뀔 때면 활엽수와 침엽수가 싸우는 게 볼만해요. 여름에 들어서면서 연초록 보드랍던 활엽수들이 일제히 짓푸른 팔을 펼쳐들고 달려들던 기세에 주춤하던 침엽수는 이제야 주도권을 잡네 하고 바늘처럼 뾰죽한 잎들을 고추 세우던걸요. 갈참나무 떡갈나무와 더러는 당단풍이 끼어든 참나무 군락지인 삼각산 승가사 뒷마당에 즐비한 활엽수들이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요즈음 흘금흘금 가문비나무, 낙엽송, 침엽수 눈치 보는 일이 잦아지던군요. 곧장 나뭇잎을 떨구어야 하는 활엽수 신세가 새삼 을씨년스러운가 봐요. 세상 인심이 그래요. 여름내 기가 죽어 지내던 침엽수가 기지개를 켜고서 큼큼 기침하는 소리는 듣기에 역겹더라구요. 이제 지 세상이라고요.
저런 아기단풍은 어쩌나요? 온 산하를 덮치듯 넘쳐나는 젊음으로 늠름하던 갈참나무고 당단풍과 산벚꽃나무는 제 잎파리를 떨구고 기나긴 동면에 들어가야한다는 진리를 체득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가을바람이 며칠 더 불어오고 아침에 산 능선을 타고 찬 기운이 문안을 드릴 때면 영낙없이 침엽수 무리가 "방 빼! 임마 방 안빼고 뭣하고 있어" 소리를 지를거예요. 북한산이 떠들썩하도록. 올 겨울 나고 내년 봄이 무르익어갈 때면 외려 침엽수가 고개를 빼고 활엽수가 지르는 빵배란 소리를 못 들은 채 할 터이지만 오늘은 지가 왕이로소이다. 아직은 아직은 이르지요. 한 아름 달고 있던 초록 잎새와 하직인사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잖아요. 금새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밤새 덜덜 떨다 일어난 아침에는 기지게 펴는 몸이 남달리 뻐근해질 때가 떠나야할 때란 걸 알겠지요. 마침내 떠나가야 할 차례를 눈치 챈 나무는 한 아름 제 몸에 달고 지낸 무성한 나무잎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지요. "이젠 네가 떠나야 할 때가 왔단다" 철없는 일년초 주제에 잎파리들이 뭘 알겠어요. "제가 엄마 곁을 떠나 어디로 가야하는데요?" "멀리 떠나야는 건 아니고 내 발치에서 겨울을 보내야지" "겨울이 뭔 대요?" 기껏 봄 여름을 보내고만 이파리들이 뭘 알겠어요. 계속 물음표 달린 질문을 던지겠지요. "겨울이란 아주아주 무서운 놈이어서 엄마도 덜덜 떨뿐이란다. 시린 손과 발을 부비며 살려달라 빌어야한단다" "그렇게 무서운 놈인가요?" "그렇단다. 너는 내 발밑에서 숨어 있으렴" "그래도 난 싫어요. 엄마 곁을 떠나는 건 말도 안돼. 난 안 갈래요" "내 곁을 떠나서 멀리 가는 게 아니라는데도. 그저 내 발 밑에 숨어있을 뿐 나는 널 지켜볼텐데" "그래도 싫어. 그럼 내가 목 마를 때 누가 물을 주나요?" "넌 이제 목이 마를 일이 없단다. 그냥 길고 긴 잠만 잘 뿐이란다." "나 잠자는 것도 싫단말이야. 그냥 엄마하고 있을래" 철 없는 이파리는 그냥 때를 쓰면 뭐든 들어주던 엄마가 참 이상타하며 서서히 밀려드는 무서움에 울상이 되어갑니다. "얘야, 내가 널 아주 이쁜 새옷을 입혀줄테니 엄마 말 들으렴" "새~옷, 이뻐?" 철없는 아이를 달래면서 떡갈나무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옷을 지어 입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럼, 얼마나 이쁜데, 노랗고 빠알간 색을 물들여 줄게" 철없는 아이는 엄마랑 헤어져야 한다는 이별이 가까워 온 것도 모르고 눈물로 얼룩진 두 뺨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생글거리고 있습니다. 때때옷 입혀준다니까.
그런데 어쩌지요. 지 살붙이를 떼어내고 갈참나무든 졸참나무든 겨우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을게요. 혹여 산에 가서 지 살자고 피붙이를 색색들이 고운 물감들여 냉정하게 쫓아냈다고 행여나 말 마세요. 허투른 소리 함부러 했다가는 북한산 골짝마다 울울창창하게 키자랑하던 나무들 구경 못 할걸요. 아마 기자들이 이런 제목으로 기사를 뽑겠지요. '삼각산 떡갈나무 숲, 단체자살하다.' 못되먹은 등산객이 지 살자고 살붗이를 쫓아냈다고 삼각산 떡갈나무랑 단당풍을 흉보자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떴다고.
이렇듯 자연의 질서는 냉혹한 것이거늘. 와글와글 싸우는 소리만 탓하며 장터같이 소란한 산을 흉보기만 했네. 떡갈나무의 이별 연습을 들으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 산을 타박하다니. 삼각산을 오르내리더니 마침내 제가 어진 사람이 되어 하산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를 읊조려 봤습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라고요? 어쩌겠습니까. 막 득도하고 하산한 제가 촐삭거리며 대꾸를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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