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順伊), 벌레 우는 고풍(古風)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順伊), 포도 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호젓하구나.
<장만영의 ‘달 포도 잎사귀’ 전문>
화자가 부르는 ‘순이’는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기보다는 한국 여성의 이름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화자는 가을밤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문득 ‘순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것이다.
작품의 처음에 제시된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온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만물의 결실을 거두는 가을 밤,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는 달을 바라보면서,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고 생각해 본다.
화자는 주변의 풍경을 통해서 ‘동해바다 물처럼 / 푸른 / 가을 / 밤’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그리고 뜰에는 아마도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었던 듯, 달빛이 비친 포도를 바라보며 ‘포도는 달빛을 마시며 익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다시 ‘순이’를 부르며, ‘포도넝쿨 밑에 여린 잎새들이 / 달빛에 젖어 호젓’한 모습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마친다.
가을밤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뜰을 바라보며 주위의 사물들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하는 화자의 모습이 연상된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