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고, 또한 그것이 오로지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척도로 작용하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위치와 평수가 그 가치를 재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모반듯한 몰개성적인 아파트를 집으로 여기면서, 그것의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는 관점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건축물을 짓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건축가들과의 호응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들이 원하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부부인 이 책의 저자들은 ‘책머리에’ 붙인 글을 통해서 ‘여전히 집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밝히면서, ‘땅과 만나고 사람과 만나고 집을 그리는 건축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관점이 건축가로서 저자들을 신뢰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하겠으며, 더욱이 단순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나무처럼 자라는 집>에 대한 생각을 이 책에서 풀어놓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을 20년 전에 출간했고 10년 마다 개정판을 냈다고 하니, 이번에 출간한 책은 ‘두 번째 개정판’이라고 하겠다. 초판과 개정판을 보지 못해서 비교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저자들은 건축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지점을 포착하여 개정판을 낼 때마다 그에 걸맞은 내용들을 더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초판의 1장과 2장이 이번 책에서는 3장과 4장으로 옮겨지고, 새롭게 쓴 글들은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라는 제목의 1장과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이라는 2장으로 개정판을 새롭게 엮어내면서 덧붙여졌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제목은 서울에서 교사로 활동하다가 ‘천등산 박달재’로 낙향을 하려고 저자들에게 의뢰했던 ‘상산마을 김 선생 댁 이야기’의 사연들을 그대로 취한 것이다. 국가적으로 닥친 IMF라는 경제 위기의 국면에, 저자들에게 맡겨진 건축 의뢰와 현장을 답사하고 설계와 건축을 진행하면서 ‘땅과 사람’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4장의 글들에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처음 지형을 탐색하고 어떻게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설계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의뢰인과의 교감 속에서 설계가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시공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설계와 다르게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 이처럼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건축가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바뀌어 지어지고, 또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집의 쓸모가 완성되는 것을 일컬어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라고 했다고 이해된다.
저자들은 건축을 의뢰받고 그것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다면 그대로 책 한권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자신들이 설계하여 지은 집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여행을 하거나 우연히 마주친 색다른 건축물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놓기도 한다. 아마도 10년 전의 개정판에 덧붙여진 것으로 여겨지는데,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라는 1장의 제목이 건축가로서의 철학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고 이해된다. 일단 지어진 집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와성되어 가는데, 때로는 낡은 집을 손질하면서 느낀 건축가로서의 생각은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이라는 2장에 수록된 글들에서 강조되고 있다.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저자의 지론은 3장의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시간을 뒤로 미뤄두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집을 짓고자 터를 구입하고 설계를 의뢰하며 건축가와 긴밀히 대화를 하던 과정이 떠오르기도 했다. 건축은 단지 건물을 설계하고 완성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땅과 사람들에 의해 지어지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